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 | 김나영 기자 me0@
  일러스트 | 주재민 전문기자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에 살던 60대 노모와 두 딸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동반 자살했다. 세 모녀에게는 10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치료비용에 대한 빚이 남아 있었다. 어머니는 팔을 다쳐 일하기 어려웠고, 두 딸은 빚으로 신용불량자가 돼 취업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득이 전혀 없던 상황에서 매달 그들에게는 4만 8000원의 건강보험료가 부과됐다.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고 사회에서 소외됐던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또 다른 ‘송파 세 모녀’들이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작년 기준 국민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중 1년 이상 장기체납자는 102만 5000세대다. 그중 약 72%인 74만 세대가 월 보험료 5만 원 이하인 저소득층이다. 이들은 생활이 어려워 5만 원 이하의 건강보험료도 낼 수 없는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자’다. 건강보험료 체납액을 탕감해주는 결손처분 등의 지원을 늘려 체납자를 도우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낼 수 없는 건강보험료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자는 건강보험과 의료급여의 사각지대에 있는 차상위계층이다. 수입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면 기초생활수급 대상으로 분류돼 의료급여를 받고 건강보험료 납부의무도 면제된다. 

  하지만 차상위계층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의료급여 대상자로 구분되지 않는다. 기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의 문제점 때문이다. 기존 건강보험에서는 소득이 없거나 적더라도 평가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가 부과됐다. 평가소득은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중 연간 소득 500만 원 이하 세대에 대해 성별과 연령, 재산, 자동차로 추정해 점수화해 부과한 소득이다. 송파 세 모녀는 수입이 전혀 없었음에도 성별과 나이를 고려해 부과된 3만 6000원과 월세로 살고 있는 집에서 나오는 1만 2000원, 총 4만 8000원이 매달 부과됐다.

  생계형 체납자는 소득이 적거나 없어 쉽게 장기형 체납자로 전락한다. 6개월 이상 체납 시 장기체납자로 분류되며 이때 추심이 시작된다. 독촉장이 도착하고 통장과 같은 동산이 가압류되는 등의 심리적·경제적 제재가 가해지는 것이다. 체납보험료에 연체료도 부과된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정숙 활동가는 “위태로운 날들을 살아가는 체납자가 국가기관으로부터 압류를 당했을 때 느끼는 위축감은 굉장하다”며 “국가기관이 지원이 아닌 압박을 줘 고통을 가중시키는 방식이 문제”라고 말했다.  

  건강보험료 체납자는 건강보험 혜택도 정지돼 병원 이용이 어려워진다. 병원을 이용할 수는 있지만 부당이득금을 내야 한다. 부당이득금은 건강보험료 체납자가 병원을 이용하면 건강보험공단에서 병원에 지급한 금액을 체납자에게 다시 부과하는 금액이다. 결국 생계형 체납자는 아파도 참고, 병원 가기를 꺼리게 된다. 제때 치료되지 않은 병은 악화돼 경제활동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정부는 체납자 지원 시스템의 일환으로 결손처분제도를 실행하지만 제대로 운용되고 있지 않다. 체납액을 탕감해주는 결손처분제도의 조건과 절차가 까다로워서다. 결손처분을 신청한 체납자는 심사 과정에서 가난을 증명해야만 한다. 정혜주(보과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자격심사의 핵심적인 단점은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며 “내가 나를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완전히 증명해야 해 자존심이 상하는 등의 정신적 고통이 심하다”고 말했다.

  연대납부 의무로 인한 피해도 심각하다. 특히 20, 30대 청년층에게 집중되는 문제로 청년빈곤으로까지 연결된다. 아르바이트라도 해 소득이 생기면 연대 납부를 피할 수 없다. 보험료 납부에 대한 연대책임으로 한 청년의 취업이 취소된 일도 있었다. 10여 년 전 헤어진 아버지가 보험료를 체납해 월급통장이 압류돼서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으로 미성년자에 한해 연대납부의 의무가 사라졌지만 20세 이상 성인은 여전히 부모가 체납한 보험료에 대한 책임이 남아있다. 정혜주 교수는 “요즘 대학생은 취업이 어렵고 빚을 안고 졸업하는 경우도 많다”며 “어른도 제대로 납부하지 못했던 보험료가 형편이 더 어려운 청년들에게 넘겨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 필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한 안이 3월 30일 국회를 통과하기는 했지만, 체납자들의 부담을 줄이고 건강하게 살 권리를 보장해주려는 노력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으로 평가소득이 폐지되고 연 소득 100만 원 이하에게는 일괄적으로 최저건강보험료 1만 3100원이 적용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개편안의 목적을 서민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생계형 체납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신영전(한양대 의학과) 교수는 “보험료 액수를 약간 줄여주는 것은 기술적인 부분만 지엽적으로 건드린 정책”이라며 “개선 노력을 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정작 가난한 사람들이 병원에 가지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체납자의 도덕적 해이와 성실납부자와의 형평성을 근거로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김정숙 활동가는 “누구나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며 “보건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도 건강권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김정숙 활동가는 “건강보험료를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형평성을 근거로 조금이라도 보험료를 내라고 강요하는 현 건강보험제도야말로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가장 해결이 시급한 부분은 체납자의 경제적 부담 해소다. 건강보험료 체납자에 대한 급여제한과 부당이득금 환수 등 추심 행위를 줄이고 결손처분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생계형 체납자의 건강보험료를 탕감해줘야 한다. 제제를 줄이고 지원시스템을 확장하는 것이다. 특히 취약계층인 청년과 한 부모 가정, 장애인에 대한 지원부터 필요하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의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실태조사 결과 및 제도개선 방안’에 따르면 대만과 일본은 다양한 보험료 경감‧지원제도를 실행하고 있다. 체납자가 체납 사실을 조기에 알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중앙 또는 지방 정부가 직접 보험자를 맡아 체납자의 소득과 재산을 파악해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의료급여 확대도 해결책 중 하나다. 의료급여가 확대되면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생계형 체납자가 의료급여 보장범위로 유입될 수 있다. 신영전 교수는 “건강보험과 의료급여 중간에 놓인 차상위계층을 책임지는 제도가 없다”며 “보험료 납부 능력이 없는 사람은 의료급여 대상자로 분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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