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에 대한 논의 바탕으로 내년 2월부터 '웰다잉법' 전면 시행

▲ 일러스트 | 주재민 전문기자

  1997년 대법원은 보라매병원에서 병원비 부담을 이유로 사망 가능성이 높은 남편을 퇴원시킨 부인과 이를 허용한 의료진에게 각각 살인죄와 살인방조죄 판결을 내렸다. 그로부터 12년 뒤인 2009년 연세세브란스병원에서 연명치료를 받던 김 할머니의 가족들은 평소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밝혀온 김 할머니의 뜻을 존중해 병원에 인공호흡기 사용 중단을 요구했다. 병원이 이를 거부하자 가족들은 법원에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가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12년 만에 정반대의 선고가 나온 것이다. 한국 최초로 존엄사가 인정된 사건이다. 

  두 사건을 통해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사회에서 진행됐고, 이는 존엄사에 대한 법안 제정으로 이어졌다. 올해 8월부터 암 이외의 만성간경화, AIDS,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도 호스피스 대상이 되며 내년 2월에는 일명 ‘웰다잉(well-dying)법’, 호스피스‧완화의료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하지만 여전히 생명경시와 악용 가능성, 오판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보완점이 제기되고 있다. 시행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정부와 병원의 각별한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내년 2월부터 연명의료 선택 가능
 
연명의료결정법은 끊이지 않는 자살, 대형사고 등으로 죽음에 대한 논의,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배경으로 제정됐다. 웰다잉(well-dying)이란 잘 사는 ‘웰빙’의 연장선에 있는 개념으로 어떻게 하면 ‘잘’ 죽는가의 문제다. 각당복지재단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 윤득형 회장은 “뉴스를 통해 접하는 대형사고 소식이 사람들에게 죽임이 가까이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대한웰다잉협회 최영숙 회장도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사망 가능성이 높은 환자의 퇴원이 어려워져 중환자실이 영안실 대기 장소가 돼버렸다”며 “사람들은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중환자실 속 환자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 더 여유롭게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 한해 환자가 본인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강화한 법이다. 연명의료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으로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뜻한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 중 연명의료 중단에 의사를 밝힌 환자가 법의 대상이다.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를 해도 상태가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의 환자만이 가능한 것이다. 임종 과정 여부는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이 함께 판단한다. 윤영호(서울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임종이 임박하면 이를 알리는 증세들이 나타나는데, 이를 의사 두 명이 판단하기 때문에 오판이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는 연명의료계획서 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을 통해 밝힐 수 있다. 연명의료 중단,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이용 여부 등의 내용을 작성하며, 두 문서 모두 언제든 의사 변경과 철회가 가능하다. 각당복지재단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 윤득형 회장은 “연명의료계획서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단순히 의학적으로 연명의료를 받을지를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어떻게 마무리하겠다는 삶의 철학이 동반된 문서”라며 “본인의 의사도 중요하지만 가족들과 충분히 의논한 후 작성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인프라 구축과 인식 개선 필요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해지면서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말기 환자 또는 임종 과정의 환자와 그 가족에게 통증과 증상의 완화 등을 포함한 신체적, 심리적, 영적 영역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다. 한국호스피스협회 최화숙 이사는 “호스피스는 말기 환자와 가족에게 반드시 필요한 대안”이라며 “의료자원의 낭비를 막고 환자에게 질 높은 삶을 제공해 인간다운 죽음 맞이할 권리를 보장한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대상 질병의 범위가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로 늘어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호스피스 의료시설과 인력 확충은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있다. 최화숙 이사는 “아직 전문인력 양성과 시설 완비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며 “가정호스피스 지원을 활성화해 환자가 머물고 싶은 곳에서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게 한다면 어느 정도 부족한 병상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으로 경제적 약자의 치료기회가 박탈될 수 있으며 생명경시 풍조가 조장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특히 사회적으로 약자인 노인과 장애인, 노숙인 등에 대한 우려가 크다. 대한웰다잉협회 최영숙 회장은 “회생 가능성이 있음에도 경제적인 이유로 사회적으로 힘없는 대상의 치료를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들의 인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 병원은 호스피스 병동을 증축하고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절차를 구축해야 하고 정부는 이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윤영호 교수는 “임종실, 호스피스 병동 등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인 병원에 당연히 있어야 할 인프라가 적자라는 이유로 구축돼있지 않다”며 “정부는 병원이 임종 준비 시설을 마련하고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절차가 제도화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의 역할도 강조된다. 웰다잉문화연구소 김조환 소장은 “시민단체의 역할은 일반 사람들이 연명의료 중단을 오해 없이 잘 받아들이도록 돕는 것”이라며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을 통해 연명의료 중단 결정으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을 방지하도록 안내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다.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금기시하고 죽음에 대한 대화를 회피하는 문화를 타파해야 한다. 즉 전통적 유교 사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효(孝)가 강조되는 한국 사회에서 마지막까지 치료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도리이자 미덕이기 때문이다. 대한웰다잉협회 최영숙 회장은 “마지막까지 살리려고 노력하는 게 효도가 아니라 부모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일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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