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성모 기관사가 출발 전 CCTV 화면과 후사경으로 승객 승하차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사진 | 장우선 기자 priority@
▲ 열차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 승강장에 들어서고 있다.사진 | 장우선 기자 priority@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시민들의 편리하고 안전한 이동을 책임지는 시민의 발 지하철. 지하철의 운행을 담당하는 기관사는 어떤 업무를 담당하고 있을까. 그들이 일하는 환경은 어떨까. 본지는 23일 인천교통공사의 동의하에 기관사 근무 경력 13년 차 서성모 기관사를 동행 취재했다. 취재는 서성모 기관사가 운행하는 기관실에 약 한 시간 반 동안 탑승해 인천 1호선 노선 한 바퀴 반을 함께 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약속 장소인 기지차량업무소로 가기 위해 인천교통공사 귤현차량기지에 들어서자 몇몇 기관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햇볕을 쬐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기지차량업무소에 들어서 승무팀 사무실로 올라가자 한가로웠던 건물 앞과 달리 기관사들이 각자 운행을 준비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2004년부터 인천교통공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서성모 기관사를 만나 간단한 소개를 한 후 들어선 기관실은 비좁았다. 2평 남짓한 공간은 딱딱한 기관사 의자가 놓일 공간을 제외하면 그마저도 기계가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운전 장치 외에도 객실과 다음 승강장의 상황을 보여주는 CCTV 화면과 안내 방송을 하는 마이크, 열차 속도와 객실 온도, 시간을 나타내는 계기판 등의 장비가 많았다. 서성모 기관사는 기계 몸체 위에 역별 도착 시간이 적힌 운행표를 비스듬히 올리고 열차 운행을 시작했다.

  삐삐삐- 원인재역에서 스크린도어 경고음이 울렸다. 매번 스크린도어와 출입문을 이중삼중으로 확인해도 급하게 승차하는 승객이 있어 종종 경고음이 울린다. 이번에도 한 승객이 무리하게 승차를 시도하면서 스크린도어가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특히 출근 시간에 문이 닫히고 있어도 뛰는 분들이 많아요. 환승을 하는 손님들이 이번 열차를 놓치면 다음 환승도 늦어지게 되니 무리하게 타시려는 거죠.” 정시성이 중요한 지하철은 열차 지연에 대한 규정이 엄격하다. 열차가 5분 이상 지연되면 국토교통부에 보고해야 해 1분 30초만 늦어도 종합관제소에서 왜 지체되고 있는지 묻는 전화가 온다. 이 전화는 기관사들에게 큰 압박이 되기에 달려오는 승객이 있어도 시간을 맞추기 위해선 출발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손님 입장에서는 못 타셨잖아요. 저희도 열어드리고 싶은데 계속 지연되다 보면 열차 시간을 못 맞춰요. 이 역에서 1분 늦게 출발하면 다음 역에 늦은 만큼 더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어 또다시 지연되고요.”

  이 과정에서 민원이 들어오기도 한다. 출입문이나 스크린도어가 닫혀 승차를 못 했거나 스크린도어에 몸이 껴서 옷이나 가방이 더러워졌다는 것이다. 민원을 문자로 받기 시작하면서 민원 수가 더욱 늘었다. 방식이 간편해지니 사소한 불편도 쉽게 표출하는 승객이 많아진 것이다. 요새 같은 초여름에는 냉난방에 대한 민원이 부쩍 자주 들어온다. 이는 여름이 되면 더욱 심해진다. “덥다는 민원과 춥다는 민원이 동시에 들어올 때도 많아요. 난처하죠. 보통 온도를 자동으로 설정해두지만 민원이 들어오면 안내방송을 하거나 냉난방을 수동으로 돌려요. 기관실에서 지속적으로 열차 내 온도를 확인하기도 하고 CCTV를 보면서 부채질하는 손님이 있나 살피기도 하고요.”

  기관실 구석에는 이동식 간이 변기가 있었다. 기관사들의 가장 큰 고충인 생리현상 때문이다. 하지만 기관사들은 이를 잘 이용하지는 않는다. “간이 변기를 사용하는 게 수치스럽기도 하고 냄새가 나 다음 교대자 보기 민망하잖아요. 그래서 열차에 타기 전에 음식 조절을 많이 하죠.” 열차를 회선 시키는 노선 양 끝 역에서 생기는 짧은 대기시간에 화장실을 이용할 수는 있지만, 열차가 운행되는 시간 동안 모든 생리현상은 웬만하면 참아야 한다. “지금은 그나마 적응했지만 처음 2년 동안은 생리현상 때문에 고생한 것 같아요.”

  예술회관역에서 교대를 마치고 서성모 기관사와 휴게실에서 쉬고 있던 이민지 기관사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이민지 기관사는 이 일을 시작한 지 1년 반 즈음 지난 기관사였다. 요새 두 기관사의 가장 큰 관심사는 미세먼지다. 인천 1호선의 유일한 지상 구간은 계양역에서 귤현역 한 구간. 이 구간을 지날 때면 창문을 열어 환기도 하고 시원한 바람을 쐬기도 한다. “지하는 미세먼지가 심해요.” 지하라는 환경적 특성상 공기가 안 좋은데 미세먼지까지 더해져 공기 질이 더 나빠졌다. “지상은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미세먼지가 쓸려나가지만 지하는 차곡차곡 쌓여요. 물청소를 하고 환풍기를 돌려도 공기가 안 좋죠.” 이민지 기관사도 미세먼지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마스크를 안 쓰고 근무한 후에 코를 풀면 먼지가 나와요. 손을 씻으면 구정물이 나오고요.”

  햇빛이 없는 지하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다 보면 쉽게 우울해지기도 한다. 이민지 기관사는 처음 입사했을 때 몇 개월간 우울감에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근무하는 곳이 지하다 보니 어둡고 햇빛을 보는 시간도 없어 우울한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업무도 혼자 하는 일이다 보니 더 심했던 것 같아요.” 두 기관사는 사고나 고장에 대한 부담이 가장 크다고 입을 모았다. 서성모 기관사는 특히 스크린도어가 생기기 전에는 사상 사고에 대한 부담이 심했다고 털어놨다. “보통 교통사고가 나면 그 자리에 다시 가고 싶지 않잖아요. 그런데 기관사는 사고 후에도 같은 선로를 또다시 반복해서 가야 하니까 힘들죠. 지금은 스크린도어가 생겨 사상사고가 거의 없어졌어요.” 사상 사고에 대한 부담은 줄었지만 출입문 사고나 열차 고장에 대한 부담은 여전하다. 이민지 기관사는 걱정에 악몽도 자주 꾼다. “아무래도 열차 지연이나 고장에 대한 부담이 심해요. 그래서인지 승강장을 그냥 지나치거나 열차가 고장 나는 꿈을 꾸기도 해요.”

  바깥공기도 잠시 식사를 마치고 예술회관역으로 돌아온 서성모 기관사는 기관사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한 뒤 오후 승무를 나섰다. 그는 반복되는 일에 지치기도, 민원에 힘들기도 하지만 승객을 보며 힘을 얻는다고 했다. “특히 첫차를 운전할 때면 새벽인데도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아침부터 열심히 사는 사람들 보면서 나태해진 제 모습을 반성하기도 하고 마음도 다잡게 돼요. 또 ‘내가 있으니까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러 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뿌듯하죠.”

  이른 아침 학교에 가기 위해 끼여 탄 지하철, 친구와의 약속 시간에 늦어 급히 올라탄 지하철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심히 올라탄 지하철에도 열차 맨 앞 기관실에는 어두운 터널과 밝은 승강장을 오가며 묵묵히 운행을 책임지는 기관사가 있었다. 반복되는 일터의 고충 속에서 승객을 보며 보람을 찾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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