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10시, 덕수궁 매표소 앞에서 사회복지법인 홍파복지원 대린원의 시각장애인 7명이 활동보조인 7명과 함께 모였다. 자원봉사자 5명과 사회복지사, 대린원 직원이 활동보조인으로 나섰다. 서울도보관광여행에서 주최하는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하는 서울도보해설관광’ 덕수궁 코스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시각장애인은 활동보조인의 팔에 가볍게 손을 올린 채로, 덕수궁의 시작점인 대한문(大漢門)으로 향했다. 들어서자마자 문화해설을 맡은 시각장애인 한(남·60) 씨가 이들을 반겼다.

  “이게 금천교(金川橋)예요. 가운데 부분에 있는 턱은 왕이 지나가는 ‘어도’라고 하는데 양쪽은 신하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이에요.” 해설사가 대한문 근처에 위치한 다리에 대해 설명했다. “좀 얕은 턱이 있죠? 여기가 임금님 가마길이래요.” 그의 설명을 들은 활동보조인이 시각장애인의 흰 지팡이 ‘케인’을 어도로 이끌었다. 케인이 덕수궁의 돌바닥을 탁탁 두드리는 소리가 바닥을 울렸다.

  “올라가볼게요.” 덕수궁에는 계단이 많아 시각장애인들의 이동은 원활하지 않았다. “이제 계단이 있어요. 처음에는 낮아요. 이번엔 높아. 꼭 잡아야 해요. 어이구 잘하신다!” 노지연(여·25) 사회복지사는 동행하는 박춘배(남·61) 씨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않았다. 이때 가까이서 들려오는 소리에 박춘배 씨가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문수비대 교대식을 위한 행진이 열리는 곳에선 북과 태평소 등 전통악기의 웅장한 음악 소리가 들렸다. “행진이 시작되네요.” 노지연 사회복지사가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풍경을 보며 말했다. 그는 한참동안 우두커니 서서 행진 음악을 느꼈다.

  덕수궁의 중심건물이자 국가 행사를 거행하던 정전인 중화전(中和殿)으로 향하던 중 노지연 사회복지사가 다급히 소리쳤다. “아저씨가 봉사자분을 잡고 움직이게 하셔야지. 봉사자분이 뒤에서 잡고 움직이시면 안 돼요!” 한 활동보조인이 어색한 손길로 동행인의 등 뒤에서 길을 안내한 것이다. 시각장애인이 다치지 않게 안내하려면 보조인이 꼭 시각장애인을 직접 잡고 움직여야만 한다. 가는 길에 또 다시 마주한 계단에 노지연 사회복지사가 주의를 줬다. “자원봉사자 분이 한 계단 내려가고 그 다음에 안내를 하는 거예요.” 버거웠을 계단을 지나 들어선 중화전은 나무 향기가 그윽이 가득했다. 중화전 안에서 이들은 촉감뿐만 아니라 냄새로 풍경을 느꼈다.

  중화전 구경을 마치고, 해설사 한 씨는 그 앞에 있는 청동으로 만든 향로에 대해 설명했다. “위에는 향을 피우고요. 아래는 솥이에요. 향로와 솥이 합쳐졌죠.” 향로를 만지던 허문순(여·66) 씨가 향로 다리를 만지며 탄성을 질렀다. “이게 발꼬락이야 발꼬락. 오메. 그런데 이쪽에는 다리가 없는데?” 그러자 자원봉사자가 손을 감싸고 반대쪽으로 가져다주며 말했다. “이쪽에도 다리 있죠? 다리 달린 솥처럼 생겼어요.”

▲ 허문순(여, 66)씨가 활동보조인과 함께 중화전(中和殿) 앞 향로를 만져보고 있다. 사진 | 김해인 기자 in@

  “우리 시각장애인이 기와를 만져볼 기회는 얼마 없잖아요. 한번 만져보시죠.” 해설사가 말하자 이들은 허리춤 높이에 손을 뻗어 암기와와 수기와를 따라 차례대로 쓰다듬었다. 고종이 다과를 들거나 외교사절단을 맞아 연회를 여는 등의 목적으로 사용됐던 정관헌(靜觀軒)의 난간에서도 이들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해설사가 난간의 문양에 대해서 설명했다. “소나무, 박쥐, 봉숭아, 그리고 당초무늬로 장식돼 있어요. 사슴이 입에 물고 있는 건 불로초입니다.” 허문순 씨가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손을 뻗었다. “사슴이 어딨어?” 자원봉사자가 사슴으로 손길을 이끌었다. “아 이게 뿔이구나. 이게 입이고. 코는 어디야?” 손길에 닿는 사슴의 형태가 자리 잡아갈수록 허문순 씨의 입가엔 미소가 지어졌다.

▲ 활동보조인이 시각장애인의 손을 감싸고 기와를 함께 느끼고 있다. 사진 | 김해인 기자 in@

  덕수궁을 관람한 시각장애인들은 ‘색달랐다’고 소감을 표했다. 그동안의 시각장애인 여행은 대부분 산책 중심이었지만 이번 여행은 촉각과 청각으로 느끼는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단이 많아 이동이 힘들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박춘배 씨는 “옛날 건물이라 어쩔 수 없는 것 같긴 하지만 피로하긴 했다”고 말했다. 이에 활동보조인으로 참여한 전순경(여·40) 씨는 “피로를 더 느낄 시각장애인을 위해 좀 더 설명을 간략하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며 소감을 밝혔다. 현재 시각장애인 여행코스 활성화를 위한 시도가 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은 상황이다. 함께 동행한 서울관광마케팅 시청각도보관광담당자 백지현 씨는 "더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도보여행을 할 수 있도록 시각장애인 관련기관들을 대상으로 홍보를 진행하고 기존 코스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며 "장애인 관광에 대한 비장애인의 인식 개선도 중요한 과제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