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은 '일하는 학생이 아니라 공부하는 노동자'라는 말이 있다. 놀고 싶고 여행가고 싶고, 누구는 마음 편히 공부하고 싶음에도, 그 마음을 잠시 미뤄두고 '아르바이트'라는 현실에 뛰어든다. 그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는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 부모님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한다. 또 누군가는 취미활동을 위해, 여행경비를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 '누군가'마다 느껴지는 아르바이트의 무게는 모두에게 똑같이 무겁다. 그들은 고되고 힘들어도 버티며 무거운 마음으로 아르바이트에 임한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의 '누군가'들은 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까. 그들에게 아르바이트는 어떤 의미일까.

▲ 본교 정경대 후문 주변 음식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주방에서 서빙할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 김해인 기자 in@
▲ 밤 12시가 다돼가는 늦은 시간, 안암역 주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홀로 흐트러진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 | 이명오 기자 myeong5@
▲ 전욱태(사범대 수교15)씨가 석계역 주변에 위치한 학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고 있다. 사진 | 김희원 기자 smile1@

"아르바이트는 '밥줄'입니다"

“엄마 카드 찬스? 그런 게 어딨어.”
  대학생이 모든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여행도 다니며 놀고 싶을 시기지만, 그런 여유가 누군가에게는 사치다. 그 누군가는 하고 싶은 걸 잠시 뒤로 미뤄둔 채 생업에 뛰어든다. 박 모 씨(23·여)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같은 식당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4형제인 데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친구들과 처지가 달라 대화를 하다가 곤란해질 때가 있다. “여행 가자고 하면 넌 왜 맨날 돈 없다고 그래? 엄마찬스 쓰면 되잖아.” 그는 그런 친구의 말을 들으면 편하게 사는 게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했다. “친구도 끼리끼리 사귀는 것 같아요. 돈 없어서 여행 못 간다고 하면, 돈 있는 다른 친구 찾아가는 것 같고...” 박 씨는 졸업 후에도 아르바이트를 계속할 예정이다. 오랜 꿈이었던 해외여행과 공무원 시험 준비자금을 위해서다. “저는 평범한 거예요. 밤낮으로 일해서 자기 집 생활비를 책임지는 친구들에 비해선 나은 거니까.”


  안지윤(사범대 수교16) 씨도 박 씨와 비슷한 상황이다. 그는 초등학생 2명과 고등학생 1명에게 과외를 하고 있다. 식비, 월세, 교통비 등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 씨에게 과외는 항상 우선순위다. 잘리지 않기 위해서다. “돈을 받는 저는 ‘을’이에요. 제 시험 기간이 학생의 시험 기간이랑 겹쳐도 과외학생이 항상 우선이에요. 심지어 독감에 걸려도 과외는 나갔어요.” 그는 여행경비를 위해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다. “그 친구들은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일이니까 힘들면 쉽게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로 별 경험 다 해봤죠.”
  몇몇 학생들은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 위해 단기아르바이트를 찾기도 한다. 이진아(문과대 심리12) 씨는 부모가 재정적 독립을 권유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 씨는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다 보니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말았다. 그는 작년 12월에 학업에 조금 더 집중하기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공부, 일 둘 다 해야 하는 게 항상 억울했어요. 직장인이 부러운 건 돈 버는 데만 집중할 수 있는 거예요. 둘 다 하려고 하니 돈도, 학점도 애매하기만 했어요.”

  박근우(서울시립대 환경원예학과13) 씨도 단기 아르바이트를 계속해오고 있다. 단과대 학생회장, 동아리 활동, 학교 수업 때문에 정기 아르바이트는 엄두를 못 낸다. 그는 막노동인 무대철거,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생물학적 동등성 실험’, 일명 ‘생동성 실험 아르바이트’에도 뛰어 들었다. 보수는 쏠쏠했다. 한 번 참여에 60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쉽게 돈 벌 수 있다는 대가에는 위험이 뒤따랐다. 작년 6월, 박 씨는 두 번째로 생동성 실험에 참가했다. 2박 3일의 입원 실험 끝에 퇴원했지만, 열이 38.5도까지 올랐다. 피해보상을 바라는 그에게 돌아오는 건 ‘추가채혈을 못 하면 돈을 못 받는다’는 대답이었다. 결국, 얼음찜질로 열을 내려 추가채혈을 해서 참가비를 받아 냈다. 몸이 아파지는 일까지 겪었지만, 그는 이번 방학에도 생동성 실험 아르바이트를 할 예정이다. “돈 때문에 내가 뭘 하고 있나, 회의감도 들었어요. 그런데도 돈이 필요한데, 정기 아르바이트는 못 구하니까 저런 거라도 할 수밖에 없어요.”

 

“다들 비슷하지 않나요? 마냥 손 벌릴 순 없죠.”
  20대의 자녀를 둔 부모들은 정년퇴직을 앞둔 나이다. 노후준비까지도 해야 하는 부모의 속사정을 생각하는 대학생은 점차 경제적으로 독립하려 한다. CU 고대 중앙광장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정지성(24·남) 씨도 부모의 등록금 부담을 덜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주5일 5시간씩 일해 월 평균 75만원을 받지만 이것만으론 등록금 마련하기엔 부족하다. 금요일엔 새벽 2시까지 고모네 식당 일을 돕는다. “부모님 나이도 있으시니까 등록금 마련은 제가 하려고요. 그래도 여기 손님들은 친절해서 힘든 점은 없어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도 마찬가지다. 강력계 형사인 아버지를 보며 꿈을 키운 박선형(23·여) 씨는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학원비에, 공부와 아르바이트와 병행할 수 있는 경찰직 공무원 학원 조교 아르바이트를 선택했다. 수업료 면제와 인터넷 강의를 제공받는 조건이다. “학원비 부담이 아무래도 크잖아요.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는데,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끌려 시작했죠.” 물론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공부시간을 온전히 확보하기 어려워서다. “업무 중간에 조금씩 공부하긴 하지만 집중력은 흐트러져요. 현재 업무 시간이 애매한 시간이다 보니 공부에도 방해되기도 하고.”

  올해로 4년 차 수험생인 그는 탈락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크다. 시험 전형이 바뀌면서 1년에 한 번으로 기회가 줄었고, 뽑는 인원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이에 박 씨는 올해 시험만큼은 부모에게 부탁하려고 한다. “학비 부담 때문에 일하면서 공부하는 걸 부모님이 좋아하진 않으세요. 그래도 스스로 벌고 싶었는데, 이번에는 도움 받아서 걱정 없이 시험에 집중해볼까 해요.”

 

글 | 김해인 기자 in@

 

"아르바이트는 '꿈으로 가는 길'입니다"

“좋아하는 걸 할 수 있으니까!”
  모든 대학생의 아르바이트 목적이 생계 유지인 것은 아니다. 팍팍한 삶에 나 자신을 위해, 사람다운 삶을 살고 싶어 돈을 모은다.

  성신여대에 재학 중인 A(22세·여) 씨는 안암역 주변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는 지난 학기까지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며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번에 다시 본가로 들어가면서 생활비 부담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평소에 좋아하는 문화생활을 할 돈을 마련해두기 위해서다.

  늦은 밤 근무시간대가 힘들 때도 있다. 특히 위험하기도 하고 매일 12시가 넘어 집에 들어가면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하지만 취미생활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생각하니 나름 즐거웠다. “공연을 보고 난 다음에는 빨리 다음 공연이 보고 싶어서 더 즐겁게 아르바이트하러 올 때도 있었어요.”

  김정민(사범대 수교16) 씨는 지난 학기에 겨우 내내 스키를 타고 싶어서 닥치는 대로 돈을 벌었다. 작년 9월 초, 밤 8시부터 아침 6시까지 하는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에 도전했다가 일이 너무 힘들어 결국 2번 나가고 그만뒀다. 그는 “돌이켜보면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벌어야 하는 돈이었기에 그 과정이 힘들었던 것 같진 않다”고 유쾌하게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스키의 매력을 알게 된 후로 매년 겨울마다 스키장에 갔을 만큼 스키를 좋아한다. 그는 스키장비, 스키장 리프트 시즌권 등 스키 타는데 드는 비용 약 150만원을 벌기 위해 힘든 줄도 모르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저만의 콘서트 열려고요”
  낭만적이게도 일해서 번 돈의 최종 목적지가 ‘꿈’이라면, 노동의 힘듦은 얼마든 버틸 수 있다.  정윤정(사범대 수교16) 씨는 겨울방학 동안 학원 조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오전과 오후 두 탕 씩 뛰다보면 1주일에 30시간을 넘게 일한다.

  정 씨는 3월 개인 콘서트를 여는데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작년에 작은 콘서트를 연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해볼 생각이다. 가수의 꿈을 접기 전에 마지막으로 음악에 미쳐보기 위해 준비하는 공연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그만두면 미련이 남을 것 같아 1년 휴학하고 음악에 빠져 살아보기로 했어요. 이번 콘서트도 그런 의미로 준비하고 있죠.” 

  이번 콘서트가 특별한 의미인 만큼 그는 더 좋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평소에 무대에 같이 서고 싶었던 친구들도 모두 섭외할 생각이다. 그러다보니 공연장 대관, 연습실 대여 등에 들어갈 돈은 당연히 더 많아졌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 생각이어서 콘서트를 여는데 마련해야 할 돈이 적지 않다. 그래서 정 씨는 방학 내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새벽에 집을 나서서 밤늦게 들어오는 게 일상이 돼 고되지만 그에게 콘서트 준비를 위해 아르바이트 하고 있는 지금이 힘들지만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힘든 것도 잊게 되는 것 같아요.”


“미래를 준비하기도 하죠”
  아르바이트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 연습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아르바이트는 다른 의미로 가볍지 않았다.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B(22세·여) 씨는 졸업 작품 패션쇼에 필요한 돈을 모으기 위해서 옷가게 아르바이트를 한다. “선배들 말로는 재료비, 모델료, 대관비 등으로 2~300만 원 정도 든다고 했어요. 큰 돈을 미리 벌어둬야 할 것 같아서 아르바이트를 해요.”

  그는 전공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패션디자인 전공이라 옷가게 아르바이트를 선택했어요. 특히 소비자의 반응, 시장의 흐름을 더 가깝게 접근하고 싶어 브랜드 매장이 아닌 로드샵 매장을 골랐어요. 지금 성장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아르바이트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지금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는 제게 가볍지 않아요. 매장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걸 얻고 성장한다고 생각해서죠.”

  전욱태(사범대 수교15) 씨는 석계역 근처 작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사범계열 대학생이면 으레 하는 평범한 아르바이트이지만 전 씨는 이 일이 자신에게 특별하다고 말한다. 24살의 나이에 뒤늦게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그에게 아르바이트는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한 연습이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 이유도 ‘일대다(一對多)’ 수업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평소에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연구할 만큼 ‘잘 가르치는 법’에 관심이 많은 그는 학원 강의 아르바이트를 통해 실질적인 교사로서의 강의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강의를 맡게 되면 그 반의 진도표를 만들고, 정해진 수업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구상하게 돼요. 사소하게는 판서연습, 아이들과 소통하는 법. 톤 조절하는 법까지 익힐 수 있어요.” 그는 호기심을 갖고 질문하는 아이들을 보며 아르바이트의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저는 아르바이트 간다고 안하고 아이들 가르치러간다고 말해요. 나중에도 이 일을 할 생각에 아르바이트가 가볍지 않게 다가오죠.”

 

글 | 김희원 기자 smil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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