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김시언 기자 sean@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 속 주인공 계나는 이렇게 되뇌인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20대 여성인 계나는 대학 졸업 후 취업난 속에서 운 좋게 취직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떠날 거라 말한다.

끝없는 구직난 속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마저도 삶의 질은 쳇바퀴마냥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옥철’에 올라 출근을 해서 수동적인 업무를 반복하기 십상이며 ‘야근’은 일상이다. 이러한 한국에 지친 청년들의 눈길이 해외시장으로 닿고 있다.

▲ 그래픽|박주혜 기자 johehe@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청년들
해외 노동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구직자가 매년 늘고 있다. 취업알선사이트 ‘사람인’의 설문조사에서 구직자 478명 중 78.5%가 해외취업을 희망한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해외취업자도 2년 사이에 2배 가까이 뛰었다. 고용노동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4년 3266명으로 시작했던 해외취업자는 2016년 6542명으로 늘어났고, 올해는 7500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요 취업국가는 미국, 호주, 캐나다, 싱가포르, 일본 등이며 일반 사무직부터 전문직, 서비스 판매직까지 직종도 다양하다.

청년들이 해외취업을 희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취업난과 견디기 힘든 업무환경 때문이다. 앞선 ‘사람인’ 제공 설문조사에서 해외취업을 희망한다던 응답자의 46.9%가 ‘국내 취업난이 너무 심각해서’를 그 이유로 꼽았고, ‘국내보다 근무환경이 좋을 것 같아서’가 두 번째(42.7%)를 기록했다. 뒤이어 해외생활에 대한 동경이나 외국어 실력 증진과 같은 자아실현과 관련된 선호가 자리했다. 졸업 후 미국취업을 진지하게 고려중인 김성훈(경영대 경영16)씨는 “어렸을 때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자유롭고 새로운 생활방식에 대한 막연한 환상 때문에 해외취업을 꿈꿨다”며 “구글, 야후, 페이스북 같은 외국계 기업이 생각보다 완벽한 직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국내기업과 다르게 ‘수평’적인 기업문화가 여전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안정적인 수요가 있는 ‘전문직’ 취준생 또한 해외취업의 장점을 주목하고 있다. 서울대 간호학과 16학번으로 재학 중인 장 모씨는 간호사 자격증 취득 시 국내에서 취업이 100% 보장되지만 3년간 임상경력을 쌓은 이후에는 중동이나 미주 쪽 취업을 설계중이다. 그는 “한국은 간호사에 대한 처우와 사회적 인식이 높은 편이 아니라서 해외취업을 결심했다”며 “대학병원에 종사하는 간호사는 3교대를 가장한 8시간 초과근무와 수동적인 업무 수행자로 여겨지고 있다”고 말했다.

 

도피성 취업은 위험… 철저히 준비해야
해외 취업에 성공한 이들의 대부분은 해외취업에 만족하고 있는 편이다. 고용노동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해외 체류자 356명 중 68.8%가 해외취업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만족 사유 역시 해외취업을 희망했던 사유를 대부분 충족했다. 한국보다 나은 근무환경과 글로벌업무 능력 함양, 실력에 따른 보상 등이 차례로 기록됐다. 본지와의 인터뷰에 응했던 해외취업자들도 한국 특유의 업무 이외의 시간을 쏟아야 하는 비합리적인 조직문화가 없고, 일과 일상의 분리가 엄격한 업무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크다고 증언했다.

한편 해외취업알선 관계자들은 해외 일자리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와 준비 없이 막연한 동경이나 낙관을 바탕으로 한 도피성 해외취업을 경계할 것을 조언한다. 한국보다 인구절벽이 일찍 시작된 일본은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복지제도를 이점으로 삼아 한국의 IT 분야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모집하고 있다. 이에 신촌 소재의 정보보안 IT 교육기관 관계자는 “일본의 연봉과 복지의 절대적인 수준이 한국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한국 특유의 전세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일본에서는 월세가 월 70~80만 원 정도이고, 통근을 위해 왕복 4시간을 허비하는 등 상대적인 가치를 따져보았을 때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IT산업의 전반적인 핵심은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며 “이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매우 중요한 만큼 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업무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중동 및 아랍취업 관련 네트워크인 ‘아랍코리아비즈’ 운영자 안은정씨는 세계경제정세의 변동과 자국민우선주의로 인한 업무 불안정성을 해외취업의 가장 큰 단점으로 꼽았다. 그는 “특히 경제가 유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중동지역의 경우 유가하락과 자국민우선주의가 맞물려 외국인노동자의 수요를 우선적으로 감축시키는 결과를 야기한다”며 “중동 취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던 박근혜 정부시절과는 달리, 유가가 하락한 최근에는 질 좋은 일자리가 풀리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해외취업지원사업의 과제는
IMF 외환위기 이후 청년실업 해소 대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정부의 해외취업지원 사업은 2013년 고용노동부가 본격적으로 실시한 ‘K-MOVE사업’이라는 이름표를 달며 탄력을 받았다. 사업 초기 225억 원으로 편성됐던 K-MOVE사업의 예산은 점차 불어나 2017년에는 452억 원까지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곳간이 풍족한 만큼 고용노동부는 해외취업 전반을 지원할 수 있도록 진취적으로 사업 프로그램을 확장해 나갔다. 작년 10월 감사원이 발표한 <청년고용대책 성과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K-MOVE 스쿨을 통해 해외진출을 희망하는 청년을 대상으로 맞춤형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민간 해외취업알선 지원사업을 통해 해외취업을 촉진시켰다. 이들에게 해외취업성공장려금을 지원해 취업자들의 현지 조기정착과 장기근속을 유도한 것이 2016년까지의 해외취업지원사업 내용이다. 2017년 현재에도 해외 취업정보 포털사이트인 ‘월드잡 플러스’의 모바일 앱 서비스화, 영어 이력서 선착순 무료서비스, 일자리 공공알선을 위한 해외 K-MOVE 센터 설립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렇듯 청년들의 해외취업을 장려하기 위해 정부차원의 지속적인 관심과 예산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앞으로 고용노동부가 개선해야할 K-MOVE사업의 한계와 과제는 뚜렷하다. 앞서 언급한 감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과 14년에 K-MOVE 사업의 도움을 받아 싱가포르에 취업하는 데 성공한 취업자 일부는 기본생계비보다 낮은 임금을 받으며 근무했다. 2013년 취업자의 57%, 2016년 취업자의 48%가 당시 귀국한 바가 있다. 즉, 과반수에 가까운 해외 취업자들이 해당 국가에서 장기적인 정착에 실패한 것이다.

감사원은 실패의 원인을 양질의 일자리 확보와 취업비자의 연장 실패에서 찾았다. 2013~2014년 취업자 857명 중 단 10명을 제외한 모두가 최대 거주기간이 1년 6개월인 교환연수비자(J-1)나 최대 거주기간이 1년인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취득한 채 미국과 캐나다, 호주로 향했다. 특히 장기 체류자에 대한 감시와 규제가 엄격한 미주지역의 취업자들은 취업비자의 만료시기가 다가올수록 불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결국 간호사와 같이 전문 자격증을 소유한 직업군의 취업자들만이 해외취업 성공이후에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권경득(선문대 행정학과) 교수는 “전문자격이 필요하지 않은 서비스 및 판매 직종에 취업한 구직자들의 장기적인 경력 개발을 위해 비자취득의 문제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고용노동부의 청년취업과 관계자는 “비자의 경우 자국민 보호와 형평성의 문제가 얽혀있어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개선이 어려운 면이 있다”면서도 “외교부와 지속적으로 청년 취업을 위한 비자문제 개선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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