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열린 18차 촛불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노란 리본을 묶은 태극기를 가방에 꽂았다.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은 종로의 시작점에서 양쪽으로 갈라졌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이정표 아래, 인용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광화문으로, 기각을 요구하는 시민들은 시청으로 향했다. 양측 모두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의지를 내걸었지만,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한 쪽이 어디인지는 분명했다.

‘애국심’ 아래 왜곡된 민주주의
  
“들어봐요.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무슨 관련이 있나? 탄핵해야 할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야, 국회.” 2월 25일, 시청 옆 골목에선 태극기 집회에 참여한 노인들의 대화다. 황영태(남·73) 씨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는 ‘온 국민이 고생해 일궈낸 대한민국’이다. 전쟁 이후 온 국민이 고생하며 지켜낸 가치이자, 대한민국 그 자체라는 것이다. 황 씨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붕괴”라며 “한시라도 빨리 기각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키웠다. 73세 참가자 역시 탄핵 인용은 곧 자유와 민주주의의 훼손이라 말했다. 그는 “과반수 국민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대통령인데, 임기를 채우기도 전에 끌어내린다면 나라 꼴이 우스워지는 것”이라며 자식들이 더 좋은 세상에서 살게 하도록 나왔다고 밝혔다. 

▲ 1일 열린 '태극기 집회' 중 참가자들이 종로를 따라 행진하고 있다.

  태극기 집회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곧 국가와 일치시켰고,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여전히 과반수라고 믿었다. 김규항 칼럼니스트는 탄핵 기각을 주장하는 보수 세력이  자유를 ‘반공산주의’로 받아들인다고 진단했다. 반세기 이상 북한을 주적으로 반공 의식을 주입시킨 사회에서 살아온 경험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김 칼럼니스트는 “상식적으로 자유라는 것은 공산주의 이념을 주제로도 공정한 토론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라며 “태극기 집회 측은 자신들과 다른 모두를 좌익으로 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광장의 현 상황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최근 언론은 태극기 집회의 폭력성,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의 대결구도를 강조하고 있다. 박성희(본교·미디어학부) 강사는  “매주 촛불집회, 태극기집회 등에 대한 자극적인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며 “본질과 먼 보도를 지양하고, 사실을 온전히 보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왜곡된 민주주의, 촛불이 되살리다
  
촛불집회 참여자들에게 민주주의는 책임과 정의다. 장준성(남·66) 씨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거 당시 과반수의 지지로 선출된 대통령일지라도 법 위에 군림한 것은 명백한 민주주의 훼손이라 말했다. 장 씨는 태극기 집회에서 주장하는 ‘법치 수호’, ‘자식 걱정’에 대해 날 선 비판을 가했다. 장 씨는 “민주주의엔 책임이 따른다”며 “법을 무시한 대통령을 탄핵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진정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라고 말했다.

▲ 촛불집회의 흔적이 남은 차벽 앞에서 18번째 집회 참여자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진우(문과대 사회16) 씨도 촛불을 들고 광장에 앉았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분노로 참여한 집회 속에서 민주사회의 일원이라는 점을 느낀 이후, 꾸준히 집회에 참여해 왔다. 이 씨는 민주주의에 대해 국민이 주권을 갖고, 대표자들이 국민을 위해 정치를 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이를 수행하지 않았다며 인용만이 답이라고 강조했다. 태극기 집회에서 민주주의 수호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선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미사여구를 통해 포장했지만, 그들의 본질이 기각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씨는 자식들을 걱정해 태극기 집회에 참석했다는 참가자들에게 쓴 소리를 냈다. “우리 자식들, 손주들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한 대통령이 면죄부를 받는 세상을 원하지 않습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극에 달한 갈등이 역설적으로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라 해석했다. 박 학교장은 “민주주의란 ‘시민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하고 해석할 권리를 갖는 것’이기에, 집회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박 학교장은 “집회 자체에 문제가 없다고 해서 탄핵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광장 위의 민심과 국회의 결정을 존중하는 판결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이민준 기자 lionking@
사진|심동일, 이민준 기자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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