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게 우리 의사들의 역할이에요.”

  병원 밖 아픈 아이들도 도움이 필요하다. 어린 나이에 중증 질환을 겪은 환자는 지속적으로 재활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의료서비스와 낮은 병원 접근성으로 재활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다.

  이런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숨은 노력이 있다. 박문석(분당서울대학교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뇌성마비 어린이의 삶에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 병원 밖으로 나섰다. 박 교수는 7년째 전국을 오가며 환자들의 삶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어떤 의료봉사를 하고 있나
  
“알뱅크(R-Bank) 사업에 참여하고 있어요. 알뱅크 사업은 뇌성마비 아이들에게 자세유지 도구를 제공해 재활을 돕는 사업이에요. 거동이 불편한 뇌성마비 아이들이 몸을 고정할 수 있도록 돕는 자세유지 도구는 그 가격이 600~700만 원 정도 돼요. 아이들의 성장 단계에 맞게 기구도 2~3년에 한 번씩 바꿔줘야 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값비싼 기구를 2~3년마다 바꿔줄 여력이 있는 가정은 거의 없어요. 그래서 저희는 은행처럼 기구를 빌려줍니다. 아이가 자라서 기구가 더는 몸에 맞지 않게 되면 환자 가정은 기구를 반납하고, 저희는 새로운 기구를 빌려줘요. 반납한 기구는 고쳐서 다른 아이에게 빌려주죠. 또 수술이 필요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병원 사회사업실과 상의해 수술비와 보장구를 지원해주고 있어요.

  저는 뇌성마비 아이를 진료하고 재활치료 진행에 대해 상담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기존 공공의료 사업은 시골에 내려가 감기약, 관절약, 혈압약 등을 나눠주고 공치사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이건 기업의 지원이나 전문의사 없이 지역 내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요. 의미 있는 의료봉사는 환자에게 꼭 필요하지만 해결하기 힘든 진료를 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알뱅크 사업은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병원 접근성이 떨어지는 아이들에게 진료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어요.”

▲ 박문석 교수(왼쪽)가 제주도를 방문해 뇌성마비 환자의 재활을 돕고 있다.

- 의료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제가 해 준 수술이 환자에게 정말 도움이 됐는지,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했어요. 아이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교육을 받는지 등 치료 밖의 영역에도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직접 가서 알아보고 싶었어요.

  뇌성마비는 한 번 수술하면 완치되는 일회성 질환이 아니에요. 수술을 해도 불편한 점이 남아 평생 영향을 줘요. 제가 정형외과 영역에서 해주는 수술만으로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부족해요. 예전에는 환자에 대한 접근방식이 하향식이었어요. 환자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묻는 게 아니라 의사 스스로 판단해 해결책을 제시해줬죠.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치료가 이뤄지면 환자들의 문제를 다 파악할 수 없어요. 거꾸로 올라와야 해요.

  뇌성마비 환자들은 고관절 수술을 하고 통깁스를 해요. 그런데 어느 날 한 환자에게 퇴원해도 좋다고 말했더니 보호자가 집이 5층인데 통깁스를 한 아이를 어떻게 데리고 올라가냐고 묻는 거예요. 사실 저는 몰랐어요. 통깁스를 하는 게 환자와 보호자에게 어떤 문제가 되는지. 이때 환자와 보호자에게 단순히 수술과 치료만 문제가 아니라 집이 어떤 형태고 재활하는 곳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되고, 부모가 맞벌이라 낮에는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고 이런 일상적인 부분이 훨씬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병원에서는 3분 내로 진료를 끝내고 바로 다른 환자를 보는 시스템인데 외래진료를 가면 환자와 천천히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아요. 치료 얘기뿐만 아니라 사는 이야기도 할 수 있고요. 뇌성마비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처음 시작하게 됐는데 상당히 만족하며 봉사하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 공공의료체계의 장단점은
  
“우리나라는 의료 보장 범위가 넓으면서 병원 문턱도 낮아요. 우리나라처럼 전 국민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나라도 별로 없고요. 캐나다처럼 사회주의 의료체제를 갖춘 나라는 국가 의료 보장률은 높으나 필요한 서비스를 바로 받기 어렵고, 미국처럼 자본주의 의료체제를 갖춘 나라는 돈만 있으면 원하는 의료서비스를 바로 받을 수 있지만 국가 의료 보장률이 낮죠. 반면 한국은 아프면 바로 병원을 찾아 상담받을 수 있고 의료보험도 잘 돼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공공의료체계가 완벽하지 않기에 일부 환자의 경우 혜택이 부족해요. 우리나라는 질환 이름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어요. 병명에 따라 의료혜택이 불평등하게 주어지죠. 박근혜 정부 때도 ‘암을 정복하겠다, 암은 다 도와주겠다.’ 이렇게 말했어요. 지금 문재인 후보도 ‘치매를 극복하겠다’고 말하고요. 선거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 중심적으로 의료정책에 접근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특정 질병에만 집중하게 되면 다른 질환이 암이나 치매만큼 힘든 병인데도 혜택에서 소외돼요. 질환 이름보다는 그 질환이 환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중점을 둬야 해요.”

 

- 공공의료체계 내에서 의사의 역할은
  
“의사들은 수술이나 치료만 하려고 하지만,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환자들의 삶에서 발생하는 일상적인 문제예요. 단지 진료나 수술을 받으러 오는 그 당시의 환자 상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환자의 실제 삶을 고려해야 해요. 특히 뇌성마비처럼 만성질환을 다룰 때는 이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교육은 어떻게 받고 있고 집안에서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나중에 직업은 가질 수 있는지 이런 부분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 | 장우선 기자 priority@
사진 | 이명오 기자 myeong5@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