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문턱을 넘어서자 제기시장 스타 강아지 ‘소맥이’가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소맥이가 누운 자리 벽면에는 고대생들의 낙서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가지각색 잉크가 뒤섞여 이제는 거무스름하게 보이는 벽지는 그간의 세월을 가늠케 한다. 개업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형제집은 여전히 제기시장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형제집 어머님’ 한만련(여·68) 씨는 쑥스러운 듯 말을 아끼며 형제집과 함께한 그간의 소회를 풀어냈다. “2002년 형제집 간판을 다시 달고 장사를 시작했으니 벌써 15년이 넘었네요. 맛있게 밥 먹어준 여러분 덕에 소맥이와 함께 살아온 지난 날이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한만련 씨가 형제집을 운영하지 않았다면 제기동 형제집은 추억 속의 장소로 남았을 수도 있었다. 1980년대에 생긴 형제집은 주인이 바뀌면서 ‘혜성집’으로 이름이 바뀐 적 있다. 이를 인수해 다시 ‘형제집’으로 바꾼 게 한만련 씨다. 한만련 씨는 식당 이름을 ‘형제집’으로 바꾼 데에는 졸업생들의 영향이 컸다고 했다. “원래 닭갈비집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많은 졸업생들이 찾아와서는 ‘형제집’이 어딨는지 묻더라고요. 마음 속에 추억을 품은 고대생들을 위해 다시 ‘형제집’으로 돌아왔어요.”

  고대생들에게 형제집은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식당이자 술집으로 유명하다. 식당 한 켠에는 배고픈 학생을 위한 셀프 주먹밥도 준비돼 있다. 한만련 씨가 푸짐한 음식을 고집하는 데에는 학생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녹아 있었다. “그저 맛있게 먹어주는 고대생들의 얼굴을 보는 게 제 낙이에요. 아무리 여유로워도 곁에 엄마가 없다면 외롭고 고픕니다. 형제집이 그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엄마 냄새나는 장소로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한 자리를 지키다보니 형제집은 재학생 뿐 아니라 졸업생들도 즐겨 찾는 장소가 됐다. 가끔 졸업생들이 재학생들의 술값을 대신 계산해주는 모습도 보인다. 단골 또한 많아 형제집을 자주 오던 학생들이 졸업해 작은 선물을 들고 찾아오는 일도 종종 있다. 최근에는 청첩장을 들고 찾아오는 졸업생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한만련 씨는 그런 학생들의 모습을 보는 게 장사하는 맛이라고 했다. “졸업한 학생들이 ‘이모’라고 부르며 다시 찾아줄 때만큼 기쁜 일도 없어요. 고맙다는 말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형제집이 제기시장 일대를 지켜온 지난 수십 년간 고려대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한만련 씨는 요즘 식당에서 보이는 고대생의 모습에서 과거 고대생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학생들이 많이 착하고 얌전해진 것 같아요. 술 마시는 양도 줄었고 귀가 시간도 빨라졌어요. 술 마시고 서로 티격태격하고 다투던 모습도 최근에는 볼 수 없네요.” 학생들이 달라지니 형제집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오후 5시에 문을 열어 아침 7시에 닫았지만 최근에는 점심 경에 열어 새벽 2시 전에 영업이 끝난다.

  최근 상권이 참살이길로 이동하면서 제기시장에 위치한 형제집에도 학생들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제기시장 근처엔 노래방, 당구장, PC방 등 놀거리가 없고 버스 정류장 등 인프라가 부족해 접근성이 떨어진 탓이 크다. 하지만 한만련 씨는 여전히 학생들에게는 고마운 마음뿐이라고 했다. “우리 식당은 학생들이 주로 2차, 3차로 많이 오는 곳이에요. 술에 취해도 잊지 않고 형제집을 찾아주는 학생들의 마음이 고마울 뿐입니다.”

글·사진 | 김민준 기자 i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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