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근 교수는 2008년 교단에서 물러나며 <한국의 대학총장 선출제도>를 출간했다. 전주교대 총장 선거에도 직접 출마했던 강 교수는 퇴임 이후 계속해서 총장 선출제도를 연구하고 있다. 그의 저서에는 △해방 이후 한국 대학총장 선출제도의 역사와 문제점 △외국 대학의 총장 선출제도에 대한 분석 △총장 선출 제도의 개선 방안 등이 담겨있다. 강원근 교수를 만나 한국의 총장 선출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 한국의 대학총장 선출제도는 어떻게 변화해 왔나

“우리나라 근대 대학들은 대부분 1945년 8·15 해방 이후에 출범했어요. 우리 고등교육은 특히 미국의 제도와 사상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했기에, 이 당시엔 비교적 자율적이고 개방적인 방향으로 교육정책이 실시됐습니다. 1953년에 교육공무원법이 제정되면서 대학총장을 뽑을 때 대학교수회의 동의를 얻도록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다만, 4·19 혁명 이후 사실상의 정치적 무정부상태에서 고등교육기관의 난립, 대학생 수의 급격한 증가와 고등교육의 질적 저하가 나타났지만 정부는 이 문제에 방임적인 태도를 취했어요.
그러다가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정부가 교육에 대한 임시 특례법을 제정하면서 본격적으로 대학정비정책을 실시했습니다. 한국 고등교육이 획기적인 전환기에 들어선 것이죠. 군사정권은 교육공무원법을 바꿔 교수회의 동의 절차 없이 대통령이 총장을 임명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임명제는 이후 1987년 6·29 민주화 선언 이전까지 30여 년간 지속됐어요. 이러한 중앙집권적 고등교육정책은 한국 대학의 질적 개선에 기여한 부분도 있지만, 정상적인 발전에 지장을 초래했습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엔 대학들이 총장 직선을 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육공무원법이 바뀌기 이전부터 이미 전국적인 민주화 바람을 타고 대학들은 교수 직선제를 시행했죠. 1991년이 돼서야 교육공무원법을 개정하면서 대학총장이 직선으로 선출되도록 제도적인 보장이 이뤄졌어요. 국립대학은 거의 대부분이 직선제를 선택했고, 사립대학들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립대학은 이사회가 있지만 당시엔 직선으로 많이 돌아섰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96년엔 국립대, 사립대를 통틀어 교수 직선제 채택 비율이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대학가에서 파벌 싸움, 줄서기 등 직선제에 따른 문제들이 나오면서,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임명제나 간선제로 돌아서기 시작했어요. 물론 여전히 많은 국·공립대학들이 직선제를 유지했지만, 직원들과 학생들도 투표권을 주장하면서 학내 갈등을 겪은 대학들이 상당수였죠. 결국 2008년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직선제에 강력한 제동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총장 선출 방식을 대학평가에 반영하고, 추천위원회 중심의 간선제로 총장을 뽑도록 유도하면서요.”

 

- 총장 선출제도가 대학마다 다양한데 이를 유형화해본다면

“현재 대학들은 각 대학마다의 실정에 맞게 총장 선출제도를 운영하고 있죠. 다양한 모델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형별로 분류를 해본다면, 일단 가장 큰 두 축은 ‘임명제’와 직선제‘입니다. 정부(국립대) 또는 법인이사회(사립대)가 독단적으로 총장을 임명하는 것이 임명제고, 실질적인 총장 선임권이 대학 구성원들에게 있는 경우가 직선제입니다. 이것도 구체적으로 세분화할 수 있어요. 우선 임명제는 완전임명제, 상향식 절충제, 하향식 절충제 등으로 구분할 수 있지요. 밑에서 의견을 수렴해서 총장추천위원회에 올리고, 이를 이사회에 올려서 임명하는 것이 상향식 절충제입니다. 반대로 이사회에서 몇 명의 후보자들을 골라 총장추천위원회에 내려 보내고, 위원회나 또는 대학 구성원들의 가부를 물은 후 이사회가 최종적으로 뽑는 것이 하향식 절충제입니다.
직선제의 경우 각계 구성원들이 총장 선출에 어떻게 참여하는가에 따라 교황 선출방식, 후보 등록방식, 교수와 직원의 별도 선출, 총장 예비선출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임명제와 직선제를 통합한 절충형도 있어요. 이처럼 총장 선출과 관련된 방법은 정부, 학교법인, 교수, 학생, 직원 등 대학관련 구성원들이 어떻게 참여하고 실권을 행사하는가에 따라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 사진 | 장강빈 기자 shining@

 

- 현재의 한국 대학총장 선출제도가 가진 문제점은 무엇인가

“국립대학은 정부가, 사립대학은 재단 이사장이 대학경영의 합리화, 경제적 효율성을 이유로 대학 운영에 자꾸 간섭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교수, 직원, 학생 등의 실질적 대학 구성원들은 대학의 자치와 학문의 자유를 주장하죠. 이것이 상충되면서 대립이 생깁니다. 저는 정부나 재단 이사가 재정지원은 해도, 총장 선출을 비롯해 전반적인 대학 경영에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특히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구조개혁평가를 수단으로 대학을 압박하다보니 대학들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문제는 직선제를 실시해도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 또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직원들이나 학생들은 투표권을 더 달라고 계속 요구하기 때문이죠. 이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나가느냐가 문제입니다. 정부는 대학을 믿고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중요하고, 대학 내에선 총장 선출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서로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합리적인 의사 반영비율 조정과정이 이뤄져야합니다.”

 

- 올해 이화여대에선 사립대학임에도 직선제를 채택했는데

“사실 이화여대는 직선제로 갈 수밖에 없는 특수한 배경이 있었다고 봅니다. 최순실 게이트라는 사회적 맥락이 있었잖아요. 그렇지만 다음 총장을 뽑을 때도 직선을 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총장을 선출해온 방식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 이전의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죠. 직선제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닐뿐더러, 사립대학은 대체로 간선제를 채택하고 있거든요.”

 

- 참고할만한 해외 대학의 총장 선출제도가 있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독일의 모델에 주목합니다. 사실 독일의 대학은 16개 연방주 또는 시가 독자적 규정을 가지고 있어 일률적으로 설명하기엔 쉽진 않습니다. 그러나 전체 독일의 고등교육정책은 대학기준법(HRG)에서 규정하고 있고, 각 주는 대학기준법에 의거해 별도의 규정을 운영하고 있어서 이를 바탕으로 살펴볼 수 있지요. 독일은 정부에서 재정지원을 해주지만, 대학의 학사운영과 경영에 간섭하지 않아요. 총장 선출에도 관여하지 않습니다. 독일 대학에는 교수, 연구직원, 일반직원, 학생 등이 참여하는 ‘중앙대의기구’가 있어요. 중요한 대학 의사결정 기구죠. 여기서 총장선출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후보자를 모집해서 주정부에 통보해요. 그러면 주정부와 대학의 총장선출준비위원회가 공동으로 서류심사를 진행해서 적격 후보자를 선출해 중앙대의기구에 내려보냅니다. 그러면 중앙대의기구에서 투표를 거쳐 총장을 선출하는 것이죠. 정부는 후보자의 서류심사에 공동 관여를 하지만, 최종적인 의사결정은 학교에 전적으로 맡깁니다. 기본적으로 대학의 자율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죠.
미국은 주로 위원회를 구성해서 선출합니다. 학생도 위원회에 참여하지만, 특히 이사회의 입김이 세게 작용해요. 컨설턴트 회사에 많이 의뢰한다는 점도 특징으로 들 수 있습니다. 대학 경영에 전문화된 컨설턴트가 있어서, 이들이 위원회에 참여해 총장 선출과정에 많은 영향을 미치죠.
영국은 케임브리지 대학이 직선을 하더군요. 동문들과 현직 교직원들도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처럼 총장 선출에 직접 참여합니다. 재미있는 것이 영국은 총장이 상징적 존재라는 점이에요. 대학 경영의 실무를 맡는 것은 부총장인데, 이를 직선제로 선출하는 곳이 케임브리지 대학입니다.”

 

- 고려대가 시행 중인 ‘총장추천위원회’ 중심의 선출제도에 어떻게 생각하나

“고려대는 총장선출 방법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발전시켜왔어요. 저는 사립대학 중 가장 바람직한 제도로 총장을 뽑고 있다고 봐요. 해외의 대학들은 특히 총장 후보자의 자격, 검증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해놓습니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이 부분이 취약한데, 고려대는 이 부분을 잘 마련해놓고 있더군요. 과거 고려대 경영대학의 이필상 교수가 총장후보로 당선되고도 논문표절로 낙마한 이후, 검증 과정을 강화시켰어요. 마치 정부에서 장관 후보자 청문회 하듯이 선출 규정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 향후 한국의 대학총장 선출제도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사실 교수들도 직선제가 완벽한 제도가 아님을 인식하고 있어요. 그러나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직선이던지, 간선이던지 각 대학이 실정에 맞는 총장선출 규정을 누적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해나가야 합니다. 해외 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최상의 모델이 있다고 해도, 이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니라 개별 대학의 여건에 맞게 각 대학이 찾아나갈 필요가 있어요. 대학은 자체적으로 문제를 개선하면서 좋은 방향을 모색하고, 정부도 이를 존중해야하죠.”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