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김혜윤 기자 cutie@

‘문화다방 이상한 앨리스’ 윤사비나 대표 인터뷰

윤사비나(대학원·미디어문예창작과) 씨는 20대 초반부터 자가면역결핍증 중 전신 통증을 동반한 전신 탈모증을 겪고 있다. 탈모로 인해 달라진 외모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남들과 다른 외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선 긴 시간이 필요했고, 그 과정 또한 순탄치 않았다. 다사다난했던 세월을 견뎌낸 30대 후반의 윤사비나 씨. 그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 

윤사비나 씨가 전신 탈모증을 겪기 시작한 건 20대 초반, 가발 없이 일상을 살아가기 시작한 건 30살 즈음부터다. 가발을 벗기까지 10여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10여년의 시간 동안 타인의 부정적인 시선은 그를 괴롭혔다. 세상에 나가고자 하는 의지는 탈모라는 이유만으로 감내해야 했던 싸늘한 눈초리를 감내하면서 좌절됐다. 

강사로도 활동했던 그에게 사람들은 가발 쓰고 올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윤 씨 또한 같은 조건이라면 굳이 대머리를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신감이 떨어졌다. 대인관계나 이성교제 역시 자신감이 떨어져 스스로를 홀로 가두었다. 대머리는 사랑스럽지 않다는 인식에서다. “요즘 시대에 누구나 취업과 결혼이 어렵지만, 탈모를 앓고 있는 저에게는 하나의 굴레가 더 씌인 것 같았어요.” 

간혹 탈모로 받는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탈모는 외적인 변화로 겪는 마음의 상처뿐만 아니라 털이 없기 때문에 각종 염증 관련 질병에도 노출된다. 윤 씨의 경우 전신 통증도 겪어서 더욱 힘들다. 의사들은 그가 겪는 증상을 ‘자가면역결핍증 중 전신 통증을 동반한 전신 탈모증’이라고 진단하지만 사실 병명도, 원인도, 치료법도 확실하지 않다.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기도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든다. “탈모 환자에게는 아픔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격려뿐 아니라 환자임을 인식해주는 이해도 필요해요.”

무용가를 꿈꿨던 윤사비나 씨는 학창시절부터 외모에 대한 고민이 많아 극심한 다이어트를 반복해왔다. 실제로 무용업계는 그에게 살을 뺄 것을 계속해서 요구했다. “저는 뼈가 굵어서 아무리 말라도 코스모스같이 가녀린 몸이 되지 않는데 주변에선 마른 사람만 무용을 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무용 업계에서는 제 몸무게가 몇이든 10kg 빼라는 말은 똑같이 해요. 또 마른 여자들이 받는 사회적 대우가 좋다고 생각해서 계속 다이어트를 했었죠.” 

이처럼 외모에 유독 예민했었던 윤사비나 씨에게 전신 탈모증은 더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윤 씨는 투병 중에도 날씬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 비정상적인 식습관을 계속했다. 털이 빠지면서부터는 가발을 쓰고 화장을 더 진하게 했다. 속눈썹을 붙이지 않으면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몸이 더 아파지자 더 이상 그걸 할 수도 없을 만큼 지쳐버렸다. 그제야 윤사비나 씨는 사회가 제시하는 아름다움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내가 뭐 하는 짓인가 싶고 일단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선순위를 다시 결정하게 된 거죠.” 

이후 윤 씨는 형식적인 미를 추구하는 세간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을 인정하고 사랑하고자 다짐했다. 운동을 대하는 태도부터 변했다. 이전까지 윤 씨는 다이어트를 위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운동을 했다면, 지금은 가볍게 뛰며 땀을 내보자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잡아준 따뜻한 손 또한 큰 힘이 됐다. 탈모를 큰 문제로 여기며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말보단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사실 치료를 위한 노력은 제가 제일 많이 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제가 24시간 탈모 치료법만 고민할 수는 없잖아요. 너는 문제가 있으니 해결해야 한다는 반응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저를 사랑해줬던 게 더 도움이 됐죠.”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꾸며내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 많다는 깨달음, 그리고 따뜻하게 손잡아주는 주변 사람들의 응원 덕분에 윤사비나 씨는 천천히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의 윤사비나 씨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움과 건강함에 있다. 윤사비나 씨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활동이 즐거움과 자발적 관심을 전제로 여력이 되는 한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아름답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죠. 결코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는 거예요. 꾸미는 일은 굉장히 즐겁지만 그것이 나의 삶에 지나친 피로를 유발한다면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윤사비나 씨는 외모의 ‘다름’을 차별 없는 시선으로 바라봐주길 바라는 마음을 예술로 풀어내고 있다. 그가 엄마가 되고부터 생긴 고민 역시 예술로 재탄생했다. 아들과 찾아간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신기해하고 다른 엄마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보며 아들이 언젠가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이는 곧 탈모 환자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현재 연극연출가이자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윤 씨는 세상에 두 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내가 가발과 옷을 함께 벗는다면 사람들에게 머리와 몸 중 무엇이 먼저 보일까’와 ‘외모라는 잣대를 벗어난 그는 누구인가’였다. 이러한 질문은 누드 사진, 퍼포먼스, 설치예술 등의 기법으로 표현됐다. 세상을 향한 그의 질문은 올해 12월에 <인천 여자-just as you are> 전시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나를 지칭하는 수식어엔 대머리, 희귀질환자, 비상업적 아티스트, 비정규직, 워킹 맘 등 여러 가지가 있어요. 이를 사진, 퍼포먼스, 설치로 나타내봤을 때 무엇이 가장 먼저 보일지 궁금했어요.” 

윤사비나 씨는 앞으로 본업인 예술 활동 외에도 비슷한 질병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그 일환으로 원형 탈모 환우회의 홍보이사를 맡고 있다. 환우회의 아이들은 다름에 대해 관대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놀림당하는 게 심해 학교에 다니기 힘들다. 또 탈모증 치료는 수많은데,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과정과 높은 비용 또한 문제다. 전두 탈모증용 가발은 미용 가발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가격이 높다. 

윤 씨는 사람들이 탈모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확산해 적절한 시기에 검증된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치료를 받아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사회적인 인식을 바꿔서 우리가 가발을 쓰지 않아도 되도록 해야죠. 우리나라는 획일화된 미의 기준에 굉장히 강박을 갖고 있는 나라예요.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워요. 저도 아름답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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