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동생과 싸우고 엄마한테 혼날 때면 늘 하던 변명이 있었다. 동생을 가리키며 “쟤가 먼저 그랬어.” 동생도 지지 않고 변명한다. “언니가 먼저 시비 걸었어.” 우리 남매는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려고 서로 ‘남 탓’하기에 급급했다. ‘남 탓’의 결과는 뻔했다. 더 큰 잔소리로 다가왔다.

  여기 ‘남 탓’하기에 급급한 이가 또 있다. 지난 겨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AI로 인해 살처분 한 가금류는 누적 3700만 마리를 넘어섰다. AI의 확산으로 790개 넘는 농가가 피해를 봤고, 방역을 하던 공무원은 과로로 순직했다. 이런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일을 저지른 장본인은 철새다.

  봄철이면 봄의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나온 나들이객들의 눈과 목을 따갑게 하는 불청객이 있다. 바로 미세먼지다. 뉴스에선 대한민국을 뒤덮은 미세먼지에 대한 보도가 연일 쏟아져 나온다. 지난주 서울의 미세먼지농도(PM2.5)는 최고 60㎍/㎥까지 올라갔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권고하는 기준치인 25㎍/㎥에 비하면 2배 이상이나 높은 수치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세먼지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 한국이 미세먼지로 병들어 가는 이유는 중국 때문이다. 지난 봄에는 고등어를 구울 때 발생하는 연기 때문이기도 했다.

  AI가 대한민국을 강타한 이면에는 우유, 계란, 고기 등의 대량 생산을 위한 무자비한 공장식 사육이 있었고, 대한민국이 미세먼지로 병들어가는 이면에는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계속해서 지어지고 있는 석탄·화력발전소와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이 있었다. 

  지금 당장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려고 ‘동생 탓’으로 돌리기 급급했던 어린 날의 나처럼 정부는 당장 국민의 뭇매를 피하려고 ‘남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이제 그만 현실을 직시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그에 합당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더 큰 국민적 비난으로 돌아오기 전에 말이다.

  봄이 가면 이제 곧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이 올 것이다. 이번 여름엔 또 어떤 ‘남 탓’을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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