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 | 김시언 기자 sean@

  작년 4월 서울도시철도공사(도철) 김 모 기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 씨는 평소 업무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를 자주 호소했다. 서울 5~8호선을 담당하는 도철은 지하 구간 비율이 높고 노무관리의 강도가 높은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인천 지하철과 부산 지하철에서도 2013년과 2016년 각각 한 명씩 자살자가 발생하면서 기관사의 정신건강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하철 기관사는 1인 승무에서 발생하는 강도 높은 업무와 스트레스를 홀로 감당하며 오늘도 외로운 운행에 나서고 있다.

  기관사에게 집중되는 과도한 업무와 책임
  
현재 서울 1~4호선을 제외한 모든 호선(서울 5~9호선, 분당선, 인천 부산 등)은 1인 승무제로 운영된다. 1인 승무제에서는 오직 한 명의 기관사가 열차 운행과 승객 승하차, 열차 출입문과 스크린도어 확인, 각종 민원과 응급 고장 처치 등의 업무를 모두 담당한다. 2인 승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서울 1~4호선은 열차 맨 뒤 칸에 차장이 있다. 차장이 출입문 확인, 민원 처리, 안내방송을 담당해 기관사는 운행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도철을 비롯한 각 지역 교통공사 측은 지하철에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된 것을 이유로 1인 승무제를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자동화 시스템은 운행에만 도움을 줄 뿐 차장이 담당하고 있는 승객 안전관리와 민원 처리 업무를 수행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도 대처를 하지 못한다. 그마저도 많이 노후돼 수동으로 작동시켜야 하는 경우가 많다. 6호선을 운행하는 13년차 기관사인 5678서울도시철도 이광택 승무사무국장은 “지하철을 이용하고 운영하는 건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다”며 “이를 2명이 대처하는 것과 1명이 대처하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출입문과 스크린도어 사이의 공간은 CCTV로도 확인되지 않는 안전 사각지대다. 작년 10월에는 김포공항역에서 출입문과 스크린도어 사이에 껴 승객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광택 승무사무국장은 “김포공항역 사고는 기관사가 시스템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음에도 일어난 사고”라며 “그럼에도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관사가 받는 심리적 압박은 굉장히 심하다”고 말했다.

  운행 중 사고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전적으로 기관사에게 돌리는 억압적 노무관리도 기관사의 업무 부담을 가중시킨다. 사고가 나면 사고의 원인이나 예방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기관사 개인에게 책임을 물어 사건을 해결하려 해서다. 이는 또한 ‘사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직원 교육의 소재로 활용돼 해당 기관사에게 2차 정신적 피해가 가해진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한인임 연구원은 “대부분의 사고를 기관사 책임으로 돌리거나 실수가 발생한 사례를 교육의 소재라고 여기저기 알리면서 해당 기관사를 ‘바보’로 만든다”고 말했다. 이에 공공운수노조 조성애 정책기획국장은 “사고의 원인이 기관사에게 있지 않은 경우에도 사고 당시 열차를 운행한 기관사가 누구인지 회사 내에 다 알려져 해당 기관사에게 굉장히 모욕적”이라고 덧붙였다.

  스트레스로 악화되는 건강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의 ‘도철 기관사 정신보건 임시건강진단’ 연구에 의하면 도철 기관사의 유병률은 일반인의 15배다. 특히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공황장애 등 정신 질환의 발병률이 두드러졌다. 기관사의 높은 유병률의 원인으로는 시간에 대한 스트레스와 지하에서 일하는 직업·환경적 특성이 꼽혔다. 지하철 기관사는 교번제로 출근 시간이 매번 달라지고 운행 시 역마다 열차 시간을 맞춰야 해 시간에 대한 강박이 심하다. 교번제는 분 단위로 운행되는 지하철 시간에 맞춰 기관사의 출퇴근 시간도 분 단위로 매번 바뀌는 지하철 기관사 특유의 교대방식이다. 도철 이광택 승무사무국장은 “똑같은 주간 근무라도 누구는 출근 시간이 6시 36분이고 다음 출근자는 6시 43분, 그 다음 출근자는 6시 57분”이라며 “출근 시간이 분 단위로 달라져 핸드폰에 저장된 기상 알람만 17개일 정도로 심리적 압박이 심하다”고 말했다.

  지하라는 근무 환경도 기관사 건강 악화의 주된 원인 중 하나다. 밀폐된 공간에 공기 순환까지 안 돼 답답함을 느끼거나 기관지염을 앓는 기관사가 많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외부와의 환기를 막은 밀폐형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노선이면 공기의 질이 더욱 안 좋아진다.

  현실적 부분부터 개선해 나가야
  지난 3월 8일 서울시는 운영방침을 정시성에서 안전으로 전환하겠다는 ‘서울지하철 안전보강대책’을 발표했다. 이는 안전 인력을 확충하고 7호선 일부 구간에 2인 승무제를 시범 운행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변화 자체는 긍정적인 시도이지만, 특정 구간과 특정 시간에 한해 시범적으로 시행되는 운행이며 이마저도 조정 중에 있다. 또한 실제 노선에 확대·적용될 가능성이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2인 승무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되기 어렵다면 혼잡도가 높은 시간대와 구간부터 2인 승무제 도입을 점층적으로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관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해결책으로 승강장에 안전을 전담하는 역무원을 배치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현재 역마다 역무원이 배정돼있지만 공익요원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수리부터 표 안내까지 담당하고 있는 업무가 많아 안전 문제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태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한인임 연구원은 “안전을 위해 승객의 무리한 승하차 행위를 제지할 수 있도록 승강장에 안전을 전담하는 권위 있는 정규직 역무원을 배치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물리적 환경을 바꾸는 것은 어려우니 현실적 방안을 도입해 근무환경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회사 내 휴게 및 수면 환경을 개선하거나 충분한 휴일을 보장하고 경직된 조직문화 바꾸는 것이 그 예다. 기관사의 정신적 건강을 살피는 시설 및 인력 확충도 필요하다. 현재 도철에는 직원의 정신건강 문제를 전담하는 ‘힐링센터’가 운영 중이지만 이용률에 비해 상담원 수가 부족하다. 도철 힐링센터 김세은 센터장은 “기관사가 신체적, 정신적 건강 이상 징후를 발견했을 때, 적절한 시기 안에 전문가 도움을 받도록 교육과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며 “또한 건강 문제로 불이익을 받을 것에 대한 걱정 없이 충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힐링센터가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한 적절한 인력과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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