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 | 김나영 기자 me0@
▲ 사진 | 심동일 기자 shen@

# 김진겸(공과대 산업경영14) 씨는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짜증이 날 때가 있다. 그는 GPS를 이용한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데, 친구들이 GPS를 조작해서 얻은 희귀 유닛을 보여주며 자랑해서다. 하지만 그는 친구들이 부럽지도 않고, 대단해 보이지도 않았다. 며칠 전엔 친구가 GPS 조작을 권유하기까지 했다. 그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게임 불법 프로그램, 일명 ‘핵(Hack)’으로 게임사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게임을 쉽게 플레이하기 위해, 혹은 다른 유저보다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일부 유저들은 핵을 사용한다.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핵은 누구나 쉽게 구매할 수 있다. 게임 생태계를 파괴하는 핵은 선량한 유저를 괴롭히고, 게임사에 직·간접적인 피해를 초래한다. 이처럼 게임 핵 문제가 심각하지만 오는 6월 21일부터 시행되는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에는 핵과 관련된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 개정안의 취지대로 게임 환경이 개선되려면 정부, 게임사, 유저의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게임의 즐거움과 완결성 훼손
  핵은 게임에서 사용되는 불법 해킹 프로그램이다. 대표적인 핵으로 매크로, 에임핵(aim-hack)을 꼽을 수 있다. 매크로는 반복적인 행위를 자동으로 플레이해주는 프로그램으로, ‘RPG(역할수행게임)’에서 주로 사용된다. 에임핵은 무기가 자동으로 적에게 조준되는 프로그램으로, ‘FPS(1인칭슈팅게임)’에서 주로 사용된다. 이 외에도 무빙핵, 맵핵, 골드핵 등 게임마다 다양한 종류의 핵이 존재한다.

  핵은 유저들 간의 공정한 경쟁을 방해해 유저들이 제대로 게임을 이용하지 못하게 만든다. 핵은 게임 초창기부터 존재해왔다. 싱글 플레이 게임이 대부분이었던 당시엔 핵에 대한 문제의식이 공유되지 않았지만, 2000년대 온라인 기반의 게임이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핵 문제가 대두됐다. 박지웅 게임평론가는 “핵의 사용은 다른 유저의 즐거움을 심각하게 침해하며, 반칙이라는 점에서 본질적 문제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핵은 게임사의 의도와 다른 방식으로 게임을 이용하게 함으로써 게임의 완결성을 훼손하기도 한다. 박지웅 평론가는 “모든 게임은 게임사가 의도한, 내용과 형식상의 완결성을 가진다”며 “싱글 플레이 게임이라 할지라도 핵은 이 둘 모두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어
  현재 핵은 인터넷에서 누구나 구매하거나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다. 핵 판매자는 인터넷 카페, 유튜브 등을 통해 핵을 홍보하고, 카카오톡이나 네이트온 등을 이용해 판매한다. 실제로 유튜브에 ‘에임핵 판매’를 검색하면 수십 명의 판매자를 확인할 수 있다. 

  핵 판매 실태를 알기 위해 본지는 한 판매자에게 핵을 구매할 것처럼 문의를 진행했다. ‘정지를 당하지 않냐’는 질문에 판매자는 “6개월간 정지 사례가 없었다”며 “본인도 핵을 쓰며, ‘오버워치’ 랭크 4120점”이라고 자랑했다. 판매자의 설명에 따르면 핵을 구매하면 세팅·실행까지 판매자가 1:1로 책임지고, 걸리는 시간은 10분 정도다. 정지를 당하거나 핵이 막히면 200% 환불을 보장하기도 한다. 주의사항을 묻자 판매자는 “블리자드 본사 앞에서만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했다.

  핵을 구하기가 쉬워지다 보니 게임물관리위원회의 활동도 바빠졌다. 2014년 136건에 불과했던 불법 사이트(핵 관련) 차단 건수는 2016년 728건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오히려 핵의 제작과 유통은 최근 들어 개인에서 기업형태로 발전해 더 치밀해지고 있다. 하나의 사이트를 차단해도 주소의 숫자만 바꿔 다시 사이트를 개설한다.

  핵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만큼, 게임 유저들도 핵의 유혹에 빠지기 쉬워졌다. 이모(경영대 경영13) 씨는 유명 온라인게임의 무빙핵을 잠시 사용한 적이 있다. 이 씨는 “다른 유저가 핵을 사용하는 것을 보며 안 쓰면 손해라는 생각에 처음 시작했다”며 “대부분의 동작을 대신 해주는 덕분에 편하게 게임을 할 수 있었지만, 게임사의 핵 단속이 강화되곤 적발될까 두려워 지금은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핵을 구매하거나 다운받으면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도 있다. 실제로 2월 23일, 한 10대 청소년이 스마트폰 인기게임 ‘포켓몬고’의 사냥핵에 악성코드를 심어 유포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악성코드에 감염된 PC는 관리자가 명령을 내리면 다른 PC를 디도스(DDoS) 공격할 수 있는 좀비PC로 이용됐다.

  게임사는 핵과의 전쟁 중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게임사들도 핵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핵을 사용한 유저의 계정을 정지하고, 핵 개발 및 유통 업자에게 법적 조치를 취한다. 실제로 지난 3일 미국의 유명 게임사 ‘블리자드’는 독일의 핵 개발사 ‘보스랜드’와의 피해보상 소송에서 승소해, 850만 달러(95억)​의 보상금 판결을 받았다. 최근엔 한국에서 ‘오버워치’의 핵 유저가 창궐하자, 라이선스를 구매하지 않은 국외 계정을 차단하기도 했다. 블리자드코리아 박문희 홍보 부팀장은 “미국 소송에서 판결된 벌금의 액수는 핵의 제작·유통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며 “다른 유저에게 피해를 주는 불법 프로그램 사용자는 게임 영구정지처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게임사는 핵을 사실상 방치하는 것이 아니냐는 유저들의 비난을 받는다. ‘리그오브레전드(LOL)’의 게임사 한국지부 ‘라이엇코리아’는 핵에 대한 미숙한 대처로 유저들의 매서운 질타를 받았다. 핵이 등장하고 비교적 일찍 신고가 이뤄졌음에도 게임사에서 이를 제대로 제재하지 않은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유저들은 게임사가 핵을 방관했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게임사는 문제가 불거지고 5개월이 지나서야 핵 방지 시스템을 도입했다. 라이엇코리아 관계자는 “시스템 도입 이전에도 불법 프로그램의 적발은 진행됐지만 한계가 있었다”며 “불법 프로그램은 언제나 새로운 것이 제작돼 근본적인 대처가 어렵다”고 말했다.

  핵은 빼놓은 게임법 개정안
  작년 12월 이동섭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사설서버 및 위변조 프로그램 처벌법’ 등 게임산업진흥법(게임법) 일부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오는 6월 21일부터 시행된다. 개정안을 발의했을 당시와 현재에도 이동섭 의원을 비롯한 정부기관에선 개정안의 취지가 사설서버 및 게임 핵의 근절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 개정안을 살펴본 결과 게임 핵과 관련된 개정 내용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개정안에는 ‘게임물 관련사업자가 제공 또는 승인하지 아니한 게임물을 제작, 배급, 제공 또는 알선하는 행위’ 등의 사설서버에 관한 조항과, ‘5년 이하의 징역과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사설서버 처벌 규정이 신설됐다. 사설서버와 관련된 조항만 신설된 것이다. 게임 핵과 관련된 조항 및 처벌 규정은 ‘1년 이하의 징역과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개정안 이전과 변함이 없다. 법무법인 온새미로 이병찬 변호사는 “핵과 같은 불법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이번 게임법 개정에 별도로 건드린 바가 없다”며 “이번 게임법은 개정의 취지가 잘 살아나지 않는 개정안”이라고 말했다.

  게임 핵을 근절하기 위해선 각 주체의 다각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게임사 측에선 핵 방지 시스템을 도입하고, 핵 감시·제재 수준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차원에선 게임 핵 관련 법안의 양형을 높일 필요가 있다. 게임 유저의 인식 개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박지웅 평론가는 “게임 핵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게임의 재미를 축소시킴을 유저들이 인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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