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김민준 기자 ithink@

  “입시 1차에 붙어도 고려대는 들어오지 말라.” 이동 환경이 열악한 본교를 두고 장애학생 사이에서 오가는 얘기다. 건물에 접근할 수 없어 수업을 포기하고 자치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일상. 본교 지체장애학생들의 캠퍼스 라이프였다.
  지난 3년간 본교의 장애학생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서울캠퍼스 장애학생 총 정원은 2015년 106명에서 2017년 122명으로 늘었다. 세종캠퍼스 장애학생 총 정원도 2015년 27명에서 2017년 40명으로 늘었다. 학생 수가 증가하는 만큼 장애학생 이동권 침해 문제가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 장애학생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인프라 구축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늘어나는 장애학생, 시설 보수 필요해
 
본교의 양 캠퍼스는 정원 외 전형인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으로 장애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선발하는 신입생의 수가 꾸준히 늘고 있으며 장애학생 총 정원도 증가하고 있다. 서울캠은 2015년에 20명, 2016년에 23명, 2017년에는 34명의 장애학생을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으로 선발했다. 서울캠에서 장애학생이 늘어난 건 ‘사회 소수자 배려’라는 학교본부의 입학정책 기조와 연관돼 있다. 그 일환으로 작년부터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에서 수능 최저등급을 폐지했다. 이정훈 인재발굴센터 차장은 “최저학력 기준이 있던 과거에는 면접과 서류를 통과해도 수능 최저등급을 맞추지 못해 탈락한 학생이 많았다”며 “최저학력 기준을 없애서 학습 여건이 열악한 장애학생에게 입학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려 한다”고 말했다.

  장애학생 선발 인원이 늘기는 세종캠도 마찬가지다. 세종캠은 2015년에 14명의 장애학생을 선발했다. 2016년에는 9명을 뽑았으나 2017년에는 16명을 선발했다. 중증 장애학생 인원도 지난 3년간 26.6% 늘었다.

  캠퍼스 내 장애학생 비중이 늘면서 이동권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이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이동에 불편을 겪지 않을 권리다. 그간 비장애인 공급자 입장에서 시설이 제공되다 보니 실제 장애인의 어려움이 간과되는 경우가 많았다. 전문가들은 이동권이 장애인 인권 전반과 연관된 핵심적인 권리라고 본다. 한국장애학회 조한진 회장은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장애인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며 “특히 캠퍼스 내 이동권 침해는 학습권 침해로 이어져 또 다른 차별을 양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장애인 이동권 문제
  본교 내 장애학생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시설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장애학생이 증가하는 만큼 학교가 장애인 복지 예산을 늘리고 장애인 시설 불편을 해소해야 한다고 전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침해예방센터 조주희 팀장은 “장애학생의 요구가 높아질 거라 예상되는 만큼 장애학생 편의시설 개선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본교 양 캠퍼스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 수준은 열악한 편이다. 서울캠의 다람쥐길 등 이동에 필수적인 길목이 좁아 사람이 과하게 붐비는 경우가 잦다. 시각장애가 있는 정명호(사범대 국어교육14) 씨는 “다람쥐길에선 이동 중 부딪혀 종종 다치기도 한다”며 “시야각이 좁거나 전맹이 있는 장애학생들은 주로 한적한 시간을 이용해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물 내부에서의 층간 이동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서울캠 법학관 구관과 사범대 신관에서는 강의가 많이 열리지만 엘리베이터 등 장애학생 이동시설이 없다. 법학관 구관의 경우 출입구에 경사로가 없어 휠체어를 사용하는 학생의 출입 자체가 제한된다. 4.18 기념관도 이동 시설이 열악하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장애학생은 지하 강당에서 열리는 전학대회 등 주요 학생자치활동에 참여하기 어렵다.

  세종캠의 유일한 도서관인 학술정보원은 장애학생이 이용하기 힘들다. 2층 출입구에 장애학생 경사로가 설치돼있지 않아 뒤편의 1층 출입구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운행되지 않아 1층에서 상층으로 이동할 수 없다. 휠체어 리프트 등 대안 시설도 없어 도서관 이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노력하지만 여전히 아쉬움 남아
  학교에서도 장애학생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정책을 실시하고 시설을 개선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본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한다.

  본교 양 캠퍼스는 장애학생지원센터를 두고 장애학생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두 캠퍼스의 장애학생지원센터는 전동휠체어를 각각 2대와 1대씩 구비해 매 학기 전동휠체어가 필요한 지체장애학생에게 제공한다. 정부 지원을 받아 이동도우미 제도를 운영하기도 한다. 각 캠퍼스에선 이동도우미가 국가 근로장학생으로 선발돼 매칭된 장애학생의 수업 이동을 돕고 있다.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서울캠의 SK미래관과 세종캠의 문화스포츠대학 교육동에는 관련 법률에 따라 엘리베이터 등 장애인 이동을 위한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박장호 세종캠 시설팀 과장은 “건물을 신축하기 위해선 세종시로부터 장애인 편리 시설 유무를 검토 받아야 한다”며 “준공 후에도 계획한 장애인 시설과 실제 설치된 시설이 일치하는지 검토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학교의 정책 의도가 실제 장애학생에게 와 닿지 않아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장애학생과 관련 단체에서는 장애학생을 위한 제도와 시설이 장애학생의 실생활과 괴리돼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동도우미 제도는 수업이 늦게 끝나 도우미와 장애학생이 제 시간에 만나지 못하는 등의 어려움이 생기곤 한다. 최현호 서울캠 장애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장애학생의 불편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져 정해진 시간과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며 “장애학생 지원정책이 장애학생에게 와 닿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시설 개선을 요청해도 부서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개선 논의가 지속되기 어렵기도 하다. 장애학생인권센터가 있지만 시설 보수를 건의하려면 건물을 담당하는 부서나 건축팀 등 여러 창구를 알아봐야 한다. 문과대 서관 엘리베이터의 경우에도 장애인권위원회 차원에서 문제가 제기돼 공사가 이행되기까지 5년이 걸렸다. 최현호 위원장은 “2013년 말 공사를 약속받았지만 행정 절차를 이유로 지연됐다”며 “지속적으로 학교를 독촉해야 했고 작년에는 문과대 학생회와 협력해 다시금 건의하기도 했다”고 했다.

개선 위해 체계적인 변화가 필요
  전문가들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선 우선 이동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의 해결방안을 시설 등 환경 개선에서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장애학회 조한진 학회장은 “건물에 장애인 화장실이 없다는 건 장애인에게 건물 이용을 포기하라는 얘기와 마찬가지”라며 “일상적으로 누려야 하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인식에서 이동권 문제에 다가가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총장 직속 협의체 신설 등 학교본부 차원의 구조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조한진 학회장은 “소수자 문제에 민감한 학교들의 경우 총장 직속 위원회를 설치하기도 한다”며 “장애인의 지위를 향상시킬 총장 직속 위원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실제로 2012년 선문대는 학교와 지역의 다문화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 총장 직속 글로컬다문화교육센터를 설치하기도 했다.

  협의체 신설을 통해 문제의 사전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침해예방센터 조주희 팀장은 “장애인이 불편을 호소해야만 개선하기보단 사전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갖는 게 필요하다”며 “먼저 관련 기관이 문제를 파악하고 예산을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학생사회 차원에서 장애학생 인권 운동을 활성화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비장애학생의 꾸준한 관심과 참여가 동반돼야 실질적인 문제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시설 개선이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의 시설 사용도 편리하게 한다는 점에서다. 조주희 팀장은 “학생들이 연대해 학교본부가 장애학생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며 “개개인이 이동권 침해 사례를 모니터링해 정책을 제안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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