현대 우주론에 따르면 태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은하도 별도 원자도 없었다. 시간과 공간마저도 태어나지 않았다. 처음 시간과 공간이 태어나는 시점을 우리는 대폭발, 혹은 빅뱅(big bang)이라고 부른다. 우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팽창하고 있다. 천체물리학자들은 베일 속에 감춰진 우주를 파헤친다. 한국 천체물리학의 초석을 다진 양종만(이화여대 물리학과) 명예교수는 “우주에서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은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중력파 등을 밝히는 것이 천체물리학자에게 남은 과제”라고 말했다. 

 

▲ 사진 | 본인제공

- 천체물리학은 어떤 학문인가
  “천체물리학(astrophysics)은 우주를 대상으로 하는 물리학(physics)의 한 분야이다. 천체물리학은 크게 천문학(astronomy)을 물리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는 분야와 과거 우주탄생 및 진화를 연구하는 우주론(cosmology)으로 나눌 수 있다. 현대 천체물리학은 주로 천문학과와 물리학과에서 다루는데, 둘 중 하나의 과로 통합해 운영하는 대학이 많다.

  관측 천문학을 기반으로 하는 천체물리학은 항성, 은하 및 성간물질 등 천체의 물리적 특성 등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력파, 엑스선, 전파 등이 최첨단 관측 장비의 발달로 비약적인 성장을 보이는 분야이다. 우주론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빅뱅이론과 블랙홀 등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연구하고 있다.”

 

- 천체물리학은 어떻게 발전해왔나
  “사실상 물리학은 천문학으로부터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리학은 자연의 법칙을 연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대에는 그러한 자연의 법칙의 원리를 규명할 도구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6세기에 들어서 갈릴레이, 뉴턴의 영향으로 본격적으로 물리학이 발전했다. 그런데 뉴턴이 밝힌 만유인력의 기초가 된 케플러의 법칙은 천문학 관측으로부터 나왔다. 케플러는 천문학을 통해 공전주기와 태양과 거리 사이의 관계식인 ‘케플러법칙’을 찾아냈다. 

  또한, 케플러는 행성의 운행이 타원형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케플러가 행성 운행의 관측결과를 수학적인 공식으로 구성했다면, 뉴턴은 왜 이러한 모양을 지니게 됐는지에 대한 기본원리에 관심을 가졌다. 뉴턴은 행성을 비롯한 모든 물체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통괄적인 법칙을 연구했다. 미적분이 그 예다. 원형의 경우는 운동할 때 일정한 속력을 유지할 수 있지만, 타원형의 경우엔 가속의 크기가 변한다. 이러한 가속운동을 계산하는 데 있어 수학적인 도구가 필요했는데,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미적분이다. 미적분 탄생 이후에 전자기학, 핵물리학, 응집물리학, 그리고 천체물리학도 발전했다.” 

 

- 천체물리학의 연구는 어떻게 활용되나 
  “천체물리학은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 순수과학이지만, 그 연구에서 발견한 결과들은 많이 응용되고 있다. 한 예로 적응광학(adaptive optics)이라는 것이 있다. 빛이 지구로 들어올 때는 공기층의 방해를 받아 휘게 되는데, 이 때문에 별의 위치를 정확히 관찰하기가 어렵다. 별을 정확히 관찰하기 위해선 빛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공기를 없애는 것이지만 이는 불가능하고, 우주 밖으로 나가는 것은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적응광학을 통해 바뀌는 궤도를 보정해 정확한 값을 산출할 수 있다. 적응광학은 들어오는 빛의 왜곡을 측정한 후, 관련 정보를 재빨리 전달해 거울의 위치를 변형시키는 기술로, 별에서 전달되는 빛을 가변형 거울에 반영해 광학적인 왜곡을 줄여준다. 컴퓨터는 대기 변화에 관한 정보를 분석한 후 거울에 신호를 보내 1초 동안에 수많은 각도로 거울을 변형시킨다. 우리나라가 남미에 투자한 25m 길이의 GMT(Giant Magellan Telescope) 역시 일곱 개의 거울을 조절해 관측하는데, 이 기술은 군사위성이 지상의 목표물을 관측할 때 쓰일 수 있다. 

 

- 천체물리학에서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왜 중요한가
  “물질은 질량이 있고 에너지는 질량이 없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각각 물질과 에너지에 해당하지만, 암흑이 붙은 이유는 그 존재를 확인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암흑물질과 에너지는 최근에 우주의 연구를 통해 알려지게 됐다. 미국의 천문학자 허블(Edwin Powell Hubble)은 은하들이 후퇴하고 있음을 관측해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엔 정확한 관측이 아니었기 때문에 깊은 연구로 나가진 못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와 호주국립대 천문학팀이 다양한 거리에 있는 초신성을 50개 가까이 발견한 후, 각 초신성까지의 거리와 서로 멀어지는 속도로 우주의 팽창 속도를 연대별로 계산한 결과 공간의 팽창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뉴턴의 중력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중력이론에 따르면 우주 공간에서 별이나 은하들은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으므로 우주는 별이나 은하들의 중력을 받아 팽창 속도가 점점 느려져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팽창에 기여하는 것이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임을 알아냈다. 신비하게도 암흑물질은 우리 주위에 있는 나무, 접시 같은 물질들의 모든 양보다도 훨씬 많다. 우주 전체를 100이라고 가정했을 시 암흑물질 23%, 암흑에너지는 73%, 물질은 고작 4% 정도다. 암흑물질은 느껴지지도 않는데 훨씬 많다는 얘기다.”

 

-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어떻게 관측할 수 있나
  “암흑물질을 관찰하기 위해선 은하계 내부의 운동이나 은하계들 사이의 운동을 관측하면 된다. 관측 방법 중엔 초신성을 이용한 은하계 운동 관측법이 있다. 초신성은 항성(별)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무거운 별이 폭발하면서 많은 양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현상을 말한다. 초신성은 아주 밝아 멀리서 관측할 수 있어 수십억 광년 떨어져 있는 천체까지의 거리도 잴 수 있는 강력한 자가 될 수 있다. la형 초신성은 다른 별에서 날아온 물질이 백색왜성에 쌓이다가 이 백색왜성이 일정한 질량 이상이 돼 폭발하는 형태이다. 모든 la형 초신성은 폭발할 때의 최대 밝기가 같다. 밝기는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어두워진다. 절대 밝기가 모두 똑같다면 거리가 다른 곳에서 보이는 겉보기 밝기와 비교해서 초신성까지의 거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멀리 있는 la형 초신성에서 오는 빛은 우리에게 도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 우리에게 도착한 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하면 과거 우주의 팽창속도를 알 수 있다. 그런데 팽창속도를 측정하니 우주의 팽창속도가 줄어들지 않고 점점 늘어남을 알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암흑물질과 에너지를 규명할 수 있었다.”

 

- 국제우주정거장(ISS)의 반물질 검출기(AMS)를 연구했다고 들었다. 반물질 검출기에 대해 듣고 싶다
  “반물질은 물질에 반대되는 것이다. 보통 양성자, 중성자, 전자와 같은 물질에 반대되는 반양성자, 반중성자, 양전자 등이 반물질이다. 반물질은 모양과 질량 등 모든 성질이 물질과 같으나 전기적 성질인 ‘전하’만 반대이다. 예를 들어 양성자는 전기적으로 플러스(+)이지만 반양성자는 전기적으로 마이너스(-)이다. 반물질은 암흑물질끼리 반응해서도 생길 수 있는데, 검출이 힘든 암흑물질에 비해 반물질은 반물질 검출기(AMS)를 통해 검출이 가능하다. AMS 검출기는 우주선 입자의 전하, 질량, 방향, 에너지 등을 측정하는 장치로, 세계 최고의 정밀도로 하전입자를 검출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AMS에는 입사된 입자의 방향을 재는 트래커(tracker), 입자의 에너지를 추적하는 전자기열량계, 고에너지 입자의 속도를 재는 전이방사성검출기 등 8개의 측정모듈이 달려 있다. 이를 이용해 반물질을 조사해 암흑물질의 구성을 역 추정할 수 있다. AMS는 20억 달러를 들여 우주에 실험 장치를 설치한 거대 프로젝트였다. 2003년 미국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사고가 일어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2011년 5월 마침내 국제우주정거장에 AMS를 장착할 수 있었다. 미 에너지부 후원으로 16개국 과학자 5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 장비는 미국 플로리다 주 케네디우주센터로 옮겨진 뒤 우주왕복선 엔데버호를 타고 우주정거장에 실려 갔다.”

 

- 우리나라 천체물리학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인가 
  “천체물리학은 기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너무 없다. 또한, 가르치는 사람들의 수준도 아직 미흡하다. 연구하는 사람이 없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당연히 돈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천체물리학 투자에 대한 연구 재원이 필요한데 우리나라 정책은 실제로 바로 돈이 되는 반도체처럼 산업과 연관돼 결과물이 바로 나오는 곳에만 투자한다. 천체물리학 같은 학문에도 투자 재원이 늘려야 한다.
또한, 학생들의 역발상도 필요하다. 취직을 생각하고 전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가 되지 않은 분야를 자기가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많이 발전한 것은 더 발전하기 힘들지만 작은 부분은 커지기 쉽다. 지금은 안보일지도 모르지만, 노력하면 그 길이 환해질 수 있다.”

 

 

양종만 교수는 한국 천체물리학의 초석을 놓은 인물로 꼽힌다. 양 교수는 1985년부터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국내 최초로 천체물리학 학부과정을 개설했다. 2001년에는 한국물리학회 천체물리학분과 위원장을 맡았으며, 항공우주국과 공동연구협약으로 우주센터에서 우주선에 탑재될 반물질검출기(AMS)의 핵심장비를 개발했다. 양 교수는 올 2월 말 30년 6개월에 걸친 교육자 생활을 마무리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