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지극히 자명한 사실임에도 우리는 마치 죽음이 나와는 무관한 일인 것처럼 기억 저편에 꼭꼭 숨겨 두고 좀처럼 꺼내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잘 살기 위해서는 죽음을 들여다봐야 한다. 잘 죽는 것을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더 좋은 삶은 죽음을 터놓고 이야기 나누는 데서 출발한다. 

▲ 사진 | 심동일 기자 shen@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인터뷰 
  
“주소가 어떻게 되세요? 이거 보내드리면 자녀와 함께 작성하세요. 오른쪽에 대리인 두 명 지정하는 난이 있는데 가급적이면 자녀들로 쓰시고요.” 을지로에 위치한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사실모)에는 매일 수십 통의 상담 전화가 온다.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를 문서화하는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싶다는 것이다. 

  사전의료의향서 쓰기 캠페인을 진행해오다 2012년 정식 단체로 발돋움한 사실모는 2014년 보건복지부의 정식 허가를 받으면서 사단법인으로 거듭났다. 사실모 윤서희 팀장은 “저희는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상담과 보급 그리고 보관을 담당하고 있어요. 어르신들이 주로 복지관이나 경로당, 노인정을 통해 사전의료의향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저희에게 전화를 주시면 저희는 문서를 보내거나 지역협력기관을 통해 직접 방문해 교육도 진행하고 있어요.” 

  사실모는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이라는 슬로건 하에 활동하고 있다. 윤서희 팀장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첫걸음이 사전의료의향서라고 소개한다. “현대 사회에서 노인은 고독하고 가난한 경우가 많아요. 결과 중심의 사회에서 삶의 마지막 단계인 노년기 모습을 자신의 전체 삶의 모습 또는 결과라고 생각해 노년기 자존감이 낮은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삶을 위로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이는 웰다잉 교육을 통해 가능해요. 그 교육의 첫 고리가 바로 사전의료의향서예요.”
사실모에는 사전의료의향서 상담 및 작성을 돕는 상담 자원봉사자 17명이 있다. 금요일 상담을 담당하고 있는 양영선 전문상담사는 7년째 사실모에서 자원봉사 중이다. “어릴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하다 겨우 살아난 경험이 있어요. 항상 머릿속에 이 기억이 남아 죽음이 저를 따라다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2년 동안 죽음준비지도자회 교육을 받았고 현장을 더 알고 싶어 사실모에서 상담도 하고 강연도 하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년 1월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면서 내년 2월 시행에 앞서 공식적인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법적 서식이 생긴다. 공식 서식이 생기며 그동안 시민단체에 의존해 진행돼오던 사전의료의향서 작업에 기반이 마련될 거라 양영선 전문상담사는 기대한다. “현장에서 사전의료의향서가 없어 안타까운 일이 많았어요. 앞으로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어떻게 바뀔지 벌써 기대돼요.” 사실모는 앞으로 그간 보관해온 사전의료의향서를 새로운 법적 서식에 맞게 의향서 변환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윤서희 팀장은 서식을 작성할 때 반드시 가족과 본인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것을 권유했다. “서식을 작성하면서 가족 간의 화합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연명의료 결정도 함께 논의하고요.” 

▲ 사진 | 김혜윤 수습기자 press@

  ‘죽음과법’ 이준일 교수 인터뷰
  “죽음은 사회적 맥락 속에 있어요. 결국 제도의 문제이기 때문에 법학적 관점에서 죽음을 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해요.”

  그가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세월호 참사였다. 300명이 넘는 사람들, 그것도 대부분 고등학생이 집단으로 목숨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준일(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죽음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자연사, 뇌사, 자살 등 죽음의 유형을 구분해 법학적으로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담은 책을 냈다. 2015년 1학기에는 저서 <13가지 죽음>과 함께 책을 읽고 죽음을 법학적으로 사유하고 토론하는 핵심교양 ‘죽음과법’ 수업을 열었다. “죽음이라는 건 나이와 상관없이 찾아와요. 젊은 나이에도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고, 또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할 수도 있어요. 대학생들이 죽음에 대해 미리 고민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죽음에 대한 강의를 열었죠.” 

  이준일 교수는 죽음을 크게 자연사와 사고사로 구분한다. “사고사는 세월호처럼 불안정한 안전 시스템 등 사회적 환경이 만든 죽음이에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법 제도고요. 나아가 자연사나 병사도 마찬가지로 제도의 문제죠. 인간의 삶의 질은 어떤지, 병들면 치료할 수 있느냐는 복지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이처럼 죽음에는 개인의 실존적 의미뿐 아니라 많은 경우 사회적 의미가 강하게 내포돼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법학적 사유가 중요하다. 이 교수는 법은 안락사와 뇌사처럼 우리 사회에서 인정할 수 있는 죽음을 규정하기도 하고 군사정권 시절 학살, 군대에서의 자살 등 죽음의 사회적 의미를 해석하거나 평가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가 태어나서 출생신고를 하고 죽을 때 사망신고를 하는 모든 과정은 법제도 안에서 움직여요. 그럼에도 그동안 죽음에 대한 대화를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 탓에 죽음이 법적 관점에서 소홀히 다뤄져 왔죠.”
죽음에 대한 국가의 역할도 중요하다. 국가는 법의 요건과 절차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법제화한다. 나아가 제도의 오남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예방하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처벌하는 일까지 한다. “국가가 이 모든 과정에 개입하기 때문에 국가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게 두면 권한을 오남용할 수 있어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죽음에 있어 법학적 관점이 필요해요.”

  죽음은 법과 제도를 떠나 개인의 삶을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 사람들은 죽기 전에 미안하다는 말을 제일 많이 한다고 해요. 이는 죽음을 미리 준비하지 않아서예요. 평소에 가족들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미리 준비하면 고맙다는 말을 하게 돼요. 20대부터 죽음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누면 문화가 서서히 바뀔 거라고 믿어요.”

▲ 사진제공 | 행복한 죽음 웰다잉연구소

  웰다잉플래너 강원남 소장 인터뷰
  “잘 죽겠습니다!” 한 노인복지관 앞, 낯선 인사말이 흘러나온다. 곧이어 “잘 살겠습니다!”라는 대답이 이어진다.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행복한 죽음, 웰다잉연구소’ 강원남 소장이다. 강 소장은 ‘잘’ 죽는 일을 돕는 ‘웰다잉 플래너’다. 아직은 생소한 직업을 갖고 있는 그는 죽음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웰다잉 강연과 각종 캠페인을 통해 사람들의 행복한 죽음을 돕고 있다. 

  강원남 소장의 삶을 관통하는 고민은 ‘죽음’이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된 20대까지는 죽음은 그에게 두려움 그 자체였다. 7살 때는 어머니가 죽으면 다시 못 본다는 생각에 울면서 집에 들어오기도 했고, 사춘기 때는 언젠가 자신에게도 죽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생각에 잠에 드는 것도 힘들었다. “죽는 게 무서웠어요. 죽음이란 무엇이고 나는 왜 죽음을 무서워하는지, 사람들은 왜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지 답을 찾고 싶었어요.”

  죽음을 더 알고 싶어 강원남 소장은 대학 진학 후 죽음에 대한 수업을 듣고, 자살에 대해 공부하고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강원남 소장은 고민의 답을 찾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살아온 모습 그대로 죽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죽나 봤더니 자기가 살아온 대로 죽더라고요. 기쁘고 베푸는 삶을 사셨던 분들은 임종하실 때도 편안하게 돌아가셔요. 반면 삶에 원망과 분노, 욕심이 많으신 분들은 힘들게 돌아가시는 모습을 봤어요. 저에게는 굉장한 충격이었어요. 만약 제가 내일 죽는다면 이 모습 이대로 죽을 텐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죠.”

  2014년 강원남 소장은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웰다잉 플래너로의 활동을 시작했다. 호스피스 봉사활동에서 찾은 깨달음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광화문에서 사진 대신 거울을 넣은 영정사진을 들고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물음을 던지기도 하고 전국으로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는지 얘기하는 강연도 다녔다. 죽음에 대해 터놓고 얘기하고 싶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재수 없게 죽음을 왜 배우냐’며 수업 도중 나가는 사람도 있었고 복지관에서는 수강생 자식들의 민원도 들어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을 너무 힘들어해요. 심지어 죽을 사(死)와 소리가 같다고 4층도 없어요. 부모님, 자식의 죽음을 상상하기 싫기 때문에 가족끼리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어려워하고요.”

  그럼에도 강 소장은 죽음을 고민하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죽음을 고민하면 삶도 고민하게 돼요. 죽는 모습이 곧 삶의 모습이기 때문에 잘 죽겠다는 말이 잘 살겠다는 말과 같고요. 그래서 제 목표는 잘 죽는 거예요. 잘 살다 보면 잘 죽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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