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라서 부럽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던 차현진(경영대 경영16) 씨는 그게 좋았던 한편 언젠가 살이 쪄서 그런 칭찬을 듣지 못하게 될까봐 불안했다. 고등학교 진학 후 불안은 현실이 됐다. 그는 사회가 요구하는 예전의 몸으로 돌아가고자 밥을 덜어먹고, 간식을 자제하고, 배고파도 참았다. 
그는 언젠가 그때의 몸매로 돌아갈 것이라 믿으며 불편하고 작아진 스키니진을 계속 입었다. 그러던 그에게 한 지인은 ‘돼지같이 살이 삐져나오니 스키니진을 입지 말라’고 말했으며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큰 상처를 받은 그는 한동안 음식을 먹을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사회는 이상적인 외모를 충족하지 않는 사람들을 쉽게 비난한다. 외모를 지적받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하며 괴로워한다. 여기에 의문을 던지는 사회운동으로 ‘자기 몸 긍정주의’가 떠오르고 있다.  

▲ 일러스트|주재민 전문기자

불가능에 가까운, 사회가 바라는 ‘미’
A4 허리, 지폐 손목, 하트 가슴, 애플 힙, 물광 피부, 초콜릿 복근. 사회는 이상적인 외모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점점 더 가혹하고 교활해져 왔다. 이와 같은 기대를 완벽히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는 건 내 몸이 오답이라는 상처뿐. 완벽한 외모라는 허상은 사람들의 불행을 초래한다. 

획일화된 미의 기준은 사람을 차별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다양하지만 사회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기준을 들이민다. 그 과정에서 소외당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여성환경연대의 경진주 활동가는 “외모는 이제 취향이나 선호가 아닌 삶, 존재, 권력의 문제가 됐다”며 “획일화된 미의 기준, 그 기준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 누가 정한 것인가를 생각해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회가 제시하는 정형화된 미에 반문하며 등장한 것이 ‘자기 몸 긍정주의’다. 자기 몸 긍정주의는 획일화된 미의 기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사회운동이자 신념이다. 자아 정체성을 훼손하는 미의 기준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자기 몸 긍정주의’는 점차 확산됐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의 황소연 활동가는 “최근 자기 몸 긍정주의에 대한 문의가 급격히 늘었다”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세상을 강타한 자기 몸 긍정주의
‘자기 몸 긍정주의’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대표적으로 최근 유행하고 있는 메이크업인 MLBB, MSBB가 있다. 이는 My Lips But Better, My Skin But Better의 약자로 자신 고유의 입술 색을 보존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색되는 화장품을 칭한다. 메이크업 전문가인 김혜림 무아더뷰티 원장은 “최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 같다”며 “개인이 가진 고유한 느낌이 아름다울 수 있게 연출하는 것이 가장 큰 추세”라고 말했다. 

여성 속옷 업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속옷 브랜드 비비안은 볼륨을 만들기 위해 몸에 맞지 않는 속옷을 억지로 착용하면 자세가 움츠려 들고 자신감이 위축된다는 생각에 ‘Hello, My Fit’ 캠페인을 시작했다. 캠페인은 모든 여성이 체형에 관계없이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캠페인은 전개한 지 2달 만에 온라인 누적 조회수 660만 건을 돌파했다. 비비안 홍보마케팅실의 전슬아 사원은 “캠페인 영상에 등장하는 여러 체형의 여성들을 통해 아름다움은 일반화될 수 없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며 “모두가 이미 아름다운 실루엣을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는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일본에선 평균 몸무게 76킬로의 걸그룹 ‘포챠(ポッチャ)’가 데뷔하기도 했다. 포챠는 걸그룹이 날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내민다. 통통한 체형을 외면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악의적인 말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데뷔곡의 뮤비가 50만 조회수에 도달하는 등 응원하는 팬도 많았다. 포챠 기획사 관계자는 “통통한 사람도 즐거울 수 있다는 메시지는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며 “앞으로도 해외에도 진출하며 활발하게 활동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8월 26일 명동에서는 여성의 신체에 가해지는 엄격한 잣대와 마네킹 몸매를 칭송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하는 ‘문제는 마네킹이야’ 캠페인이 열렸다. 캠페인 측은 한국인의 평균 몸매를 닮은 ‘커스텀 마네킹’을 직접 만들어 전시했고, 의류브랜드의 사이즈 다양성 여부 조사해 그 결과를 발표했다. 캠페인을 진행한 경진주 활동가는 “의류브랜드 31곳 중 74.2%가 사이즈 다양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옷을 구입하는 문제뿐만이 아니라, 표준 신체 사이즈를 규정하는 것이 여성의 건강권과 노동권을 침해한다는 문제제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타인의 몸을 평가하려는 인식 버려야
자기 몸 긍정주의의 취지에 공감하나 이를 실천하는 것이 어색하다는 반응도 많다. 이미 내면화된 미의 기준을 애써 거부해보지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채원(자전 정외16) 씨는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좋은’ 몸매를 보면 어느새 부러워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이에 황소연 활동가는 “자신의 몸을 긍정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여전히 외부의 시선을 걱정하며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극복을 강요할 수는 없다”며 “차라리 공고한 미의 기준을 초래한 자들에게 책임을 묻고자 한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사랑하자고 외쳐 봐도 외부에서의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상 본인의 본 모습을 진심으로 긍정하기란 어렵다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자기 몸 긍정주의가 자신의 모습을 사랑해야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타인이 자신의 몸에 대해 평가하거나 폄훼할 권리는 없다고 주장하는 움직임으로까지 이어져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획일화된 미의 관념을 양산하는 주범으로는 대중매체와 고정된 성적 관념이 꼽힌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은 이상적인 외모를 갖지 않은 사람을 이상적인 외모의 사람과 비교하며 웃음거리로 만드는 방식의 개그소재를 주로 사용한다. 이윤정(여·23) 씨는 “같은 상황이라도 살집 있는 방송인의 경우 묵직한, 거대한 등의 자막을, 날씬한 방송인에게는 예쁜, 날아갈 것 같은 등의 자막을 사용한다”며 “대중매체에서 날씬한 몸매가 옳다는 듯한 뉘앙스를 계속 접하다보니 날씬한 몸매가 정답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황소연 활동가는 “외모 비하 없이도 충분히 웃길 수 있다”며 “웃음에 대한 고민 없이 외모 비하를 하는 것은 게으른 선택”이라고 말했다. 

미스코리아 선발 프로그램 또는 성형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의 경우 기준을 충족하는 외모를 가진 사람이 다른 면에서도 우월하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는 사람의 몸을 점수화하여 등수를 매기고 성형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은 사연 신청자가 세상이 바라는 것처럼 아름답게 변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주입한다. 황소연 활동가는 “한국여성민우회에선 성형 메이크 오버 프로그램 ‘렛미인’ 폐지와 ‘아름다운 당신’ 추가 시즌 제작 금지를 위해 나섰다”며 “이러한 프로그램은 사연 신청자가 겪고 있는 문제를 외모문제로 환원시킨다”고 말했다. 이에 박성희(본교·미디어학) 강사는 “영상은 보여주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시각적이고 자극적인 것에 집중한다”며 “맑은 방송문화를 위해 대중과 시민단체의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고정된 성적 관념도 성별에 특정한 이미지를 고착화하는 방식으로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초래한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확산되면서 성적 관념이 초래하는 획일화된 미는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의 성별 안에도 다양한 삶과 인생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다양한 몸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경진주 활동가는 “여학생들은 체육시간에 잘 움직이지 않으며 평소에도 스포츠를 거의 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여성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여성은 말라야 한다는 인식으로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모든 몸을 포괄할 수 있는 ‘건강미’를 향해
최근 사회에서 ‘건강미’에 대한 선호가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자기 몸 긍정주의는 스스로를 관리하지 않는 소위 ‘정신승리’일 뿐이며 사회가 제시하는 미 관념은 건강을 지향할 뿐 무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인과 장애인을 소외시키는 건강미는 공공선보다는 기득권에 봉사하는 가치이자 진화된 또 다른 미의 기준일 뿐이다.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외모 특성을 미적으로 열등하다고 인식하는 사회는 진정 자기 몸 긍정주의를 실천한다고 할 수 없다. 황소연 활동가는 “미디어가 노출하는 건강한 사람은 비슷하다”며 “하지만 사실 사람마다 건강한 상태는 각자 다르다”고 말했다.  

대중매체는 젊음을 찬양하고 대중은 노화를 기피하고 싶은 미래로 여겨왔다. 하지만 최근 노화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흰머리를 염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것이 유행이다. 자기 몸 긍정주의가 정신승리라는 비판에 미용 업계는 방치와 노화의 긍정은 다르다는 입장이다. 진혜성 뷰티 디렉터는 “흰머리를 그대로 표현하는 분들이 많이 늘고 있다”며 “어울리는 패션과 소품, 그리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연출된 흰머리는 당당하고 아름답게 표현된다”고 말했다.  

노화를 긍정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시니어 모델도 등장했다. 시니어 모델로 유명한 전만수 씨는 동대문시장, 평화시장 대형 옥외광고판에서도 볼 수 있다. 전만수 씨를 발굴한 Hello Gentle의 권정현 대표는 아름다움이 층을 나눠선 안 된다고 믿는다. 권 씨는 “닉 우스터 사진을 보고 우리나라에서도 꽃중년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며 “꽃중년은 특별히 잘 생기거나 키 큰 사람뿐 아니라 동네의 아저씨, 할아버지도 모두 포함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특별히 젊게 입히는 건 아닌데 우리나라에게는 유독 젊게 보인다는 반응이 크다”며 “아직은 우리나라에서는 멋있는 것은 젊은 것으로 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애인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재조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규정된 아름다움은 장애로 남들과 다른 신체를 가지게 된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유발한다. 전문가들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대중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앞으로 미의 기준이 ‘개성’을 중심으로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현수(유원대 중등특수교육과) 교수는 “방송 업계에는 현재 개성 있는 외모를 비하한다”며 “외모를 상대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사회인식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장애인에게 자기 몸 긍정주의가 적용되는 방식은 강요가 아닌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여야 한다. 이현수 교수는 “장애인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느낄 수 있도록 교육, 지원, 사회적 환경의 개선도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장애인과 여성은 차별을 받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라며 “이 두 카테고리에 모두 속하는 장애 여성은 현재 더 심한 차별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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