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지금까지 우리는 ‘기술’이 얼마나 발전해야 인공지능의 예술행위가 가능해질지를 질문해왔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예술을 눈앞에서 마주한 우리는 이제 인공지능의 기술적 어려움보다는 그 이후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예술과 인공지능의 예술이 구별되지 않을 정도인 지금, 우리는 새로운 질문을 마주했다. ‘인공지능의 그림은 예술성을 갖는가’ 그리고 ‘그림 그리는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는 어떠할까’ 이제는 인공지능과 예술에 대한 철학적·본질적 질문을 나눠야 할 때다.

▲ 인공지능 '딥 드림'이 '고흐 스타일로 그려달라는 주문에 그려낸 그림이다.

예술, 인공지능을 만나다
인공지능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생각됐던 창작의 영역까지 진출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이 예술 작업을 한다는 건 공장 작업 같은 단순 업무, 수학 문제 풀이 같은 지능적 업무에 이어 창의적 업무에서도 자동화의 서막이 열렸음을 의미한다. 김현철(정보대 컴퓨터학과) 교수는 “인공지능이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최근의 현상은 인공지능을 통해 ‘예술’이 ‘자동화’될 수 있는지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의 예술은 대회나 경매에서 실적을 거두며 그 실력을 입증 받고 있다. 일본에서 인공지능이 쓴 소설 ‘컴퓨터가 소설 쓰는 날’이 공상과학문학 공모전에서 예심을 통과했다. 미국에선 그림 그리는 인공지능 ‘딥 드립(Deep Dream)’의 작품 29점이 9만7000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인공지능 예술은 느릿하지만 꾸준하게 발전하고 있다. 제시된 음악에 어울리는 춤을 만드는 ‘딥 댄서(Deep Dancer)’는 지난 4월 춤 시연회를 가졌다. 동양화 그리는 인공지능 ‘갠묵(Gan Mook)’이 등장하기도 했다. 딥 댄서와 갠묵을 개발한 지능정보기술연구원의 김진형 원장은 “동양화는 서양화와 다르게 ‘여백’을 중시하기 때문에 서양화를 그리도록 개발된 해외의 인공지능은 동양화를 그리지 못한다”며 “이에 지능정보기술연구원은 동양화 그리는 인공지능을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는 ‘4차 미디어아트 : 포스트 휴먼’을 개최해 인공지능을 활용한 작품도 여럿 전시하고 있다. 그 중 아트센터나비의 ‘거울’은 관람객이 작품 앞에 서면 대형화면에 명화 스타일로 그려진 관람객의 모습이 나타난다. 인공지능은 관람객의 모습을 명화 스타일로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다. 전시회를 기획한 변길현 큐레이터는 “큐레이터로서 4차 미디어아트를 규정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국내 최초의 4차 미디어아트 전시회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 작품 '거울'은 인공지능을 통해 명화 속에 관객의 모습을 넣어준다.
▲ 인공지능 '딥댄서'는 들려준 노래에 맞는 안무를 컴퓨터 화면에 출력해낸다.

인공지능 예술은 진정한 예술인가
현재 인공지능의 수준은 독자적으로 예술 작품을 완성시키기엔 부족해 인간과의 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혼자 예술 작품을 창작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최승준 미디어 아티스트는 “현재 인공지능은 인식한 것을 표현하는 정도이지 고민과 성찰을 담는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인간이 ‘기계어’를 통해 프로그래밍을 해야만 기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던 것에 과거에 비해 인공지능은 크게 변화했고, 이제는 기계가 ‘자연어’를 통해 인간과 대화하며 협업하기까지 한다”며 인공지능의 빠른 발전을 강조했다.

다만 인공지능이 독자적으로 작품을 창작하게 되더라도 그 작품을 진정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란이다. 인공지능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인공지능은 감정을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학습할 수 있어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목소리가 있다. 최승준 작가는 “인공지능이 창작한 작품에 대해 인간이 감정적으로 반응하면, 인공지능은 그 반응을 피드백 삼아 감정이 무엇인지 배워나갈 수 있다”며 “사람의 감정을 배운 인공지능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인공지능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기 시작하면서 힘이 실리고 있다. 인공지능 예술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으며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알고리즘을 통해 인간의 선호를 분석하고, 그 분석을 바탕으로 작품을 창작하기 때문에 인간 선호에 부합하는 작품을 창작하는 데에 유리하다. 정인교(문과대 철학과) 교수는 “작품의 기원은 예술성과 별개의 문제”라며 “높은 예술성과 창의성을 인정했던 예술이 사실 인공지능의 산물이라고 해서 우리의 판단을 오류라고 할 순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인공지능의 예술은 진정한 예술이 아니라는 의견 역시 나온다. 예술 작품은 주목받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표현해서 세계를 이해하는 우리의 지평을 넓혀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빅데이터의 분석과 결합을 통해 만들어지는 인공지능 작품은 이를 수행하기 어렵다. 이들은 예술의 주체는 작품을 기획할 수 있는 인간이여야 한다며 인공지능을 인간의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본다. 박일호(이화여대 조형예술학부) 교수는 인상주의 화가 ‘휘슬러’의 작품을 예로 들며 말했다. 그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에는 런던에 안개가 없었다는 말이 있다. 런던 시민들이 고통스럽게만 생각했던 안개를 휘슬러의 그림을 통해 낭만적으로 생각하게 됐다는 뜻이다”며 “이와 같은 사물의 재조명을 인공지능이 수행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독자적으로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인공지능의 출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흉내 내는 것을 넘어서 창의성을 갖게 되는 순간을 ‘특이점’이라고 하는데, 현재 ‘특이점’에 도달한 인공지능이 개발될 수 있는 기술은 없다. 인공지능의 ‘특이점’에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 앞으로도 그러한 기술이 개발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현철 교수는 “인공지능의 창의성을 갖출 수 있는가에 대해선 예술 분야 뿐 아니라 다양한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며 “특이점에 도달한 인공지능이 개발될 기술은 현재 없지만 방법이 나온다 하더라도 인간과 사회의 동의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예술에서도 주체는 결국 ‘사람'
예술의 영역에 대한 인공지능의 ‘침범’은 인간 능력에 대한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취약 계층 및 전공별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약 10년 후 국내 일자리의 52%가 로봇 또는 인공지능으로 대체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어가는 상황에서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창작의 영역에서까지 인간의 설자리를 잃는 것이다. 이에 자신의 ‘일’을 빼앗기는 것에 공포를 느끼는 이들도 있다.

한편 인공지능이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선도 있다. 빠르게 많은 예술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인공지능 덕분에 가능해진 ‘개인 맞춤형 예술’이 대표적인 예다. 개인 맞춤형 예술을 통해 우리는 원하는 콘텐츠를 바로 제공받을 수 있게 된다. 미국에서는 드라마 팬들을 위해 인공지능이 종영한 드라마를 기반으로 같은 드라마의 새로운 에피소드의 대본을 제작하기도 했다.

인공지능 예술이 불러올 미래가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최승준 작가는 “인공지능 예술은 그 자체로는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예정된 수순이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그 이해와 활용에 따라 정치, 사회, 문화 등 인류 양식 전반에 때론 긍정적인 영향을, 때론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의 활용 주체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 역시 인간에게 달려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인공지능 예술이 함께하는 미래가 긍정적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도 예술의 주인은 결국 인간이다. 지난 예술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도구와 매체의 발달에 따라 예술 역시 변해왔다. 최초의 ‘그림’은 인간이 동굴 벽에 막대기나 돌로 그림을 그리는 것에 불과했다. 이후 대나무 판이나 양피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종이가 발명되자 수묵화가 나왔으며 캔버스를 발명 된 후에는 캔버스화가 유행했다.

이렇듯 예술의 형태가 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직 사람을 넘어선 예술이 성행하는 ‘포스트 휴먼’의 시대가 오지 않았지만, 인공지능이 예술의 중심에 설 시대에 맞설 대비는 해야 한다. 변길현 큐레이터는 ‘포스트 휴먼’ 역시 ‘휴먼’을 전제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예술의 형태는 변해도 결국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며 “인간이 정의하고 인정하는 예술에서 ‘인간’은 빠지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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