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안전 위협하는 대학가 불법 건축물
학생들 안전 위협하는 대학가 불법 건축물
  • 박규리 기자
  • 승인 2018.01.22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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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희대 인근의 원룸촌, 즐비한 옥탑방 중 일부는 보일러, 물탱크 시설을 불법 개조한 건축물이다.  사진 | 박규리 기자 curious@

12월 21일 29명의 사망자를 낸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희생자에 대한 안타까움은 피해를 키운 불법요소를 향한 분노로 이어졌다. 소방용수 보관용 옥탑에서 발견된 주거 흔적, 철제 선반으로 막혀 있던 비상대피로 등 안일하게 방치된 불법요소들이 가슴 아픈 참사로 이어졌다. 극심한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이러한 불법건축물들이 대학가 곳곳에도 도사리고 있었다.

 

방쪼개기’, 화재 시 피해 키워

건축물을 대수선하려면 건축법에 따른 신고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지만 대학가에선 임대수익을 늘리기 위한 건축물 불법개조가 빈번하다. 일명 ‘방쪼개기’로 불리는 가구분할은 대표적인 불법개조 사례다. 경희대 인근 한 다가구용 단독주택은 건축물대장상 3층에 1가구만 기재돼 있으나, 칸막이를 설치해 4개의 방으로 사용되고 있다. D건설사 과장 이 모씨는 “사용승인을 받을 땐 도면대로 시공하고 이후 추가 칸막이를 설치하는 식의 불법개조 건물이 대학가에 만연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불법개조된 건물은 화재에 취약하다. 불이 건물 전체로 번지지 않도록 설계된 방화구획을 무분별하게 개조해서다. 방쪼개기를 위해 세운 경계벽의 마감재료도 문제다. <건축법> 제52조에 따라 공동주거용 주택은 방화에 지장이 없는 내부 마감재료를 사용해야 하지만, 별도의 관리·감독이 없이 이뤄지는 불법개조의 경우 어떤 재료를 사용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신현준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연구소 선임위원은 “불법건축물엔 ‘샌드위치 판넬’ 등 다른 자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워 시공시간을 줄일 수 있는 재료가 많이 사용된다”며 “이런 재질은 불꽃이 쉽게 확산되며 유해가스가 많이 나와 화재 시 질식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사고 시 피난로 역할을 하는 복도를 축소해 안전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보통 한정된 공간에 많은 개수의 방을 넣으려다 보니 양쪽으로 방이 있는 중복도 형태로 개조된다. 중복도로 한 층을 증축한 건물에 거주하는 조현익(남·26) 씨는 “큰 택배라도 와있으면 문을 열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복도 폭이 좁다”고 말했다. 주영규(공과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교수는 “중복도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때 옷깃을 스치지 않을 정도의 폭이어야 한다”며 “무리한 방쪼개기 건물의 복도 폭은 매우 좁아 대피 시 큰 혼란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소방시설법 벗어난 무단용도변경

무단용도변경 역시 대학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불법건축 사례다. 무단용도변경이란 건축물을 건축물대장에 등록된 용도와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고시원으로 등록돼 있지만 실제론 원룸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고시원이나 독서실은 ‘취미·편의 생활 관련 시설’인 제2종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돼 개별취사시설 설치가 금지돼 있다. 그러나 인덕션 등의 전열기구와 싱크대를 불법으로 설치해 원룸으로 분양하는 경우가 흔하다.

▲ 그래픽 | 이혜원 기자 rsvls@

무단용도변경 건축물은 변경된 용도에 맞는 소방시설을 갖추지 않아 안전문제가 생길 수 있다. <소방시설법>에선 2017년 2월 4일까지 모든 주택에 소화기와 단독 경보형 화재감지기를 필수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고시원 등 근린생활시설로 등록된 경우 이런 소방시설 설치 의무에서 벗어난다. 좁은 공간에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고시원에 불법 취사시설까지 있지만, 소방시설 설치를 강제할 수단이 없어 더욱 위험한 상황에 놓인 셈이다. 성북소방서 점검팀 관계자는 “건축물 자체가 불법인 상태에선 소방시설 설치를 강제할 수 없다”며 “적발한 경우 기관신고를 통해 담당구청으로 넘기며, 불법 사유가 시정된 이후에야 조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탱크나 보일러 보관용으로 마련된 옥탑구조물을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것도 <소방시설법> 방화시설의 유지관리 규정에 어긋난다. 주영규 교수는 “화재 층수보다 위층에 거주할 경우 옥상으로 빠르게 대피해야 하는데 불법 주거공간이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시정 안 되는 불법요소, 학생들의 대처법은

서울시 각 구청은 민원이 접수됐을 경우에 한해 불법건축물에 대한 현장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모든 건물을 일일이 점검하기엔 물리적 한계가 있어서다. 1년에 4차례 구청 간 교차점검도 진행하지만 사용승인이 난 지 6개월, 2년이 된 건축물로 점검대상이 한정돼 상당수의 건물이 제외된다. 그 중 적발된 불법 건축물의 소유자는 <건축법> 제80조에 따라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을 시 이행강제금을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이행강제금의 액수가 높지 않아 효력이 미미한 실정이다. 성북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방쪼개기와 같은 불법개조의 경우 이행강제금 액수가 높지는 않다”며 “불법 증·개축을 통해 얻는 추가수익이 이행강제금보다 높아 시정명령을 수행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현행법이 완벽한 규제수단이 되지 못하면서 대학 인근 지역은 불법건축물에 노출되고 있다. 특히 학생들이 학교 커뮤니티를 통해 임대인과 직거래하는 경우가 많아 세부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채 불법건축물을 계약하기도 한다. 올해 고파스 ‘복덕방’ 코너에 올라온 460여 건의 매물 중엔 싼값으로 거래되는 무허가 건물도 다수 있었다. 윤명석(공과대 전기전자전파12) 씨는 “2년 전 보증금 100만 원, 월세 30만 원이라는 싼 가격에 올라온 것을 보고 바로 계약했다”며 “무허가 건물인 것은 들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안주원 공인중개사는 “중개를 통해 계약할 경우엔 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을 확인해 불법요소를 미리 공지해야 하기에 비교적 안전하다”고 말했다. 건축물대장과 등기부등본은 공인중개사를 거치지 않더라도 직접 확인 가능하다. 각각 정부민원포털 '민원24'와 대법원 인터넷 등기소를 통해 발급받을 수 있다. 조현준 민달팽이유니온 사무처장은 “설치된 시설물이나 방 호수에 이상이 있는 경우 꼭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불법건축물 근절을 위해 정부 차원의 주거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학생들이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불법건축물을 선택하도록 내몰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재혁(남·24) 씨는 “판넬로 덧댄 옥탑방을 보고 불법건축물일 거라 짐작은 했다”며 “안전이 걱정됐지만, 시세보다 많이 저렴해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2일 더불어민주당 김인제 서울시 의원이 ‘서울시 청년주거 기본 조례안’을 발의했다. 조례 안에는 청년층 전·월세 보증금 및 임대료 지원, 주거복지 확충 등의 사업 추진계획이 포함돼 있다. 조현준 민달팽이 유니온 사무처장은 “이전까지는 아파트 등의 주택 공급정책 위주로 제시됐다”며 “앞으론 대학가 주변의 주택을 점검할 수 있는 관리 차원의 주거복지정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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