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근디스트로피를 앓고 있다. 근디스트로피는 유전적 질환으로, 서서히 근육이 굳어 걸을 수도 없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이 질환을 앓기 전의 나는 여행을 참 좋아했다. 특히 현지의 매력을 가장 깊이 느낄 수 있는 로컬여행을 사랑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몸은 점점 더 힘들어졌고, 여행도 힘들어졌다. 그래서 선택한 여행이 자동차 여행이었지만, 자동차 여행은 ‘여행’이 아닌 ‘이동’이었다.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며 보는 풍경은 여행에 대한 나의 갈증을 채워주지 않았다. 이런 게 무슨 여행인가 싶었다.

▲ 사진 | 친기즈 기자 oblako@

  그러다 도전한 건 인도여행이었다. 비장애인 친구 5명과 함께 수동휠체어를 들고 2달간 인도로 떠났다. 2주 동안은 낙타를 타고 사막도 건넜다. 인도여행은 여행에 대한 갈증을 채워줬지만, 예상대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사막에선 휠체어를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힘들었던 건 화장실이었다.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지만, 화장실에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엎드려서 모래를 파고 볼일을 보고나면 같이 간 친구들이 뒤처리를 도와주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사막에서 나는 기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너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인도에서 두 달을 여행했더니 어디든 다 갈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2005년 인도 여행 이후로 전윤선 씨는 국내·외 여러 곳을 여행하고 있다. 그는 유럽, 미국, 태국, 일본, 호주 등의 나라를 다녀왔고, 한국에서도 지방 곳곳을 누비고 있다. 힘들었던 인도여행을 한 후 다른 여행지는 싱겁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오히려 전윤선 씨는 선진국의 훌륭한 배리어프리 관광지를 보면서 한국을 바꿔나가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 “가장 감동을 받았던 곳은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유후인이에요. 그곳에선 내가 접근할 수 없는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웠어요.”

  일본과 독일처럼 장애인을 위한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은 어느 지역이든 여행하기 쉽지만, 한국은 장애인이 여행할 수 있는 지역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한정돼있다. 관광특화도시라고 하는 제주도도 배리어 프리 관광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은 많이 하고 있지만 일본과 독일에 비교하면 부족한 상황이다. “진정한 관광선진국이 되려면 일본처럼 디테일한 부분까지 다 갖춰져야 해요. 가장 놀랐던 건 일본의 한 우동집이었어요. 2층짜리 건물이었는데도 엘리베이터가 있었어요. 열 테이블 남짓한 식당 안에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널찍하고 손잡이가 설치된 화장실도 있었죠.”

  전윤선 씨는 국내에서 여행을 다니며 장애인이 쉽게 여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국내에서 무장애 산책길이 정착하는 데에 기여하기도 했다. 호주 시드니의 블루마운틴에 갔을 때 펼쳐져 있던 무장애 산책길에 감명 받아 광릉수목원에 직접 건의했고 결국 무장애 숲길이 만들어졌다. 식물자원을 보호하고 함께 공존해나간다는 수목원의 취지에도 적합했다. 그 후 무장애 산책길은 신지도, 경포대와 같은 백사장으로 확장됐다. “모래도 보호하고, 모두가 백사장을 거닐 수 있게 하는 길로 조성됐어요.” 제주도의 송악산에 처음 방문했을 당시에 그는 장애인 화장실이 없어 민원을 넣었고, 휠체어가 올라가기 힘든 턱을 없애기도 했으며 좁은 입구를 넓히고 안전손잡이를 설치하기도 했다.

  전윤선 씨는 휠체어가 접근 가능한 저상버스 같이 장애인들의 이동을 도울 수 있는 교통수단이 필요하단 걸 강력하게 주장한다. 봉화군 분천역에서 태백시 철암역까지 운행하는 백두대간 협곡열차인 v-train은 처음 생겼을 땐 열차자체와 내부구조물은 휠체어가 오를 수 없는 구조여서 장애인들이 쉽게 이용할 수 없는 관광시설이었다. 하지만 그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한 결과, 휠체어도 오를 수 있는 구조물로 바뀌었다. 부산의 씨티투어버스에도 처음에는 저상버스가 운행되지 않았지만, 전윤선 씨가 인권위에 진정한 끝에 현재는 2대의 저상버스가 포함돼 운행되고 있다.

  그는 언젠가 또 다른 로컬여행을 떠날 계획을 갖고 있다. 여행에 대한 갈증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요즘엔 환경도 개선되고 익숙해지기도 해서 여행을 많이 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여행지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또 다른 로컬 여행을 갈망하게 되죠.”

  가까운 여행지에서도 이전에 보지 못한 매력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는 예전에는 허리를 굽혀야 볼 수 있는 것들은 자연스레 동선이 낮아지면서 앉아서도 편하게 볼 수 있게 됐다. 그 길에서 자세히 보고 오래보아 아름다운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앉아서 하다 보니 여행의 피로도가 덜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제주도 올레길을 다 둘러보면서 못 가는 구간은 반드시 나왔어요. 둘러서 가기도 하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기도 했죠. 그 익숙한 풍경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됐어요.”

  전윤선 씨는 틈틈이 다니는 여행을 기록하며 더 많은 장애인이 여행에 도전하기를 응원하고 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이들에게 적당한 동선을 소개하는 글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고, 용기내지 못하는 이에게 갈 수 있다는 힘을 북돋는다. 실제로 물리적 한계로 망설였던 이들도 그의 진심어린 응원에 여행을 떠나는 경우도 많다. “다녀온 이들이 주변인을 데려가게 되고, 이 과정에서 인식의 개선이 이뤄지죠. 더 많은 장애인이 갈수록 돈을 쓰는 소비자로 인식되고, 환경은 나아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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