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소 씨가 오빠 이진형 씨와 아버지 이청강 씨와 함께 수확한 감자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핑크세레스’의 농장주 이미소 씨 인터뷰

전 세계에 감자는 약 3000종이 있지만 그 중 국내에서 재배하는 건 50여 종도 안 된다. 게다가 생산되는 감자는 대부분 폭신폭신한 식감이 특징인 하얀 ‘수미 감자’다. 감자의 단종화는 식탁을 단조롭게하며 종자의 다양성까지 해친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높아지면서 점차 다양한 감자 종자의 중요성이 제고되고 있다.

강원도 춘천시 소양강 옆 감자밭에 우리나라의 감자 종자를 다양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이 있다. 우리나라 감자에 관심을 가지고 재배하고 있는 청년농부 이미소(여·27) 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미소 씨는 이름도 생소한 로즈밸리, 보라밸리, 고구마감자를 키우며 우리 종자를 지켜내고 있다.

 

“수미감자랑 비교했을 때 저희 감자는 칼로리는 낮으면서 비타민C 함량은 높아요. 또한 각각 장점을 가지고 있어서 쓰임에 따라 골라서 사용할 수 있죠.” 이미소 씨가 키우는 감자 중 하나인 ‘로즈밸리’는 분질이 많아 수제비로 만들어도 맛있고 쪄 먹어도 풍미가 좋아서 요리사들이 자주 찾는다. ‘보라밸리’는 몸속의 열을 내려줘서 고혈압에 좋으며, 안토시아닌 함량이 블루베리에 들어있는 양보다 약 3배 높다. 보라밸리는 식량 작물로서 국내 최초로 미국에서 로얄티를 받기도 했다. 2009년에 미국에 로열티 1만3000달러를 받고 종자를 수출한 것이다. 천연 항생제 성분을 함유한 ‘고구마감자’는 겉은 빨갛고 안은 하얀 것이 특징으로, 생식으로 먹어도 아리지 않고 달다.

이미소 씨가 감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아버지 이청강(남·61) 씨 덕분이다. 이청강 씨는 종자 다양성을 지켜야한다는 소명의식 아래 농사를 시작했다. 외환위기 시절 종자가 외국으로 팔려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종자를 지키겠단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무렵 임학태(강원대 생명과학부) 교수를 필두로 개발된 밸리감자에 꾸준한 연구비도 지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종자문제가 곧 식량 문제라고 하셨어요. 이를테면 예전에 아일랜드에서 대기근이 왔던 것도 생산성이 좋은 단종의 감자만 심다보니까 잎마름병이 유행했을 때 대처하지 못했던 것처럼요.”

밸리감자는 성공적으로 개발됐지만 키우려는 사람이 없어 종자가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 그때 이청강 씨가 직접 농사를 짓기로 마음을 먹었다. 2년 간 농사를 지으면서 그는 키우는 감자들의 중요성을 점점 더 크게 느끼게 됐지만, 농사사업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보던 이미소 씨는 3년째에 결국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귀농을 결심했다. 서울에서의 팍팍한 삶을 정리하자는 생각도 있었다. “그때 아버지께 연락이 왔어요. 밭을 가꿔도 네 것을 가꿔보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씀하셨죠. 그렇게 이곳으로 오게 됐습니다.”

난생 처음 도전한 농사는 결코 쉽지 않았다. 서울에 살던 도시 청년이 가로등도, 차도 없는 시골에 적응하는 건 쉽지 않았다. 친구가 다 서울에 있다 보니 외롭기도 했다. 수확한 감자가 잘 팔리지 않아 겪는 어려움도 있었다. 한국은 감자 종류가 굉장히 한정돼 있고, 사람들이 익숙하게 찾는 수미 이외의 품종은 팔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높은 가격으로 인해 외면을 받기도 했다. 수미 감자를 키우면 국가에서 종자를 지원받지만 이미소 씨는 키우는 품종의 종자들을 직접 생산하고 있어 일반 감자에 비해 1.5에서 2배 정도 가격이 높다. “너무 힘들어서 아버지에게 진지하게 이제 그만하자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러던 중 이미소 씨는 2016년에 전세계의 농업 관련자들이 모이는 컨퍼런스인 유기농감자학회 (Organic Potato Association, OPA)에 초청받게 됐다. 컨퍼런스에서 소개된 몇 백 종의 감자를 보면서 이미소 씨는 키우는 감자의 종류가 몇 십종밖에 되지 않는 우리나라를 떠올렸다. “우리나라는 감자 종류를 말하면 크기로 말해요. 소·중·대 이런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외국에는 감자 종류가 정말 다양하더군요. 빨간 감자, 노란 감자, 길쭉한 감자를 보며 굉장히 놀랐죠.”

다른 청년 농부들과의 교류도 이미소 씨에게 힘이 됐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춘천에 처음 내려왔을 때는 외로웠지만 ‘그로어스’라는 청년농부 커뮤니티에 참여하면서 다른 청년 농부들을 만나게 됐다. 그 인연들과 함께 청년농부 협동조합을 만들어 생산물을 팔고 행사도 기획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기획에 참여하며 우리 감자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도시 소비자들과의 직접적인 만남 속에서 성공을 맛봤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동대문 DDP에서 진행한 ‘농부 약방’이었다. ‘농부 약방’은 약사 가운을 입은 농부들이 도시인들의 고민을 듣고 그에 따른 처방을 내려 농산물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소정의 참가비를 받고 농산물을 판매도 하고 식사 대접도 하는 ‘펀드 테이블’이라는 프로그램도 반응이 좋았다. 요리사들이 재능기부로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힘을 보탰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 농산물 홍보 활동을 꾸준히 진행한 끝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력을 알아주기 시작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판매에 실패한 작물을 10톤 넘게 묻으며 마음 아팠지만, 올해는 완판에 성공했다. “1년 사이에 사람들이 농산물 다양화의 중요성을 많이 느끼신 것 같아요. 저희 감자의 매력도 많이들 알려진 것 같고요. 하도 떠들고 다녀서 그런지 많이 도와주셔서 그런지 이제 많이들 먼저 찾으세요.”

소비자와 요리사에게 받은 인정과 칭찬은 이미소 씨가 농사를 계속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다. 특히 재료의 차이를 섬세하게 느끼는 요리사들의 칭찬은 이미소 씨의 자부심이다. 이제는 이미소 씨의 감자가 아니면 요리를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외국에서나 구할 수 있었던 감자를 한국에서도 찾을 수 있어서 고맙다는 말을 들어요. 감자 강국이라는 덴마크 감자보다 더 맛있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감자를 한국에서 찾았다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이렇게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을 때 가장 보람 있죠.”

앞으로 이미소 씨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직접 소비자를 찾아가는 기회를 확대해갈 계획이다. 이전에는 빨리 더 큰 성과를 내려고 안달해서 힘들었지만, 그런 욕심을 내려놓자 최종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것의 의미를 느꼈다. “종자를 지키는 것도 좋지만 결국 소비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매장당하는 거잖아요. 다양한 우리 종자가 더 알려지고 소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가장 큰 고민이죠.” 이런 고민은 최근 보라밸리 분말 사업으로 이어졌다. 경기청에서 지원을 받아 보라밸리를 이용한 ‘예뻐보라’라는 한 끼 간편식으로 개발했다. 내년부터 ‘예뻐보라’를 유통하고 감자 가공 쪽에도 집중한다는 것이 이미소 씨의 계획이다. “식량 자주권을 지키자는 큰 목표에서 농사를 시작했어요. 하지만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첫 걸음은 소박하더라도 일단 키운 감자들이 맛있게 식탁까지 도달시키기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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