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 제269조(낙태) 제1항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270조(의사등의 낙태, 부동의 낙태) 제1항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낙태죄를 폐지하라!” 11월 9일,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과 관계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사진 | 구자원 기자 9esource

 

1953년 ‘낙태죄’가 형법으로 제정된 후 우리나라는 인공임신중절을 법에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를 기점으로 정부는 적극적으로 불임 시술과 낙태를 지원하는 등 출산억제정책을 시행했다. 수십 년 뒤 저출산이 문제되자 정책의 방향을 달리해 낙태 처벌이 강화되고 출산이 장려되기 시작했다. 그 역사 속에서 국가는 여성의 몸을 국가경제를 보전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2016년 보건복지부가 낙태시술 의사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입법예고를 고지한 이후 ‘문제는 낙태죄 자체’라며 낙태죄 폐지 논의가 시작됐다.

지난 9월 30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도입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게시됐다. 30일간 총 23만 5372개의 서명이 모였고 11월 26일 청와대가 공식 답변을 내놓으면서 낙태죄 존치 혹은 폐지논의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구정책에 따라 관리된 여성의 몸
국가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경제개발을 위한 인구 억제’ 정책을 펼쳤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셋부터는 부끄럽습니다’ 등의 가족계획사업 시대 구호는 산아제한이 국가경제발전에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1960년대에 이뤄진 가족계획정책의 일환으로 ‘낙태수술버스’가 운영되기도 했고, 불임수술을 하면 아파트 우선권 등의 혜택을 줬다.

2000년대 이후 인구정책은 출산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급격히 변화했다. ‘혼자는 외로워요’ 등의 구호가 사용됐고 난임 부부를 위한 체외수정시술이 국가의 지원 아래 이뤄졌다. 하지만 국가가 여성의 출산을 여전히 국익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비판은 계속해서 제기됐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 나영 활동가는 “가족계획정책 당시 국가는 여성에 의한 낙태는 처벌하면서도 인구조절을 위해 불임시술과 낙태를 지원하는 정책을 펼쳤다”며 “상황에 따라 저출생 시대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이기적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여성에게만 책임을 씌우는 모순적인 태도”라고 지적했다.

 

‘낙태할 수 있는’ 태아 규정, 가치 부여 논란도
‘낙태죄’가 형법으로 제정된 후 20년이 지난 1973년에는 전면 금지됐던 낙태의 제한적 허용 사유를 추가한 ‘모자보건법’이 제정됐다.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윤리적, 의학적, 우생학적인 낙태 허용 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강간과 준강간에 의한 임신 △혈족 간 임신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는 임신 △본인 또는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태아에게 치료 불가능하고도 심한 육체적·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가능성이 있는 경우 24주 이내의 태아에 한해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윤리적, 의학적 사유에 따른 낙태 허용은 여성의 권리를 신장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우생학적 사유의 경우 결국 국가가 배아의 질병 유무 혹은 사회적 위치에 따라 낙태를 허용함으로써, 생명의 가치를 선별하는 조항이라 비판받고 있다. 윤진숙(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해당 조항에 대해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있는 질환이나 장애는 드문 경우”라면서도 “태어나야만 하거나 태어나지 않아도 되는 태아를 규정하는 것은 오히려 장애나 질환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라고 말했다.

국가적으로 활발히 지원되는 난임부부 시술에서도 마찬가지로 배아 단계에서 미숙아 및 장애아가 판별되고 배제된다. 다태아 임신이 이뤄질 경우 선택적 유산이 가능하기도 하다.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이유림 연구위원은 “선택적 유산은 결국 본질적으로 낙태와 같은 것인데 국가는 이를 제재할 마음이 없다”며 “선택적 유산에 이중 잣대를 대고, 여성의 건강에 대한 고려 없이 시술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낙태죄 합헌 판결에서 검은 시위까지
2012년 8월 23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를 규정하고 있는 형법 제270조 1항에 대해 합헌과 위헌 의견이 4대 4로 갈리면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위헌 측은 독자적 생존능력을 기준으로 임신 24주까지는 낙태를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임부의 생명이나 건강에 위해를 끼칠 염려가 없는 임신 초기까지 낙태를 금하는 것은 침해의 최소성의 원칙을 위배한다는 점에서다. 합헌 측은 생명권의 보호 대상이 되는 시기를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한 순간부터로 규정했다.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사익으로 보고, 공익인 태아의 생명권 보호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봤다.

2016년 9월 22일, 보건복지부는 불법 인공임신중절을 시술하는 의사를 가중 처벌하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산부인과 의사들은 전면 시술중단을 내걸며 개정안 철회를 요구했고 입법안은 무효화됐다. 이후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가 연달아 열리며 안전하게 낙태할 권리와 낙태죄 폐지에의 목소리가 커졌다.

올해 9월 28일엔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공동행동)’이 발족됐다. 공동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나영 활동가는 “‘공동행동’은 임신과 출산에 대해 여성과 사회가 함께 결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모두를 위한 논의라는 뜻”이라 밝히며 “앞으로도 기자회견과 집회를 꾸준히 개최하고 연구원들과 자문단을 꾸려 입법논의에 참여할 것”이라 말했다.

 

헌재와 국회, ‘문제의식 커졌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규정의 위헌 여부를 재심리하고 있다. 헌법재판관의 과반이 낙태죄에 있어 여성의 자기결정권 존중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임명된 이진성 헌재소장은 후보자 시절 청문회에서 ‘초기낙태의 제한적 허용이 필요하다’고 밝혀 헌재의 결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행 낙태죄의 위헌 여부는 자유권과 평등권에 중점을 두고 논의된다. 윤진숙 교수는 “낙태의 전면 금지는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지만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가치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며 “그러나 현행 낙태죄는 낙태에 따른 남성의 책임과 처벌을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평등권에 위배되므로 위헌적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 역시 낙태죄 개정을 논의하고 있다. 국민적 관심이 커지고 찬반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국회 차원에서도 국회 내에서 현행법이 놓치는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졌다는 평가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출산과 양육에 대한 국가와 남성의 책임을 강화하며, 일정한 사유와 절차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은 허용하되 그 외의 인공임신중절은 금지하는 두 가지 기조 아래 낙태죄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며 “합리적 논의와 결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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