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구보민

국내 최초의 인공지능 작곡가 ‘보이드’ 개발자 정재훈 씨 인터뷰

지난 6월, 음원 사이트에 인공지능이 만든 음악이 등장했다. 인공지능 작곡가 ‘보이드’는 뉴에이지 스타일의 신곡 ‘Song of Spring’과 ‘This Spring’을 공개했다. 보이드의 음원 발표는 작년 일렉트로닉 음원 공개에 이어 벌써 두 번째다. 보이드가 성장하면서, 개발자 정재훈(30·남) 씨의 소망인 누구나 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세상도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직접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음악을 좋아해서 작곡을 직접해보고 싶었는데, 그 마음이 지금의 인공지능 작곡가 보이드를 있게 했죠.” 국내 최초 인공지능 작곡가 ‘보이드’의 시작은 소박했다. 평소 음악 듣기를 즐기던 컴퓨터 공학도 정재훈 씨의 직접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보이드의 출발점이었다. 자신이 공부하는 인공지능을 통해 작곡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의 지도교수였던 안창호(광주과학기술개발원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와 함께 보이드 개발을 시작했다. 그 결과 이제는 정재훈 씨를 포함해 누구나 보이드와 함께 나만의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도와 솔 음계를 이용해 밝은 곡을 만들어줘.” 사용자가 명령을 내리면 보이드는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다. 명령은 음계의 지정처럼 구체적일 수도 있고, 곡의 분위기처럼 추상적일 수도 있다. 물론 인공지능은 ‘밝은 분위기’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개발자가 사전에 밝은 분위기에 맞는 리듬과 멜로디의 특징을 알려줘야 한다. 일련의 학습 과정을 거친 후, 인공지능은 이용자가 원하는 분위기에 맞는 선율을 작곡할 수 있게 된다. 보이드는 아직 완전한 곡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사용자는 보이드가 만들어준 선율을 짜임새 있게 이어붙이고, 악기를 편성해 곡을 완성시켜줘야 한다. 이번에 발표한 ‘Song of Spring’과 ‘This Spring’ 역시 위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보이드가 작곡을 하는 비결은 진화 알고리즘에 있다. ‘보이드(Boid)’는 ‘Bird Oid’의 줄임말로, 가상세계에서 새처럼 움직이는 객체 또는 그 모습을 닮은 알고리즘을 의미한다. 새가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듯, 인공지능 작곡가 보이드도 음악의 세계를 날아다니며 선율과 리듬을 찾아내는 것 같아 지은 이름이다. 보이드는 그 이름 때문에 ‘보이드 알고리즘’을 사용할 것 같지만 사실 ‘진화 알고리즘’을 이용한다. 이런 기술적 특징을 더 잘 나타내기 위해 보이드는 앞으로 ‘Evolutionary Music’의 약자인 ‘이봄(Evom)’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진화 알고리즘이란 다수의 선율이 섞이고 돌연변이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새로운 선율이 창작되는 방식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음악을 한 음씩 만들 필요가 없어 효율적이다. “사람도 기존의 것을 섞거나 변형해보는 과정에서 창의적 작품을 생산해요. 진화 알고리즘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과정과 유사하죠.”

진화의 과정에서 환경에 알맞은 객체가 생존하듯이, 보이드도 작곡의 과정에서 수많은 음악 선율을 무작위로 만들어내고 이 중 ‘환경’에서 생존한 선율을 내보낸다. 문제는 음악세계에서 환경이란 무엇인지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데서 발생한다. 보이드가 내놓은 선율 각각을 인간이 직접 평가해준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따라서 평가를 대신하는 인공지능을 구축해야하는데, 인공지능은 자연스럽게 선호를 느낄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이드는 ‘음악 이론’을 사용한다. “보이드는 화성악과 작곡이론을 이용해서 자신이 만든 선율을 자체적으로 점검해요. 그리고 이상한 선율을 발견하면 수정하죠.” 정재훈 씨는 보이드에게 음악 이론을 가르치기 위해 6개월 정도 음악학원에서 화성학과 작곡이론을 배웠다.

이런 그의 노력 덕분에 보이드는 음악 전문지식이 해박한 인공지능으로 성장했다. 지금까지 작곡하는 인공지능은 많았지만, 대부분이 한정된 코드와 일정한 멜로디를 사용하는 단순한 음악을 만드는 정도였다. 음악에 대한 기본적 지식 없이 데이터만을 기반으로 작곡하면 표절의 확률도 높고 어색한 음도 잡아내지 못한다. 보이드가 배운 음악적 지식은 이를 보완하는 데에 사용된다. “보이드의 곡들은 창작을 위한 창작이 아닌, ‘감동’을 위한 창작이기를 바라요. 코드가 탄탄하고 전문지식도 많이 반영돼있는 곡을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보이드의 최종 목표는 음악이 필요한 이에게 원하는 음악을 원하는 순간에 제공하는 것이다. 보이드가 선율 하나를 만드는 데에는 1초에서 10초 정도가 걸리며, 완전한 곡을 만들 기술이 갖춰지게 된 후엔 30초에서 1분 정도가 걸릴 전망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건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음악을 바로 제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뜻하죠. 즉 ‘개인 맞춤형 음악’이 가능해지는 거예요.” 보이드에게 음악을 주문하는 이유는 사람들마다 다르다. 심신 안정이 될 수도 있고, 특수 목적이 될 수도 있지만 첫 시작은 배경음악용이 될 전망이다. 아직 인공지능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대중 감상용 음악을 창작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단한 음악을 작곡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이드를 이용하는 소규모 콘텐츠 개발자들은 몇 가지 선택을 통해 저작권에 문제되지 않으면서도, 상황에 딱 맞는 음악을 얻을 수 있다.

보이드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음악을 바로 제공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점점 발전하고 있다. 보이드가 지금까지 음악구조가 반복적이고 형식이 고정적인 뉴에이지나 일렉트로닉 장르를 다뤄왔다면, 이제는 변칙적인 음악인 재즈에 도전할 계획이다. 정재훈 씨는 음악을 이론적으로 배운 보이드가 틀을 깨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언젠가는 인간을 감동시키는 음악을 만드는 인공지능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때면 보이드도 사람이 원하는 음악을 제약 없이 제공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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