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까지 결혼 못 하면 비혼식을 하겠다.” 연예인 박수홍(남‧48) 씨가 방송에서 선언한 말이다. 그는 비혼식을 주변 지인에게 혼자 살게 됐음을 선포하며 그동안 내왔던 축의금을 회수하는 행사라고 정의한다. 


  결혼을 아예 하지 않겠다는 ‘비혼(非婚)’이 빠르게 늘고 있다. 비혼식, 싱글웨딩 등 새롭게 등장한 결혼문화는 비혼이 증가하는 세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는 미혼(未婚)이 아니라 비혼 선언을 통해 결혼을 거부한다는 개인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삶의 형태가 증가하는데도 정부정책은 여전히 전통적인 가족만을 지향하는 수준에 머물러있다.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큰 원인
 비혼을 선택하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이다. 트렌드모니터가 작년 9월 실시한 ‘2016 비혼 트렌드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비혼을 선택하는 이유 4순위까지가 모두 경제적 원인이었다. 결혼하고 싶어도 내 집 마련의 어려움과 높은 결혼비용과 주거비용, 자녀 양육비에 대한 부담 등이 결혼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는 것이다. 비혼주의자라고 밝힌 안 모(여‧23) 씨는 “경제적 부담이 싫어 결혼하지 않을 예정”이라며 “학자금 대출을 모두 갚고 독립하면 혼자 살거나 비혼인 친구들과 함께 방을 나눠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모님의 이혼 등 개인 가정에서 겪은 경험 때문에 비혼을 선택하기도 한다. 특히 이런 현상은 이혼이 많았던 IMF 세대의 자녀에게서 두드러진다. 황명진(인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들은 경제적 문제로 가족 해체를 경험해 결혼에 큰 부담감을 느낀다”며 “가족에게 얻는 심리적 안정보다 경제적 안정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불합리한 결혼문화도 결혼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와 맞벌이 확산에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가사와 양육 부담, 시댁과의 갈등,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등에 많은 여성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정현정(여·22) 씨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심에도 어머니가 아침밥을 차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어난 부부싸움을 백 번은 넘게 봤다”며 “가사와 명절에 녹아있는 여성 차별적인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비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비혼 운동 여성단체 언니네트워크 운영지기 난새 씨도 “한국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는 여성들에게 전혀 공평하지 않다”며 “맞벌이 비율이 급속도로 늘고 있음에도 가사와 육아는 여전히 여성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결혼과 가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식도 옅어졌다. 가족을 이루는 것보다 개인이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을 더 중요히 여기는 것이다. 이성용(강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보다 직업, 취미 등 가족 이외의 부분에서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 중심적 정책에서 벗어나야
  1인 가구와 비혼족 증가에도 우리나라의 정책은 여전히 다인 가족 중심적이다. 가족별 신분등록, 대출과 주택 청약, 세금혜택 등이 대표적인 가족 중심적 정책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청약임대주택을 분양받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신혼부부나 다자녀가구에게 먼저 공급돼서다. 대출도 마찬가지다. 결혼하지 않으면 대출을 받을 때 만 35세가 넘어야 하는 등 결혼하지 않은 성인은 결혼한 성인에 비해 대출을 받을 때 제약이 더 크다. 언니네트워크 난새 씨는 “제도적 차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별 신분등록제를 채택해야 한다”며 “모든 제도적 혜택이 가족 단위가 아니라 개인 단위로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덴마크, 네덜란드 등 여러 유럽국가에서는 파트너십 등록 제도를 실행하고 있다. 파트너는 개인이 지정한 법적 보호자를 뜻한다. 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하는 것과 같이 큰일이 있을 때 동의서에 사인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을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임운택(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1인 가구와 다양한 가족 형태가 등장하는 시대적 흐름을 국가에서 배제하거나 배척하지 말고 사회적 현실로 인정하고 대안적 가족 형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프랑스는 사실혼을 ‘이성 또는 동성 2인 사이에 안정성과 계속성을 보이는 공동생활에 의한 사실상의 결합’으로 규정하고 있다. 2006년에는 혼인가정 출산과 혼외출산을 구별하는 규정도 폐지했다. 법적 결혼이 아닌 동거도 국가에서 가족의 형태로 인정하고 출산과 자녀 양육 지원에 있어 결혼가족과 동일한 혜택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임운택 교수는 “프랑스는 동거 형태를 입증하는 자료를 법원에 제출하면 사회보장제도, 납세, 임대차계약, 채권채무 등에서 결혼가정과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비혼의 증가가 저출산을 심화시킨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경우 오히려 출산율이 증가했다. 실제로 2015년 프랑스는 여성 1인당 평균 출산율이 1.96명으로 유럽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저출산이 비혼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한편 황명진 교수는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며 “부부와 부모, 자식 등 가족 간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가족 해체는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 공동체 마련의 필요성도 강조된다. 이때 공동체는 전통적 의미의 강력한 마을 공동체가 아니라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동호회 형식의 소통 공간을 말한다. 임 교수는 “규칙이나 규율이 강하고 소속감을 강요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어떤 공간 내에서 사람들이 만나 소통하고 부담 없이 헤어질 수 있는 자유로운 형태의 문화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 | 장우선 기자 priority@
그래픽 | 박주혜 기자 joohehe@
일러스트 | 주재민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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