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검열의 시대에 누구보다 저항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있다. 진실의 가치를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들. 탄압과 불이익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 더 행복한 세상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그들은 각자의 예술로 저항한다. 겁먹지 말고 모든 이들이 진실을 외칠 수 있도록, 그들은 끊임없이 소망한다.

블랙텐트 극장장 이해성 대표
  “예술은 진실을 담고 있어야만 해요”

  18일 오후 7시 광화문 광장의 ‘블랙텐트’ 앞. 8시에 있을 ‘빨간시’의 세 번째 공연을 앞둔 극장장 이해성 ‘극단고래’ 대표는 블랙텐트 안에서 단원들과 힘찬 파이팅을 외쳤다.

  이해성 대표가 설치를 주도한 블랙텐트는 정부의 검열에 맞서기 위해 예술인들이 모여서 만든 공공극장이다. 16일 ‘빨간시’ 공연을 시작으로 매주 작품이 달라진다. 작품 대부분은 현 정부의 위안부 합의나 검열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관람료는 기부 형태의 후불제고, 오후 8시에 선착순으로 입장한다. “블랙텐트는 하나의 점거농성이에요. 검열로 공공성을 훼손한 국가를 규탄하고, 공공극장을 시민들에게 다시 돌려주기 위함이죠. 작품에 대한 평가는 시민의 몫이니까요.”

  이해성 대표에게 예술은 곧 정치다. 이미 우리의 삶이 정치와 떨어져 있지 않아서다. 또한 예술이 진실을 외면해선 안 돼서다. 그는 광화문 광장의 ‘예술인 캠프촌’에서 70일이 넘게 머물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저항하기 위해 작품을 쓴 적은 없어요. 다만 예술을 정치와 분리하려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에요. 정치는 노동자의 삶, 위안부의 삶, 혹은 아픔, 사랑과 같은 모든 것에 스며들어 있거든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도 말이죠.”

  이해성 대표가 연출한 ‘빨간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故 장자연 배우의 이야기를 그린 공연이다. 그는 2005년에 참여한 수요집회에서 실상을 들으며 충격을 받고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2011년 극단고래의 창단작으로 초연된 ‘빨간시’는 지금이 벌써 5번째 재공연이다. “시의성에 맞춰 계속 각색해요. 풍자는 저항 방식의 하나에요. 한 단계 비틀어 이야기하는 높은 차원의 표현 방식이죠. 이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아픔에 공감하고, 자기 욕망을 성찰했으면 좋겠어요.”

팝아티스트 이하 작가
  “한때 풍자가 사라진 시대가 있었잖아요. 이제는 젊은 친구들부터 시작해서 정치 풍자가 더 많아져야 돼요. 예술이 억압되지 않아야 그 내용이 풍부해지고, 세상도 더 풍부해지겠죠.”

  이하 작가는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을 버스·택시 정류장 광고판에 붙인 혐의로 기소가 됐다. 박 대통령의 공주 이미지를 풍자하기 위해 백설공주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었다. 지금도 그는 박 대통령의 퇴진에 앞장서고 있다. 박근혜 퇴진 스티커를 만들어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페이스북엔 ‘풍자일기’라는 이름의 현 정부를 비판하는 풍자 작품을 게시한다. ‘특검’이란 글자가 적힌 호랑이가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적힌 나무 뒤의 조윤선 장관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노려보는 식의 그림일기다.

  이하 작가는 작품을 일반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거리에, SNS에 전시한다. 그에게 거리는 갤러리다. 하지만 그만의 거리 예술 활동은 험난했다. 검찰 기소만 6번을 받았고, 재판장에 불려간 건 40번이 넘는다. 박근혜 정권에서 그의 표현은 심각하게 훼손당했다. “작품을 길에 붙이면 기소가 돼서, 길에 두고 다니니까 또 기소됐어요. 그래서 전단으로 뿌렸더니 다시 기소되더라고요. 최근엔 탑차에 작품을 붙이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시했어요. 다음엔 작품을 빔프로젝터로 쏘면서 거리를 다닐 계획이에요. 제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바라요. 전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믿거든요.”

  그는 풍자란 정확하고 합리적인 메시지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풍자를 장난삼아 하면 안 돼요. 풍자는 전달하는 바가 명쾌해야 해요. 당대의 시민의식이 반영된 유쾌한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 하죠.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따뜻함을 받을 수 있게요.” 그는 더불어 작가의 자유로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가가 행하는 폭력에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갖게 되지만 이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을 창작할 땐 우주에서 알몸으로 누워있는 기분을 가지려고 해요. 스스로 어떤 검열이나 제약이 작동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 생각하기 위해서 말이죠.”

정훈이 만화가
  눈에 띄게 넓적한 하관과 작은 눈이 특징인 ‘남기남’은 어느 땐 정치인, 어느 땐 아랍 부호나 조폭이 된다. 영화 잡지 <씨네21>에서 20년이 넘도록 연재 중인 ‘정훈이 만화’의 주인공이다. 기본적으로 매번 다른 영화를 모티브로 하지만 어차피 영화 내용이랑 따로 노는 것이 특징이다. 대신 엉뚱한 개그나 정치풍자가 주를 이룬다. 곧 지금까지의 시사만화를 모은 책 <야매공화국 10년事>가 출간된다.

  “플라톤은 ‘정치에 무관심한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고 했어요. 요즘 뼈저리게 공감되는 말 아닌가요?” 그의 만화가 처음부터 정치풍자를 한 건 아니다. 생활풍자가 적어지고 정치풍자가 늘어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정훈이 만화가는 정치풍자를 통해 소극적으로나마 사회에 저항하고자 한다. 그가 생각하는 풍자의 의미는 비웃음이다. “풍자는 유머와 위트를 섞어 비판하는 거예요. 비웃음을 통해 권력자나 잘못된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거죠. 사람들은 시의성 있는 공감을 얻고요.”

  현 시국에 대해 정훈이 만화가는 쌍팔년도의 촌스러운 구체제가 부활했다고 비꼬았다. “국정농단 사태라는 워낙 큰 사건이 터진 후, 하루가 멀다고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어요. 세상은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될 것처럼 변해버렸고요. 시도 때도 없이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뿜어져 나와요. 만화로 그려내기 바쁠 정도로 말이죠.”

  정훈이 만화가는 검열이 이미 이명박 정권 때부터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연재 중이던 사보 세 곳에서 같은 달 연재 중단을 통보받았다. 많던 기관의 홍보 만화 의뢰도 갑작스레 뚝 끊겼다. “진보적인 예술인들의 밥줄 끊기가 시작된 거예요. 거래처에 압력을 넣는 거죠. 몇 번 그런 소문이 들리면 다른 기관들도 자기 검열에 들어가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배제되는 거죠. 그러면 결국 창작자들의 표현도 위축될 수밖에 없어요.”

  그는 그림을 안 그리는 시간 대부분엔 종편 시사토크쇼를 본다. 그래서인지 그의 만화엔 정치풍자가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다. “제 만화엔 과도한 점핑과 축약이 많아요. 당연히 시사 상식이 없으면 이해하기가 어렵고 재미도 반감되죠. 아는 사람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유머 코드를 많이 숨겨놓거든요. 이를 찾는 것도 제 만화로 얻을 수 있는 일종의 재미겠죠?”

 

사진 | 이명오 기자 myeong5@, 본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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