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추석 학생복지위원회에서는 귀성길에 오른 학생들을 위해 버스를 준비하지만, 여전히 많은 학생은 사람과 차로 붐비는 귀성길이 부담스럽다. 사진| 고대신문 DB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갔던 명절의 모습이 변하고 있다. 1인 가구와 핵가족이 늘어나며 명절 연휴를 보통 연휴와 동일시하는 인식이 커졌다. 명절날 귀성 대신 여행을 가는 사람, 휴식을 취하는 사람 등 명절을 보내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한편 명절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커졌다. 사람들은 명절을 꺼리게 되는 원인으로 명절 때마다 늘어나는 스트레스를 꼽았다.

 

과거와 다른 명절, 명절은 휴일일 뿐

 많은 사람이 명절이 다가오면 차례와 성묘를 걱정하기보다 어떤 곳을 여행할지, 어떤 취미활동을 할지 고민한다. 2016년 트렌드모니터의 설문에 따르면 1000명의 응답자 중 약 60%의 성인남녀가 명절에 항상 가족들이 모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응답했다. 명절에 고향을 가지 않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 역시 줄어들었다. 매장 대신 화장을 택하는 인구가 늘어나며 그에 따라 귀성하는 인구가 줄었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처럼 성묘를 위해 고향에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명절 연휴를 이용해 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올해 8월 리얼미터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0%가 넘는 사람들이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을 계획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고향에 가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함께 있고 싶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교통체증이 부담돼 연휴에 혼자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강아름(인문대 독문14) 씨는 “고향이 멀고 기차가 사람들로 붐벼 내려가기 힘들다”며 “방학 외에는 긴 시간을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기간이 없는데 이번 연휴를 통해 읽고 싶은 책과 보고 싶은 영화를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명절의 모습이 변화하는 이유가 과거에 비해 가족 구성원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라 말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조출생률(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은 7.9명, 조혼인율(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은 5.5건으로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가족의 구성과 개념이 변화하면서 제사, 성묘 등 전통적인 명절의 모습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이상희(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는 “집성촌도 적고, 귀성 인구도 줄어 과거에 비해 명절이 주는 느낌 자체가 달라졌다”며 “명절 자체의 규모가 작아지다 보니 이제는 사람들이 휴일과 명절을 다르게 생각하지 않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명절 때면 찾아오는 스트레스

 명절에 받는 일종의 스트레스도 명절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명절은 많은 이들에게 피하고만 싶은 날로 여겨진다. 명절날의 장거리 운전과 가사노동은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기혼 여성인 김은주(여·49) 씨는 “시댁에 있는 기간이 길수록 가사노동을 하는 시간이 늘어난다”며 “명절만 되면 하루라도 빨리 명절이 끝나기를 바라게 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로 4년 전 남성과 여성의 명절 스트레스를 비교한 실험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가사노동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시댁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외로움도 더 많이 느낀다는 이유에서다.

 충남대병원 가정의학과 정진규 과장은 “조사 결과 여성은 ‘반년 치 월급의 부채를 갖게 되는 것’보다 ‘명절 당일에 받는 스트레스’가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남성이 명절날 받는 스트레스 강도보다 20%나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상희 교수는 명절날 의례에 참여하는 사람과 가사노동을 하는 사람이 엄격히 구분되는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상희 교수는 “여성에게만 가사노동을 시키는 명절 문화는 잘못됐다”며 “의례에 참여하는 가족과 노동을 하는 가족을 구분하는 한 한국인들이 받는 명절 스트레스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성이라고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기혼 남성들은 경제적 부담과 교통체증으로 인한 장시간 운전을 명절 스트레스 요인으로 꼽았다. 정진규 과장은 “장시간 운전으로 인해 근육이 뭉치고 스트레스를 받아 명절 이후 피로를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남성이 많다”며 “장시간 운전을 해야 할 때는 바른 자세로 피로를 예방하고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 진학을 앞둔 수험생들도 명절날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수험생들은 다른 학생과의 비교가 부담된다고 입을 모았다. 수능을 앞둔 김대한(남·19) 씨는 “친척들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좋은 결과를 요구하는 것 같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자신의 대학진학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 친척들이 부담스러운 수험생도 있다. 한병희(남·19) 씨는 “친척들이 모이면 자신의 대학 얘기가 항상 나와서 이제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는 부담될 정도”라고 말했다.

 

갈등 깊어지는 명절, 의미 더 약해질 것

 전문가들은 향후 전통적인 명절의 모습이 더욱 보기 힘들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상희 교수는 “한국에서 명절이 단지 일가친척과 식사를 하는 날로 바뀌어 가고 있다”며 “이는 더욱 심화돼 앞으로 명절은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연휴와 마찬가지로 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명절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기 위해선 명절날 받는 스트레스를 줄일 필요가 있다. 명절 스트레스는 가족 간 갈등과 불화를 불러온다. 실제로 명절 이후엔 부부 상담, 고민 상담 등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상담 건수가 늘어난다. 최근엔 청소년과 청년의 상담신청도 늘어나고 있다. 예담심리상담센터 안미경 소장은 “가족 간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준을 다른 가족에게 적용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안 소장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기준을 적용하며 판단하거나 비교하면 옳은 얘기더라도 상대방이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며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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