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설가를 꼽으라면 꼭 ‘김애란’을 빼놓지 않고 말하게 된다. 그 이유는 무얼까. 처음 그녀의 작품을 접한 건 단편집 <비행운>을 통해서였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눅진하게 얼룩져있던 불행과 비극의 단면들이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그 책을 몇 번이고 읽었다. 묘한 동질감이 태생적으로 우울한 나를 어루만졌기 때문일까. 그녀의 글은 적나라하지만 불쾌하지 않았다. 그런 김애란이 5년 만에 새 소설집인 <바깥은 여름>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하늘색 바탕의 예쁜 표지를 마주했을 때 내 마음은 한껏 일렁였다.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바깥은 여름>은 총 7개의 단편 소설들로 구성된 단편집으로, 수록된 작품들은 모두 최근 3년 내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층 더 현실적이고, 최근 있었던 마음 아픈 사건들을 연상시키는 단편들도 수록되어있다. 나에게 있어서는 첫 번째로 수록된 단편 ‘입동’이 특히 그러했다. ‘입동’에 등장하는 부부는 엄마의 생일을 축하한다며 손뼉을 쳐주던 어린 영우를, 태어나서 처음 보는 케이크 위 촛불을 신기한 듯 응시하던 영우를 사고로 잃는다. 종이 너머로 그들의 모습을 응시하는 내내 2017년 여름에 출간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손발이 시렸다. 밝은 하늘색 표지와 흑백의 내지 속 얼굴 내미는 어둠들이 대비되듯이.

  책을 어떻게 한 문장으로 정의내릴 수 있겠냐만 그래도 압축해 말하자면 <바깥은 여름>은 “소재들을 그저 이야깃거리로 소비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작가가 쓴 소설답다. 아이와 부부, 소년과 강아지, 남편과 아내, 젊은 연인들의 모습들이 마치 내가 겪었던 일처럼 남아있다. 작가가 이름 붙인 이들은 종이 위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또 무언가를 잃는다. 만났기 때문에 잃고 잃었기 때문에 만나기도 한다. 그게 꼭 우리 모습 같다. ‘가리는 손’에서 재이의 엄마가 말했듯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진다.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서로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213쪽) 그들은 생생한 묘사나 휘황찬란한 서술 없이도 김애란 특유의 문체 속에서 그리고 책 바깥에서까지 묵묵히 살아있다. 여름과 겨울이 번갈아 돌아오는 것처럼. 그래서 작가가 아닌 독자인 나 역시 책장을 덮고 난 뒤에도 그들의 오늘과 내일이 궁금하다.

  나는 어느새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날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149쪽)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바깥은 여름>을 읽고 난 뒤 그런 사람이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고, 오히려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껏 슬퍼하고 마음껏 기뻐할 수 있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는 모두가 마음껏 아플 수 있기를 바란다.

 

글 | 한지윤(문과대 서어서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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