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기자들은 겨울방학 중 1월 8일부터 11일까지 대만 타이페이로 취재를 다녀왔다. 3박 4일로 진행된 일정동안 기자들은 대만의 시민운동 단체 3곳과 청년정당 1곳을 인터뷰했다. 열악한 주거환경과 무능한 정권에 분노한 대만의 시민운동은 2014년 정권 교체를 이뤄냈고, 청년 의원을 국회에 입성시켰다. 같은 해엔 대만을 아시아 최초로 탈핵 국가로 거듭나게 했다. 올해는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 합법화를 달성할지 여부에 아시아 국가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실질적 성과를 보인 대만의 시민운동에서 한국이 배워야할 점은 무엇일까.

<글 싣는 순서>

① 동성결혼 법제화 시민운동 단체 ‘대만동반자권리증진연대(TAPCPR)’ 인터뷰
② 청년 정당 ‘시대역량(時代力量)’ 인터뷰
③ 탈핵 시민운동 단체 ‘Mom Loves Taiwan’ 인터뷰
④ 청년주거 시민운동 단체 ‘사회주택시행추진연맹(社會住宅推動聯盟)’ 인터뷰

▲ 2013년 11월 30일에 대만 동성결혼 지지자들이 입법원(국회) 앞에서 '혼인평권'을 뜻하는 글자를 만들고 있다.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허가하는 국가가 탄생할 날이 머지않았다. 2016년 12월 26일 대만 민주진보당 유메이뉘(尤美女) 의원이 발의한 동성결혼 합법화 초안이 입법원 사법 및 법제위원회를 통과했다. 한국으로 따지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 것이다. 4월 말 입법위원들의 독회(讀會, 입안한 안건에 대한 토론·수정·철회 등을 결정)를 앞두고 동성결혼법 찬반 공방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2011년부터 동성결혼 법제화 운동인 ‘혼인평권(婚姻平權)’ 운동을 한 대만동반자권리증진연대(台灣伴侶權益推動聯盟, TaiwanAlliancePromoteCivilPartnershipRights)의 빅토리아 쉬(Victoria Hsu, 許秀雯) 대표와 치치친(簡至潔) 비서는 올해 안에 해당 법안 최종통과를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 TAPCPR은 어떤 단체인가
빅토리아 쉬(이하 빅) | “성소수자와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 향상을 위한 시민단체이다. 2009년에 설립 당시엔 여성주의를 표방했다. 성소수자를 대변하기 시작한 건 2010년 7월 대만의 결혼생활과 성(性)문화를 주제로 한 설문조사를 계기로 동성결혼 가정의 존재를 파악하면서다. 이후 성소수자 결혼제도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이들을 위한 법률과 LGBT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2011년 10월 21일 동성결혼법에 관한 초안을 마련해 입법을 위한 혼인평권 운동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모든 사회적 취약계층이 차별받지 않도록 인식 개선 활동과 입법 운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 동성커플인 빅토리아 쉬(좌) 대표와 치치친(우) 비서

- 혼인평권 운동은 무엇인가
치치친(이하 치) | “동성부부를 위한 법률적인 보장과 혼인의 평등권을 구현하기 위한 사회적·제도적 노력이다. 혼인평권 운동의 핵심은 다원성가(多元成家)법 제정이다. 이 법은 △동성 간 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혼인평등권(婚姻平等權) △혼인관계에 준한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시민결합인 반려제도(伴侶制度)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다인가속제도(多人家屬制度)로 이뤄져있다. 우리는 세 가지 제도가 모두 법제화되길 바라지만, 현재 입법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동성결혼법안엔 혼인평등권만 담겨있다.”

- 동성결혼 법제화가 왜 필요한가
빅 | “혼인에 있어 진정한 평등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대다수는 동성 간 혼인이 불법일 때 재산 명의 문제, 의료문제 등 동성부부의 법률적 피해만 생각한다. 그런 문제는 시민결합법인 반려제도로 충분히 보완될 수 있다. 실제로 타이베이(臺北) 시 등 5개 대도시에서 2015년 6월부터 동성커플에게 ‘동성반려증(同姓伴侶證)’을 발급해 혼인에 따른 법적 권리 일부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동성부부에 대한 법적 문제를 넘어 혼인에 관해 성별, 국가, 인종을 초월한 인간 대 인간의 평등한 관계를 세우고 싶다.

  동성결혼법에 반대하는 사람 중엔 ‘동성결혼을 이해하지만 법적으로 이성 간의 결혼을 원칙으로 삼자’고 주장한다. 즉 기존 민법이 정한 결혼 법률을 그대로 두고 동성결혼에 관한 법을 따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들 말대로 하면 이성 간 혼인은 정상이고 동성 간 혼인은 비정상이란 차별적 인식이 더욱 고착화 될 것이다.”

치 | “민주진보당이 발의한 민법 수정안 초안엔 ‘혼인은 남녀 간 서로 결정한다’란 기존 조항의 ‘남녀’를 ‘쌍방’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현재 대만 정치권에서 ‘남녀’와 ‘쌍방’을 함께 명기함으로써 이성 결혼과 동성 결혼을 이분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또한 기존의 ‘결혼’과는 명확히 구별되는 단순 시민 ‘결합’ 형태로 법안을 변경하려는 등 본래 법안 발의의 취지를 격하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

- 동성결혼법안이 통과될 것이라고 보는가
치 | “현재로선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대만 입법원에서 두 차례 독회 과정을 거치면서 해당 법안이 수정될 여지가 있어서다. 우리는 동성결혼 법제화가 올해가 아니면 힘들다고 판단한다. 2018년 8월 지자체 선거와 2020년 총통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예민한 동성결혼 법제화 문제를 미룰 가능성이 높아서다. 우리는 정당별 입법위원을 만나 본 취지에 맞는 법안 통과를 위해 그들을 설득하고 있다.”

- 혼인평권 운동의 난관은 무엇인가
빅 | “동성결혼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다. 특히 종교적 이유와 유교적 관념이 결합하면서 그러한 잘못된 인식이 더 심해졌다. 동성결혼법을 추진한 다른 나라와 같이 대만에서도 기독교 단체의 반대가 심하다. 하지만 현재 동성결혼법을 합법화한 국가들은 대다수가 기독교 국가다. 더는 종교적 이유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이에 아시아의 기독교 단체들은 유교의 전통적 가족체계를 끌어와 동성결혼 반대를 주장한다. 그들이 주장한 전통적 가족형태는 남존여비 사상, 가부장제, 일부다처제, 대가족문화에 바탕을 둔다. 현대 대만에서 과거의 유교적 관점에 입각한 결혼과 가족 개념은 더는 통용되지 않기에 이 역시 합당한 이유가 아니다.”

- 아시아에서 대만이 LGBT 운동에 적극적인 이유는

치 | “성소수자에 대한 청년층의 인식변화다. 청년들의 인식이 개선된 이유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2004년에 통과된 성별평등교육법(性別平等敎育法)의 영향이다. 이 법으로 대만의 모든 중·고등학교에선 성 평등과 성소수자 인권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둘째, 10년 전부터 시작한 대만 동성연애자 대행진 행사다. 이 행사를 계기로 성소수자가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성소수자 인권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셋째, 성소수자에 대한 국제적인 변화의 물결이다. 2000년대 들어 서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동성결혼 합법화가 성사되면서 우리도 이에 자극을 받았다.”

빅 | “무엇보다 성소수자 문제는 민주화와 직결된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대만도 성소수자를 멸시하며 동성연애를 중대범죄로 인식했다.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되고 민주화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자유, 평등, 인권에 관심 두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취약계층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고 우리도 그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게 됐다. LGBT 문제는 인권문제와 밀접해 그 사회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숙한지를 보여준다.”

- 한국 LGBT 운동에 대한 조언

치 | “성소수자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 성소수자와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움츠러들고 숨어버리면 안 된다. 숨기는 것이 LGBT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더욱 키우며 나아가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성소수자들이 당당하게 그들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 LGBT 운동의 시작이다.

 

글 | 김태우·김민준·김용준 기자 press@
사진 | 친기즈 기자 oblako@
이미지출처 | TAPC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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