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본인제공

윤정인본교 법학연구원 연구교수 기고

지난 1년은 대한민국의 헌정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금년 3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을 선고하여 대한민국에서 마치 침범불가의 성역처럼 여겨져 온 대통령을 법적 절차에 따라 파면함으로써, 헌정의 위기를 합법적 절차를 통해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한국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적극적ㆍ능동적으로 이끌어 간 것은 국민들 이었다. 국민들은, 주권자인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남용하고 국법질서를 문란케 한 정부수반에 대하여 신임을 거두었고, 헌정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소극적이었던 국회를 추동하여 탄핵소추에 이르게 하였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렸다. 결국 합법적인 제도와 절차를 통해 정부를 교체함으로써 정당성과 합법성을 결합한, 평화로운 촛불혁명을 통해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주권자가 누구인지, 헌정질서의 최후의 수호자가 누구인지를 증명하였다.

국민의 적극적 참여에 힙입어 일차적인 돌파구를 연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제 국가제도의 개혁이라는 큰 과제 앞에 서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새로 출범한 정부와 정치권은 헌법개정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으며, 개헌논의에 국민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정치적 공동체로서 국가는 헌법제정을 통하여 법적 공동체가 된다. 헌법에 약속된 공동체의 가치와 질서, 국가조직에 대한 합의에 따라 각 국가기관에 국가권력의 행사권한이 배분되고 그 기능행사가 정당화된다. 국민은 이러한 헌법의 제정권력자이며 개정권력자로서 헌법의 제ㆍ개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최후의 권력이다.

그러나 현행헌법에 따르면, 헌법개정안의 발의권은 국회의원과 대통령에게 부여되어 있고, 이 개헌안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공고한 후 회 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으로 통과되면 비로소 국민투표에 부쳐져, 국민들은 마지막으로 개헌안에 대한 찬반의사의 표시만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법개정의 전 과정을 통해 이처럼 최후단계에서 참여하는 것만으로 헌법개정의 정당성 확보에 필요한 국민참여로서 충분하다고 볼 수 있을까. 헌법개정의 발의도 헌법안의 작성도 심의와 토론도 모두 정치인들의 전유물이 된 헌법개정과정을 과연 민주적 헌법입법과정으로 볼 수 있을까.

종래 헌법제ㆍ개정의 주된 관심사가 헌법에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하느냐에 그쳤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헌법의 내용뿐만 아니라 헌법을 만드는 절차 내지 과정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었고, 최근에는 헌법의 성립과정에 헌법의 제ㆍ개정권력자인 국민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심지어, 인터넷과 전자통신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오늘날에는 대의제민주주의가 노정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국가정책결정 및 정치과정에의 국민의 참여를 질적으로 제고시킬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에 큰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는 헌법개정과정에도 적용되는데, 최근에는 헌법개정에 국민을 참여시켜야 한다는 당위성과 중요성을 논의하는 수준을 넘어, 어떻게 하면 국민이 직접 헌법을 만드는 과정에 더 많이, 더 깊게 참여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논의되고 있고 또 시도되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심각한 재정위기 뿐만 아니라 사회적 위기를 맞게 되었는데, 그러한 국가위기사태를 초래한 배경에 정치ㆍ경제 엘리트들의 방만한 경영과 도덕적 해이가 있었음을 알게 된 시민들은 크게 분노하게 되었다. 결국 반정부시위가 이어져(kitchenware revolution) 정부가 사퇴하였고, 시민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사회 전체의 정치적ㆍ도덕적 혁신을 위하여 공동체의 기본가치부터 새로 정립하는 전면적 헌법개정을 요구하였다. 총선 후 새로 구성된 정부는, 헌법에 들어갈 내용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토론의 장을 개최하였고(National Forum 2010), 헌법안 작성을 위한 헌법제정의회(Constitutional Assembly)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를 실시하여, 정치인을 배제하고 18세 이상의 국민들의 입후보를 받아 25인을 선출하였다. 그러나 과거 정부에서 구성된 대법원이 선거의 효력을 문제삼자, 정부는 위 25인을 헌법심의회(Constitutional Council) 위원으로 임명하여 헌법개정안의 작성을 위한 심의를 진행하였다. 심의과정은 웹싸이트, 페이스북,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었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댓글과 시민들의 트위터, 이메일, 우편을 통한 의견을 수렴하여 반영하였다. 이러한 아이슬란드에서의 실험에 당시 전세계가 주목하였는데, 헌법개정과정에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중참여를 시도하고 쌍방향적 소통을 통해 헌법개정안의 심의를 진행한 최초의 사례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중참여방식을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이라 부르는데, 이는 대중을 의미하는 crowd와 외부자원의 활용을 의미하는 sourcing의 합성어로, 일정한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대중의 광범한 참여를 통해 아이디어나 문제해결방법을 얻어내는 방식을 의미한다.

민주적 헌법국가에서 주권행사의 가장 강력하고 근본적인 수단은 헌법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은, 민주적 책임성을 회피한 국민의 대표가 초래한 헌정의 위기를 국민의 참여를 통해 수습한 후, 국가설계와 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참여욕구가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국가의사결정을 대표에게 오로지 위임할 수밖에 없었던 물리적ㆍ기술적 조건들은 상당히 극복되고 있다. 촛불혁명을 통해 중대한 헌법적 기회를 만들어낸 국민들은, 헌법개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공동체의 가치와 질서를 직접 정립할 기회를 누려야 한다. 현행헌법상 그러한 제도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국민들은 국회와 정부에 대하여 그러한 절차를 마련하여 헌법개정을 추진할 것을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국민이 중심이 되어, 국민에 의해 만들어진 새 헌법이라야, 이 시대의 역사적 맥락을 충족시킴과 동시에 강력한 정당성을 보유한 국민의 장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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