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이민준 기자 lionking@

  ‘구의역을 기억하고 안전사회 건설하자!’, ‘노동자가 안전해야 시민이 안전하다!’ 빼곡히 모여 앉은 시민들이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구호를 외쳤다. 27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앞에서 구의역 사고 1주기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2016년 5월 28일 19살 김 모군은 하청업체 소속 지하철 정비사로 끼니를 걸러 가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다음날 자신이 일하다 죽을 것은 상상도 못한 채. 촉박한 수리일정을 쫓던 김 씨의 가방 안에는 손때 묻은 공구와 젓가락 한 쌍, 그리고 미처 물을 붓지 못한 컵라면이 남아있었다.

  젊은 청년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큰 안타까움과 책임 소재에 대한 논란으로 커졌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크린도어 수리기사로 근무 중인 임재신(남·34) 씨는 추모문화제에서 “1년이 지났음에도 개선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에서 PSD(Platform Screen Door) 하청업체를 계열화했지만 고용형태는 무기계약직으로, 근무환경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자리에 모인 시민에게 당부했다. “노동악재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다음 세대에까지 비정규직 등 고용 불안정 문제를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 

  한국 사회는 위험한 업무를 하청업체 노동자들에 맡겼다. 원청은 하청업체에 위험 업무를 외주화했지만, 원청의 이름을 걸고 일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안전을 책임지진 않았다. 곳곳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여전히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채 근무하고 있다. 매일 아침, 안전모를 쓰고 작업용 장갑을 끼는 그들은 하청업체에 소속돼 있다는 이유로 매일 더 큰 생명의 위협을 마주한다.

▲ 2016년 5월 28일 직후, 사고가 난 구의역 승강장에 놓인 포스트잇과 조화 사진 | 고대신문 DB

  박홍규(남·31) 씨는 충청남도 당진에 위치한 현대제철 협력업체에서 기계 정비·유지·보수를 맡고 있다. 라두식(남·46) 씨와 곽형수(남·43) 씨는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 중수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 근무 중 위험을 느낀 적이 있나
  박홍규 | “제철소의 특성상 큰 공장 내의 좁은 통로를 걸어 다녀야 한다. 지상으로부터 5~6미터 위에 있는 통로를 지나는 일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난간이 설치돼 있는 경우는 드물다. 오함마(해머), 공구통 등 무거운 공구를 들고 지나갈 때마다 ‘이러다 추락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한번은 야외에서 용접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출근길에 쏟아지는 비를 보며 ‘작업이 어렵겠구나’ 싶었다. 빗속에서 용접할 경우 감전 위험이 있어 작업을 중단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원청 직원이 와서는 딱 10분만 작업을 하자고 하더라. ‘안 다치면 그만이지 않냐’는 현장 정서가 한 몫 하는데, 다른 노동자들이 다 하는 와중에 나만 뺄 수가 없는 그런 게 있다.”

  라두식 | “냉장고 냉매 수리 도중 화상을 입었다. 용접수리를 많이 하는데, 가스가 새면서 손을 다쳤다. 냉매 가스는 가연성으로, 환기가 잘 되지 않으면 불이 쉽게 붙는다. 일반적으로 가정집은 냉장고를 주방에 설치하지 않나. 환기가 충분히 되지 않았던 탓이었던 같다. 무거운 무게 탓에 허리를 다칠 뻔한 적도 많다. 에어컨, 냉장고에 들어가는 컴프레서의 경우 100kg에 육박하기도 한다. 같이 드는 동료가 있다고 하더라도 매일 반복될 때마다 심한 통증을 느낀다. 매일 부위는 다르지만 몸에는 항상 파스가 붙어 있달까. 하지만 업무 때문에 만성적인 질병이 생겨도 산재 신청이 어렵다. 노동조합 내에서는 모두 산재를 신청하도록 하고 있지만, 강하게 어필하지 않는 이상 인정받기는 힘들다.”

  곽형수 | “노동조합에 가입하기 전, 3층 높이에서 추락해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졌다.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다리를 받쳐놓고 작업을 하다 낙상을 당한 것이다. 원래 건물 외부에서 작업할 때는 ‘스카이차’를 이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전선 공사 등을 할 때 작업자가 바스켓 안에 탑승해 작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차량인데, 현실적으로 노동자들이 이를 부를 수가 없다. 노동자들의 임금체계는 월급제가 아닌 건당 수수료로 지급된다. 분당 232원으로 수리 시간에 따라 지급되는데, 스카이 차량을 1회 부를 경우 비용이 30만원이다. 그러나 원청과 하청업체 모두 스카이차 비용을 지급하진 않는다. 결국 줄 한 가닥에 몸을 의지한 채 작업할 수밖에 없다.”

- 원청의 안전교육과 관리는 어떠한가
  박홍규 | “원청 소속 관리자들이 현장에서 근무하고는 있다. 원청에서 직접 고용하는 사람들인데, 산업안전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을 뽑고 있다. 결국 그들도 원청 눈치를 보는 것이 우선이다 보니 안전관리가 부실하다. 제철소에서 노동자들에게 작업용 장갑과 마스크가 지급되는데, 보통 하루에 장갑을 두 켤레, 마스크를 하나씩 쓴다고 해보자. 상식적으로 근무 일수에 맞게 지급돼야 하는데, 지급되는 분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근무일수의 60% 정도만 지급되는 실정이다. 관리자들에게 비품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해도, ‘일회용 마스크 빨아서 써라’, ‘더 비싼 제품은 사줄 수 없다’는 등 책임을 회피한다. 사실 마스크나 장갑은 진짜 최소한의 것들이지 않나.”

  라두식 | “노동조합에서 임금단체협상 당시 작업 중 감독·관리를 요청했다. ‘에어컨 설치에 대한 감리 작업’을 요구안에 넣었었는데, 원청에서 이를 거절했다. 수많은 에어컨 설치 현장에 일일이 감리관을 동행시킬 수 없다는 이유였다. 감리관을 동행시키진 못하면서 노동자들을 위험 사각지대로 내모는 상황이다.”

  곽형수 | “전혀 없다. 작년 여름 성북센터에서 근무하던 진남진 엔지니어가 3층에서 추락해 숨졌다. 이후 원청에서 안전바 등 안전장비를 지급하고 2인 1조 근무, 스카이 차량 사용 등을 권고했으나, 업무현장에서 적용하기 힘든 내용들이다. 스카이 차량은 꿈도 못 꾸고 안전장비는 착용 ‘인증샷’을 보내는 것에 그치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다. 업무환경이 위험하다면 그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다. 노동조합 차원에서 20만 여 건의 안전사고 사례를 전달했음에도, 여전히 교육·관리의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 원청 정규직과의 갈등이 있는가
  박홍규 |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작업장 내 시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경우, 원청 소속 관리자들은 ‘우리가 시설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 일관한다. 실질적으로 시설을 정비하는 사람들은 하청노동자인데, 직접 보고 문제가 있다고 보고해봤자 개선이 안 되는 것이다. 관리자들은 매번 위험하다 싶은 상황이 닥쳐도 조금만 더 하자고 종용한다. 그러다 결국 사고가 나면 다치거나 죽는 사람은 하청 노동자들이다.”
  곽형수 | “서비스센터는 약 10%의 정규직과 90%의 비정규직으로 구성돼 있다. 정규직은 보통 내근직으로, 핸드폰 등 소형제품의 수리를 맡고 있다. 비정규직은 앞서 말했던 에어컨, 냉장고 등의 수리를 맡는다. 정규직에 비해 위험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기업에 요구하는 바는
  박홍규 | “대부분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곳에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산보위)라는 기구가 원청 내에 설치돼 있을 것이다. 노사 양측이 함께 업무 상 재해 발생에 대해 논의하고 예방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이를 모르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 원청 측에서 안전을 비용 지출의 영역이 아닌 생명의 영역으로 봐야 하며, 동시에 산보위 등 기구를 통해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라두식 |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안전한 근무환경의 구축, 다른 하나는 원청이 책임지는 보상책이다. 센터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 중에서 화상과 낙상을 안 겪어본 사람이 없다. 근무현장이 위험하다는 반증이다. 단발성에 그치지 않는, 근본적인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사고를 당했을 때, 원청이 책임지고 보상해줘야 한다. 삼성 로고가 박힌 조끼와 명함을 갖고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사고를 당하는 그 순간 남이 돼버린다. ‘삼성의 가족’이라며 환영하던 원청은 병상에 누운 노동자들에겐 ‘하청업체가 책임져야 한다’, ‘근무수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등을 돌린다. 원청이 사용자로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때다.”

  곽형수 | “사실 서비스노동자들은 현장에 나갈 때 항상 ‘죄송’하다는 마음을 갖는다.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믿고 구매한 고객들이 고장으로 속상하다는 점을 알고, 회사를 대표해 제품을 수리하며 고객들의 마음을 달래는 것이다. 고객들이 ‘수리 잘 받았다’며 후기를 올리거나, 차가운 커피를 한 잔 건네실 때마다 뿌듯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책임이 필요한 순간 우리는 삼성의 직원이 아니다. 애사심을 갖고 일하는 직원들에게 호응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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