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촛불을 든 시민들은 잃어버린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광장에 나섰다. 참여가 민주주의의 근간임을 다시금 일깨우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학생사회의 광장’엔 냉기가 서렸다. 투표율은 전체 유권자 수의 과반을 넘기지 못하기 일쑤다. ‘어떤 학생회가 선출될까?’보다는 ‘학생회가 들어설 수 있을까?’가 관건이 돼버렸다. 참여 없는 학생사회는 활력을 잃었다.

 

투표 않는 학생사회, 이유는?

  32.93%, 36.45%, 33.34%, 37.7%, 37.43%. 서울권 주요 대학 2018학년도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이다. 전체 유권자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학생들만이 투표권을 행사했다. 예정된 선거기간동안 유효투표율을 채우지 못해 연장투표를 하는 학교도 적지 않다. 높은 관심 속에서 선의의 경쟁이 벌어지는 역동적인 선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투표하지 않는 학생들의 이유는 제각각이다. ∆학생회에 대한 불신 ∆네거티브 선거전 ∆불만족스러운 공약 ∆정치적 효능감의 부재 ∆정치적 무관심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다. 한양대 17학번 이 모씨는 “총학생회 선거의 경우 총학생회를 구성하는 사람들끼리 자리를 ‘돌려막기’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버린 총학생회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북대 17학번인 제갈 모씨는 “일명 스폰비 문제와 비선실세 의혹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달았던 저번 총학생회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는 도저히 투표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경북대에서는 49대 ‘리본’ 총학생회의 스폰비 사용처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고, 졸업생의 배후 업무지시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리본’ 총학은 사퇴를 선언했다. 이후 보궐선거를 통해 선출된 50대 학생회 ‘가람’도 공문서 위조, 공금횡령, 비민주적 학생회 활동 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고 이후 총학생회장의 직무가 정지된 상태다.

  부족한 공약과 선본끼리의 ‘헐뜯기’식 경쟁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문과대 17학번인 이 모씨는 “총학생회 선거에서 나오는 공약들이 매번 진부하게 반복되는 것 같다”며 “유권자에게 확실히 각인되는 공약들이 나오지 않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문과대 17학번 김 모씨는 “이번 문과대 선거에서 나온 공약들에 부족한 면이 많아 아쉬웠다”며 “공약 경쟁보다는 서로 깎아내리기 바쁜 모습에 실망해 투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작년 11월 ‘학생회는 사과상자에 담긴 돈으로 빕스 가는 곳이 아닙니다’ 대자보를 시작으로 문과대 선본을 둘러싼 설전이 벌어졌다. 이틀간 7개의 대자보가 게시되며 정대후문 게시판을 뒤덮었고, 온라인에서도 계속해서 논쟁이 벌어졌다. 공약 외 사안에 대한 연속된 갈등으로 유권자들의 정치적 피로감이 증폭됐다는 지적이다.

  학생회의 운영 방향에 대한 회의감도 투표하지 않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문과대 15학번인 신 모씨는 “회칙에 매몰된 총학생회로 인해 인권담론이 식어버렸다”며 “담론을 형성해야 할 대표자들이 회칙 개정과 해석에 대한 논의에만 치우친 것 같아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낮은 투표율의 원인으로는 정치적 효능감의 부재나 정치적 무관심 등이 제기된다. 지은주(본교·정치외교학) 강사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참여로 인해 무언가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 정치적 효능감은 물론 투표율도 낮아질 수 있다”며 “구성원들이 총학생회보다 다른 이슈에 더 관심을 가질 경우 정치적 무관심이 나타나게 된다”고 분석했다. 전혜지(문과대 국문16) 씨는 “대부분의 새터, 오리엔테이션, 축제 등의 학생자치활동이 길어봤자 2학년 학생들까지에만 해당되는 행사가 돼버렸다”며 “이후에는 본인에게 관련 없는 일들이 돼 버리는 현실이 학생사회에의 참여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밝혔다. 정혜은(문과대 국문17) 씨는 "대학생들이 느끼는 현실의 부담감이 커진 것 같다“며 "취직 문제가 당면한 상태에서 학생회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낮은 투표율, 우려되는 대표성

  학생회 선거철마다 관건이 되는 것은 후보가 아니라 투표율이다. 투표율은 유권자들이 선거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참여하느냐를 보여주는 잣대다. 일반적으로 투표율이 높을수록 더 다양한 계층, 연령, 이념 등의 의사가 반영돼 선거의 대표성을 담보할 수 있게 된다. 지은주 강사는 “높은 투표율이 전제됐을 경우 과반 득표로 당선된 후보는 높은 정치적 대표성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생사회의 투표율은 굉장히 저조하다. 최근 4년간 서울총학생회(서울총학) 투표율은 50%를 넘지 못했다. 타 학교 총학생회 투표율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각 학교의 유효투표율이나 당선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선거가 무산돼서다. 연세대의 경우 재투표를 실시했으나, 투표율이 32.93%에 그쳐 유효투표율 33.33%를 넘지 못했다. 서울시립대와 한양대도 투표율이 각각 37.7%와 36.45%로 유효투표율을 넘지 못했다. 유효투표율을 넘긴 학교도 연장투표를 진행해서야 선거가 성립됐다. 서강대는 예정된 선거기간의 투표율이 유효투표율에 미치지 않자 연장투표를 실시했고 이후 33.34%의 투표율로 유효투표율 33.33%를 가까스로 넘겼다. 중앙대와 숙명여대도 연장투표를 시행해 각각 55.82%와 53.38%의 투표율로 유효투표율 50%를 충족했다.

  낮은 투표율은 대표성에 대한 지적으로 이어진다. 현재의 저조한 투표율을 고려하면 전체 유권자 과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찬성표로 당선된 후보의 대표성을 담보할 수 없다. 민경현(문과대 한국사11) 씨는 “낮은 투표율로 인한 대표성 논란은 항상 제기돼 오던 고질병”이라며 “대외적 입장이 필요한 시국선언 등 대표성이 담보돼야 하는 사안에선 대표성 문제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국리서치 정한울 여론연구 전문위원은 “투표율이 낮아지면 특정집단의 의사만이 선거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당선된 후보의 대표성과 정당성은 투표율의 고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유효투표율의 딜레마

  2017학년도 하반기 임시전체학생대표자회의(의장=이승준, 임시전학대회)에서 총학생회칙 전부개정안이 가결되며 ‘정회원의 33.33%’가 총학생회 선거 유효투표율로 새롭게 설정됐다. 하지만 역대 본교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이 최근 4년간 33.33%는 꾸준히 넘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조항이 다소 느슨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효투표율은 선거가 담보하는 최소한의 대표성을 의미하는데, 이 기준이 낮아지면 당선자의 대표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을 수 있어서다. 이에 이승준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유효투표율이 50%냐 33.33%냐는 투표에 임하는 태도에도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며 “33.33%의 투표율만 넘으면 된다는 최소 조건은 더 높은 투표율을 위한 유인이 되진 못한다”고 밝혔다. 정한울 전문위원은 “낮은 투표율 기준을 설정하게 되면 그만큼 조직 구성원들의 의사결정 참여나 지지를 이끌어 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유효투표율이 높아 투표가 성립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크다. 유효투표율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대한 부담이 수반돼서다. 강민현 전 서울총학 자치교류국장은 “이번 개정은 투표율이 낮은 학생사회의 현실을 반영해 학생회를 탄생시킬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는 데 의의가 있다”며 “지나치게 높은 유효투표율을 설정하는 것보다는 점진적으로 투표율을 늘려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한울 전문위원은 “유효투표율 설정과정은 학생회의 성립 가능 여부와 직결되는 문제”라며 “대표성과 학생회의 유지라는 두 이익을 적절히 타협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글 | 박형규 기자 twinkle@
사진 | 고대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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