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35조 1항,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아이가 아프면, 그 가정은 무너진다. 무자비하게 부과된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하면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 건강할 권리는 손닿지 않는 곳에 있다.
돈이 없어 건강하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해 돈이 없어지는 이 상황에서 해결책은 하나다. 헌법에 보장된 건강할 권리를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 보장하는 것.

 

  “건강하던 아이가 갑자기 ‘길랭바레 증후군’이라는 중증질환을 진단받았어요. 예상치 못한 발병이었죠. 중증 질환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병원비가 비싸요. 치료가 먼저지만 현실적으로 병원비부터 걱정돼요. 간병으로 경제활동이 어려워져 병원비, 빚만 늘어가요.

  아픈 아이를 24시간 간호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다른 아이를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어요. 아빠는 돈을 벌어야 해 아이를 돌봐줄 수 없어요. 아이를 맘 놓고 치료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보장해줬으면 좋겠어요.” 길랭바레 증후군 환아(患兒) 보호자 홍순금 씨의 호소는 간절했다.

  어린이 환자를 돌보고 치료하는 데는 어른 환자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그러나 어린이 병원비 의료보험 보장률이 충분하지 않아 가족들은 병원비 부담으로 고통 받고 어린이 전문병원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국가의 어린이 병원비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3월 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어린이 병원비 국가보장을 위한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는 윤소하, 설훈, 서영교 국회의원이 주최했고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어린이병원비 국가보장추진연대가 주관했다.

▲ 3월 23일, '아이가 아프면 모두가 아프다'는 주제로 어린이병원비 국가보장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아이가 아프면 무너지는 가정
  
아동이 질병을 가진 경우는 대개 중증·희귀난치성 질환인 경우가 많다. 그 질병들은 대부분 보험 혜택에서 제외돼 국가 지원을 받지 못하고 환자와 가족이 병원비를 전부 부담해야 한다. 특히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환아는 부모 중 한 명이 경제활동을 그만둬야 한다. 결국 전체 가계 소득은 감소한다. 소득이 줄어들면 값비싼 병원비를 충당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김은정 아동복지연구소장은 “아동 질병 발생 시 병간호로 생산성 손실이 발생해 빈곤에 처할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부모는 아이의 병간호로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다른 형제는 돌봄에서 방치되는 등의 고통도 있다. 부모 중 한 명은 아픈 형제를 돌봐야 하고 다른 한 명은 직장생활을 해야 해서다. 경제적으로 부유해도 간병인이나 아픈 아이의 생활을 도와주는 활동보조인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김은정 아동복지연구소장은 “아이의 투병이 오랜 기간 지속될수록 가족도 지치게 된다”며 “보호자는 건강상태가 나쁘며 하루 중 여가시간이 전혀 없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엄마가 직장을 그만두고 24시간 아이를 간병했으나 만성적인 수면 부족으로 잠시 조는 사이 아이의 호흡기가 분리돼 아이가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비급여의 급여화가 핵심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에 의하면 건강보험보장률은 2008년부터 60% 초중반에 머물러있다. 특히 아동 중증질환은 질병코드 확인이 어려워 대부분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비급여 항목에 포함돼있다. 비급여 항목으로 구분되면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해 직접 모든 의료비를 내야 한다. 김은정 소장은 “아동의 연령이 어리고 질환이 중증일수록 정확한 병명을 진단받기 어렵다”며 “정부는 지원 대상 질병코드를 확대해 희귀병도 정부 지원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서울대 의료관리과) 교수는 건강보험 보장률이 정체되는 원인으로 ‘비급여의 풍선효과’를 꼽았다. 비급여의 풍선효과란 정부에서 기존 비급여를 급여로 끌어들이면 의료기관에서는 국가 지원이 낮아져 발생하는 적자를 면하기 위해 새로운 비급여 항목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김윤 교수는 “비급여를 항목별로 급여로 끌어들이는 기존 방식으로는 절대 풍선효과를 막을 수 없다”며 “비급여와 급여를 통틀어 포괄 수가제로 묶어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괄 수가제는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 서비스의 종류나 양에 상관없이 하나의 질병에 대해 미리 정해진 총 치료비를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다.

  어린이 병원비 보장 강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2006년 2년간 6세 미만 입원비 본인 부담 면제를 실행했는데, 외래진료가 가능한 환자도 입원을 주장하는 등 부작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 김종명 정책팀장은 “의료전달체계를 조금 더 촘촘히 만들어 혼란을 최소화해야 하지만 충분한 보장을 위해서는 의료기관이 일정 부분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정 의료서비스 확대돼야
  
퇴원 후 의료서비스의 부재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중증질환은 퇴원 후에도 지속적인 치료와 간병이 필요하다. 그러나 의료서비스 공급이 아예 없거나 소수 서비스가 존재해도 도시에만 집중돼있어 이용이 어렵다. 특히 가정 의료서비스 확충이 시급하지만, 현재 공식적으로 아픈 아이의 가정에 직접 방문해 제공되는 의료서비스 자체가 없다. 결국 보호자가 간병의 모든 책임을 떠맡게된다.

  전문가들은 간병인·활동보조인 제도 확대를 주장한다. 간병인·활동보조인 제도는 가정의 아픈 아이들에게 전문적인 치료를 제공해 24시간 병간호에 시달리는 보호자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병원 거점의 의료팀이 구성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윤 교수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로 이뤄진 팀을 꾸려 중증 아이를 돌보는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재활치료도 공급이 부족하다. 공급이 있어도 도시에만 집중돼있어 접근성이 떨어진다. 이로 인해 입원이 불필요한데 치료를 위해 입원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가족들은 아이를 따라 도시로 올라와야 하고 아이는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지 못한다. 보건복지부 정통령 보험급여과장은 “재활의료체계 개편을 논의 중”이라며 “소아 재활에서도 적절한 재활을 공급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환아와 가족의 심리상담과 발달서비스 지원도 필요하다. 아동기 필수적인 사회발달환경을 제한받고 있는 환아와 오랜 간병으로 지친 보호자의 정서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김은정 소장은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치료 과정에서 24시간 간호에 매달리면서 경제적 압박까지 감당하고 있는 보호자가 많다”며 “심리상담 등 복지 서비스도 함께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 장우선 기자 priority@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