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미식회’, ‘집밥 백선생’, ‘냉장고를 부탁해’ 등 최근 몇 년 사이 음식 프로그램은 셀 수 없이 등장했다. 쿡방과 먹방의 유행은 단지 미디어의 한 장르를 넘어서 많은 사람을 요리학원으로 이끌 정도로 우리 삶에 변화를 주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주영하 교수는 “대중적으로 음식에 대한 관심이 폭발한 지금, 인문학 관점에서 우리의 음식과 음식문화를 학술적으로 연구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 ‘음식학’이란 무엇입니까
  “음식학이란 인문·사회과학을 기반으로 음식의 역사적·문화적 맥락과 사회과학적 해석을 시도하는 학문을 말한다. 음식학은 서유럽과 미국에서 1970년대 중·후반부터 문화인류학자와 역사학자를 주축으로 등장했다. 당시 서유럽과 미국이 경제적으로 안정기에 들어서자 식품의 과잉공급이 일어났고 음식과 그 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졌다.

  한국에서도 식품학이나 농학에서 음식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다. 대부분 음식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이뤄졌고, 극소수의 학자만이 고문서를 기반으로 한국의 음식문화를 연구했다. 이젠 기존의 과학적 연구를 포함해 인문학과 사회과학도 참여한 ‘비판적 음식학’이 필요하다. 미국 뉴욕대 대학원과 런던대의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등의 음식학(Food Studies) 코스처럼 제도권 내에서 학문적 영역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한국인의 쌀밥 문화를 분석하는 사례를 보자. 한국인의 입맛에 대한 문화적 배경은 곡물로 지은 쌀밥에서 시작된다. 한·중·일, 동남아시아, 인도 등 쌀밥 문화권에선 밥 자체에 간이 돼 있지 않아 반찬을 함께 곁들인다. 반찬을 곁들이는 방식에서 나라마다 특징이 있다. 인도는 먼저 커리를 반찬으로 밥에 비빈 후 먹고, 일본이나 베트남은 밥을 먼저 먹고 삼키기 전에 반찬을 먹는다. 한국의 경우 밥을 입에 넣자마자 바로 반찬과 국을 먹으면서 입안에서 비빔밥을 만든다. 그래서 한국인이 미식가가 되긴 힘들다. 한 음식에 대해 음미하면서 먹지 않기 때문이다.”

- 왜 학계 차원에서 연구가 이뤄져야 합니까
  “현재 음식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저널리즘 차원에서 아마추어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 1990년대 초 한국이 경제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들며 식품의 과잉공급이 발생했고,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선 다양한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가 등장했다. 대중매체는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편성했고, 정부에선 지역 특산품 홍보를 위해 요리대회를 개최하는 등 그런 욕구에 발맞추려 했다. 2000년대 들어 실업률과 비정규직 증가, 가족해체 등이 심화됐고 세계화는 가속화 됐다. 사회적 변화는 우리 음식과 음식문화에도 영향을 줬다. 하지만 그 변화 원인이나 과정에 대해 언론에서 간략하게 다룰 뿐 학계 차원의 심도 있는 논의는 없다. 

  예를 들어 음식은 가족공동체 속에서 길들여진 습관이기에 보수적이다. 세계화로 국가 간 인구이동이 자유롭게 된 지금도 타국에서 음식을 매개로 민족이 결집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 결국 자기가 즐겨 먹고 좋아하는 음식을 스스로 결정한 것인지, 아니면 공동체 속에서 알게 모르게 강요받은 것인지 학문적으로, 비판적인 시각에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

- 한국에선 유난히 ‘전통음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통’이란 것은 20세기 한국이 강대국이 되지 못한 채 역사적인 아픔을 겪으며, 19세기 화려한 역사를 지닌 조선의 음식이 사라진 것에 대한 감성적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한국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자 ‘민족주의’를 ‘전통’이란 단어에 투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전통의 기원이 조선시대 후기에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록의 나라’라고 불린 조선시대에선 음식에 관한 기록이 극히 드물다. 공자가 ‘먹는 행위는 동물과 같은 행위’라며, ‘군자가 되기 위해 먹는 것에 관해 논하거나 글로 기록해선 안 된다’고 부정적으로 바라본 시각을 그대로 이어 받은 것이다. 

  전통이란 관점에서 고문헌에 소개된 음식은 솔직히 맛이 없다. 실제 음식 전문가들이 모여 조선 중기 김유가 지은 요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에 따라 조선시대 음식을 구현한 적이 있었다. 해당 서적이 집필된 때의 식자재가 현재 없거나 품종 개량된 상태여서 그대로 요리하기 어려웠고, 힘들게 만들었지만 현재 우리 입맛과 맞지 않았다.

  한국 음식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형태나 맛, 유래가 선명하지 않고, 현실과 괴리감이 있다. 전통과 역사를 낮춰보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음식에 전통주의와 민족주의를 강요하는 데 있어선 경계를 해야 한다.”

- 음식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식탁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음식 민족주의가 김치다. 1980년대 후반 정부가 주도적 ‘전통’을 강조하면서 모든 식당과 급식에 반드시 배추김치를 제공하도록 장려했다. 그런데 김치를 무조건 삼시세끼 먹어야만 하는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면 면요리에서 면을 반죽하면서 소금 간을 한다. 중국이나 일본 면요리의 식탁 구성을 보면 하나의 면요리에 밑반찬이 극히 적거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김치스프를 베이스로 한 라면을 먹을 때조차 김치를 함께 곁들인다. 음식에 상관없이 김치를 찾는 것이다.

  그런 식단에서 한국인은 나트륨을 과다 섭취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식문화에 맞춰 나트륨 섭취를 줄이려면 장류와 김치를 저염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한국의 장 담기와 김장을 포기해야만 한다. 저장식품으로 음식이 상하지 않게 하려면 소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치 없이도 충분히 식사가 가능한 때다. 전통 한식에 대한 막연한 강조가 미래 우리의 건강을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휘둘릴 수 있다.”

- 한국의 식당 프랜차이즈를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의 프랜차이즈는 정치·사회·경제·문화의 복합적인 결과물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맥도날드가 처음으로 한국에 입점하면서 프랜차이즈란 미국 스타일의 외식업이 시작됐다. 프랜차이즈의 등장은 메뉴의 특성화와 다양성, 위생적인 시설 등 국내 외식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하지만 프랜차이즈가 골목상권에 진출해 외식업계를 독점하고, 본사와 가맹점 간 기형적 갑을관계 구조를 만드는 동안 정부와 언론, 국민은 이를 묵과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대량의 실직자가 등장하고, 1990년대 말부터 세계화 바람이 시작된 사회적 배경 탓이다. 언론 역시 새로운 미디어 매체의 등장으로 대중의 흐름에 더욱 민감해져 함부로 인기 있는 프랜차이즈를 건드리지 못했다. 한국인의 ‘요리’에 대한 인식도 한몫했다. 한국인들은 흔히 요리를 식모와 같이 여성이 하는 일로 치부하며, ‘나도 할 수 있어’라며 만만하게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창업에서 요식업에 쉽게 도전하도록 부추겼다.

  한국의 프랜차이즈는 결국 ‘노포(老鋪)’라 불리는 오래된 식당들조차 프랜차이즈화하며 전국 어디든 천편일률적인 음식을 제공한다. 오래된 식당이 프랜차이즈를 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맥도날드조차 국가별로 맛을 다르게 하는데, 한국의 상황은 다소 기형적이다.”

- 혼밥·혼술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혼밥·혼술문화를 권장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한국사회는 혼밥·혼술에 과도하게 비판적이다. 한국사회에선 혼밥·혼술을 이슈화하며 우리사회의 해체 우려를 조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산업화와 개인주의가 충분히 진행된 현실에서 매 끼니를 여러 사람과 함께 하긴 힘들다. 또 현재 20·30세대는 개인주의 문화 속에서 성장하며, 학창시절 단체급식으로 집단성을 강요받았다. 직장에서 회식문화 강요와 바쁜 삶에서 혼자 식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혼밥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로 개인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이젠 한국사회가 혼밥·혼술을 너그럽게 용인해야 한다. 특히 혼밥문화의 경우 ‘어떻게 하면 혼밥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섭취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며 1인용 식단과 식탁 같은 시스템을 마련해줘야 한다.”

- 음식학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유학자금을 모으기 위해 식품회사에서 일하면서 부터다.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중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집안의 반대가 심해 유학자금을 스스로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식품회사에서 운영한 김치박물관 큐레이터를 하면서 김치와 관련된 사람들과 현장을 만났는데, 이를 계기로 음식을 학술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문화인류학으로 대학원에 진학해 김치를 소재로 논문을 작성했다. 1980년대만 해도 ‘음식’을 연구주제로 선택한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낮엔 직장 일을, 밤엔 도서관에서 해외의 음식 연구 사례를 공부했다. 이후 31살에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중국에서 ‘소수민족’을 공부하며 잠시 음식학을 미뤄뒀지만, 한국에 들어와 15년 전부터 음식학 연구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 음식문화에 관심 두는 학생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음식을 요리하는 사람’과 ‘음식으로 소통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바로 요리를 한다는 것과 여러 구성원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이다. 최근 도시화와 산업화로 직접 요리를 해 먹는 사람이 드물다. 가공식품에 의존하지 않고 한 번쯤 천연 식자재로 나만의 음식을 만들어 먹어보길 바란다.

  음식은 결국 사람들과 소통하는 매개물이다. 최근 들어 음식의 맛과 가게 분위기를 평가하고 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 문화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너무 치우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음식을 대하는 자신 또는 함께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맛을 즐기길 바란다.”

  주영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민속학) 교수는 국내 음식학 전문 연구자로 인문학을 기반으로, 주로 동아시아 지역의 음식문화와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해 한양대 대학원 문화인류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중국 중앙민족대 대학원 민족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풀무원 김치박물관 학예연구원 경험과 ‘김치의 문화인류학적 연구’라는 석사논문을 통해 김치전문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 한국학대학원 교수로 부임하면서 음식학을 학술적으로 체계화하며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 <음식전쟁 문화전쟁>, <차폰 잔폰 짬뽕>, <음식인문학>, <식탁 위의 한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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