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됐다. 어느 해의 겨울보다도 매서웠지만, 많은 이들이 함께 든 촛불은 기어코 목표를 이루었다. 이제서야 새로운 기둥을 지지할 초석을 놓았다. 초석 위에 놓일 기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촛불 민심이 받쳐줄 때
개혁 법안 통과시켜야
민주주의, 성찰에서 출발”

 

임혁백 정경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인터뷰
적폐청산이 1순위 과제

▲ 사진 | 심동일 기자 shen@

-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주인인 국민이 대리인인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 본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주인이 대리인에게 위임하는 권한은 한시적이다. 재임 기간 중이라도 대리인이 주인의 뜻을 거슬렀다면 주인은 위임한 권한을 거두어야 한다. 탄핵 선고는 이후 재임하는 대통령이 더 조심하게 행동하게 할 것이란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 차기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조기 대선 후 들어설 차기 정부는 1순위로 적폐청산, 2순위로 국민통합을 해야 한다. 차기 정부가 들어섬과 동시에 일을 진행하려면 지금부터 적폐청산을 위한 입법 활동이 시작돼야 한다. 특히 촛불 민심이 받쳐 줄 때 개혁 법안을 통과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적폐청산을 통해 깨끗한 민주주의를 이뤘다면 국민통합을 할 차례다. 기본적으로 한국은 선거 기간을 기준으로 분열과 통합의 사이클이 진행된다.

  한국에는 세대, 지역, 계급, 이념의 균열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다양한 공약을 발표하는 것은 다른 균열에 속한 유권자들을 포섭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후보들의 공약이 모든 유권자의 지지를 받을 순 없다. 지지하는 후보별로 유권자 간 분열이 초래되는 이유이다. 새로 선출된 대통령은 유권자들을 통합하는 데 힘써야 한다.”

- 통합의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국민통합을 위해선 촛불 민심인 광장을 들여 봐야 한다. 이번 광장엔 대통령 탄핵이라는 공통된 요구를 위해 대학생, 주부, 노조 조합원 등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가진 다중이 모였다. 이들은 ‘대통령 탄핵’ 요구를 넘어, 각자의 요구를 이야기하고 논의했다. 거리의 의회가 실현된 것이다. 사회, 직업, 계급 등에서의 양극화로 인한 개인적 분노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통로로 배출된 결과다. 결국 차기 대통령과 여당은 거리의 의회에서 논의된 사안들을 해결해야 한다.

  통합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청년, 보육, 노동 등의 문제 모두 양극화와 관련 있다. 각각의 문제들은 상호 연관돼있어 차기 대통령과 여당에 균형 있는 이익 대변이 요구된다.”

- 향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국민이 온라인을 통해 대통령에게 자유롭게 요구할 수 있게 돼, 그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과거에는 국민과 대통령이 오프라인으로 소통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SNS와 빅데이터 등 온라인으로도 소통이 가능해졌다. 과거에는 주권자가 대통령과 의희가 공급하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다면, 이제는 대통령과 의회에 요구하고 지시할 수 있어졌다.

  앞으로 국민을 받드는 진정한 ‘국민정부’가 가능해질 것이라 믿는다. 국민이 온라인을 통해 완전한 정보를 갖게 되면서 정부는 국민의 완벽한 대리인이 될 것이다. 이를 이상적인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김누리 중앙대 유럽문화학부 교수 인터뷰
구체제 타파 위한 체제교체부터

- 대선 주자는 무엇을 고민해야 합니까
“정권교체와 적폐청산을 한 이후의 개혁을 고민해야 한다. 촛불 민심은 구체제를 타파하는 ‘체제교체’를 원한다. 구체제를 청산하지 않는 한 한국은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어렵다. 한국의 구체제는 크게 네 개의 기둥으로 이뤄져 있다. 정치 영역의 수구·보수 과두지배 체제, 남북 분단체제, 경제 영역의 재벌독재 체제, 그리고 사회 영역의 권위주의 체제이다.

  한국 정치에서 소위 보수라 불리는 집단은 정통 보수의 가치인 역사, 민족, 공동체를 중시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는 ‘수구’ 세력이다. 남북 분단체제는 수구를 키워온 온상이다. 수구가 북한의 위협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권력을 위임받아온 셈이다. 또한 진보라 일컬어지는 집단 역시 이들이 내놓는 노동, 복지, 경제 정책 등을 보면 보수 성향이 강하다. 이 두 집단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진보를 배제해온 것이 우리의 현대 정치사이다.

  재벌독재란 사실상 재벌이 우리 사회 전체를 장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구조적으로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트린다.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재벌이 우리가 위임한 정치권력보다 우위를 차지한다는 점에서다. 재벌은 정치 외에도 사회, 문화, 방송 등을 장악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 깊이 자리한 권위주의 문화도 문제다. 학교, 기업 등은 물론이고 남녀 불평등 등의 사안에도 침투해있다. 이 네 가지 축이 얽혀 한국 구체제를 이룬다.”

- ‘근본적인 개혁’의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정치 영역에선 선거 제도 개혁을 이뤄야 한다. 사표를 방지하고 복지, 환경 등에 진보적 의제를 다루는 정당들이 더 쉽게 의회에 진입하도록 바뀌어야 한다. 국민을 대의(代議)하는 데 있어 한국의 단순소선거구제가 가진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경제 영역에선 진정한 경제민주화를 위해 ‘노사공동결정제’를 도입해야 한다. 실제로 독일에선 기업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의 절반이 참여하고 있다. 재벌의 전횡을 회사 내에서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또한 노동자가 사회 내에서 존엄한 존재로 인식되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토대 마련이 가능해진다.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선 정치 교육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민주주의자가 되도록 교육해야 한다. 그동안 아이들은 규율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 올바르다고 배워왔다. 이런 교육은 부당한 권위에 쉽게 맞서지 못하도록 아이들을 학습시켰을 뿐이다, 또한 남북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첫걸음으로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스스로 민주주의자가 돼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통해 두 가지를 배웠다. 한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위대한지 깨달았고, 동시에 얼마나 취약한지 통감했다. 애초에 박 대통령의 당선은 한국 민주주의가 취약했기에 가능했다. 민주주의자가 되기 위한 노력은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됐는지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다.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는 언제든 파시즘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국민주권주의가 확실히 보장될 수 있는 개헌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논의하며, 요구해야 한다. 국민이 보다 강력하게 권력을 통제하기 위해서다. 내각제, 분권형 대통령제 등 정치공학 차원에서 권력구조를 논의하기 보다 더 근본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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