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적없는 창신동 쪽방촌 어느 집 앞에 눈이 얼어 빙판길이 돼 버렸다.
▲ 창신동에서 15년 째 거주하는 이임순 (여·77)씨 방에 생필품들이 빼곡히 쌓여있다.
▲ 여섯 가구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세면장. 동파방지를 위해 수도꼭지가 조금 열려있다.
▲ 등대교회에선 창신동 독거노인을 위한 샤워시설을 마련했다.

  가난과 외로움이 익숙한 도시의 독거노인들은 오늘도 거리를 떠돌다 한 평짜리 단칸방에서 조촐한 끼니를 때운다. 명절이 다가오면 유독 더 쓸쓸한 이들에게 전 부치는 고소한 기름 냄새는 먼 이야기다. 설 명절 연휴, 외부인의 발걸음이 끊겨버린 허름한 동네를 찾았다.

  오래된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꼬여 하늘을 감싼 서울 창신동의 쪽방촌, 골목마다 한 평짜리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약 300명의 주민이 살고 있지만 버려진 동네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적막했다. 양쪽으로 뻗은 상가 건물 탓에 해가 지기도 전에 어둑해진 골목, 한 구멍가게에 들어섰다. “이곳 사람들은 기자 싫어해요.” 난로 앞에서 졸던 주인이 손을 저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렵게 찾은 이웃들은 하나같이 불쾌한 듯 인터뷰를 거절했다.

  홀로 맞선 차가운 겨울

  골목을 따라 좀 더 깊숙이 들어가자 ‘출입금지’라고 적힌 노란 띠로 감싸진 허름한 건물이 나왔다. 인기척이 느껴지는 노란 대문 사이로 사람이 사는 듯한 6개의 또 다른 작은 방문이 보였다. 그곳에서 반기호(남·58) 씨를 만날 수 있었다. 3.5㎡(약 1평) 남짓 되는 공간에 몸을 구겨 넣다시피 밀어 넣자, 탁한 공기에 숨이 턱 막혔다. 반 씨는 급히 양말 한 짝을 집어 오른쪽 발을 숨겼다. “제대 후 경운기 사고로 신경마비가 온 뒤로 발이 계속 꺾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여기 발목 밑으로는 아무 감각이 없어요.” 장애 4급 판정을 받은 반 씨는 현재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정부로부터 매달 70만 원 정도를 지원을 받고 있다. 3번의 수술을 받았지만, 완치는 불가능하다.

  한동안 영양실조를 앓았다는 반 씨의 체구는 앙상했다. 사고 후 알코올중독에 빠져 살았기 때문이다. 가족과도 거리를 두게 됐다. “밥도 안 먹고 술만 먹었어요. 상실감으로 입에 댄 술 때문에 삶이 힘들어졌죠. 병원비로 가족들 괴롭히고, 일도 결혼도 못 하게 됐어요.” 최근 알코올성 간 질환으로 병원 치료를 받게 되면서 술을 완전히 끊었다. 직장을 구하고 일을 시작하려고도 했지만, 장애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반 씨는 방에서 TV를 보거나 산책을 나가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

  반 씨의 16만 원짜리 월세방은 TV와 냉장고, 가스레인지, 옷가지와 각종 생활용품 등으로 꽉 들어찼다. 냄비 뚜껑 사이로는 쉰 김치찌개 냄새가 새 나왔다. 한 사람이 발 뻗고 눕기에도 턱없이 비좁아 보이는 공간인데도 보온 판넬은 바닥의 반절만 깔렸다. 나머지 부분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TV 앞에 놓인 모 대학교 약대 봉사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이 방 안의 유일한 추억거리다. 반 씨는 이곳에서 14년째 홀로 생활하고 있다.

  겨울엔 배수관이 얼어 화장실 사용도 어렵다. “난방 시스템이 없어 겨울엔 찬 물 밖에 안 나와요. 화장실도 전철역으로 다닐 때가 많아요.” 건물 2층 공용화장실 앞에 붙은 ‘날씨 때문에 하수관이 얼어 물이 내려가지 안아요. 당분간 일층이나 안이면 나가서 볼일을 보시길 부탁드립니다.’라는 문구는 쪽방촌 주민들의 고달픈 겨울을 가늠케 한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이웃들

  이튿날 다시 찾은 창신동 쪽방 골목엔 여전히 찬바람이 불었다. 점심 무렵 반기호 씨를 다시 만났다. 반가운 듯 그의 표정이 어제보다 한층 밝았다. TV 앞 폴라로이드 사진 옆엔 어느새 기자의 명함도 함께 놓여있었다. 복도에선 옆방의 A 씨가 양동이에 끓인 물을 받아 당면을 삶고 있었다. “이 주변 사람들은 나가서 밥 사 먹을 돈이 없어 주로 이런 식으로 끼니를 해결해요.”

  근처에서 만나게 된 이웃 박우수(남·84) 씨는 통로가 좁고 천장이 낮은 허름한 상가 구석 단칸방에 살고 있다. 복도를 두고 비좁게 붙어있는 5개의 쪽방 중 하나다. 부산에서 올라와 50년째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박우수 씨에게는 아들 둘이 있지만 몇 년 전 그를 찾아온 뒤로 연락이 끊겼다. 귀가 잘 안 들리는 박 씨를 위해 큰소리로 질문을 하니 옆방까지 들릴 것 같았다. “집사람은 일찍 죽었어요. 아들도 이젠 안 찾아와요. 올 명절에도 소식이 없네요.”

  글을 읽지 못하는 박 씨는 평소 방에서 TV를 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방 안엔 담배 연기가 가득했고 밥솥, 전기 포트, TV 전선 등이 어지럽게 꽂혀 있다. 요즘 건강이 가장 큰 고민이라는 박우수 씨는 감기만 걸려도 큰일이라고 했다. “몸이 약하니까, 조금만 아파도 큰일 나요. 감기 안 걸리게 해달라고 매일 밤 기도해요.”

  해가 져 어두워진 쪽방촌을 빠져나와 종로3가 시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산한 거리를 메운 건 홀로 나온 노인들이었다. 느릿한 걸음으로 종로 시민공원을 거닐며 참새를 쫓던 김 모(남·74) 씨는 검은 봉지에 담긴 막걸리를 꺼내 마시기 시작했다. “난 12평짜리 임대아파트 살아. 고물상에서 다리미, 선풍기, 밥통 같은걸 건져와 고쳐 쓰고 있어. 내가 정비공 출신이거든. 임대아파트라도 있어서 천만 다행이지. 그 전엔 한 평짜리 고시원에 살았으니까.”

  김 씨가 오늘 하루 먹은 것은 김칫국에 막걸리 몇 잔이 전부다. 김 씨는 명절이라고 찾아간 동생의 가족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털어놓으며 눈물을 훔쳤다. “계속 사업에 실패하다보니 친척들이랑 떨어졌지. 수년째 혼자 보내는 일상이 명절만 되면 유독 더 외롭게 느껴져.” 해가 기울어 한층 추워진 날씨지만 김 씨의 굳은살 박인 손은 끄떡없어 보였다.

  몸을 녹이기 위해 들어선 인근 패스트푸드점도 노인들로 가득했다. 햄버거 하나와 커피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홀로 시간을 때우는 노인도 있었다. 한 모(남·71) 씨는 명절에도 갈 곳 없는 설움을 토로했다. “여기 2000원짜리 해장국 파는 집이 있는데 오늘 설이라고 문을 닫았네. 혼자 돌아다니다가 그냥 들어왔어. 명절이라지만 우리는 갈 곳 없는 신세구만.” 자리를 옮기려 하자 오랜만에 말동무를 만난 듯했던 한 씨는 못내 아쉬운 듯 잘 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겨울을 녹이는 아름다운 손길

  설 연휴의 마지막 날, 한파가 물러가고 창신동 쪽방촌엔 제법 따뜻한 햇볕이 들었다. 주민들과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한다는 등대교회 김양옥 목사를 만났다. 창신동 쪽방촌 주민 330여 명 중 120명이 이곳의 교인이다. “저희는 이곳 주민들을 위해 일주일에 두 번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의료봉사와 미용 봉사를 하고 있어요. 생일 파티를 열어드리거나 필요한 생필품을 제공하고 구직활동도 도와드리고 있죠.”

  11시 오전 예배를 위해 50여 명의 주민들이 교회 안을 가득 채웠다. 예배가 끝날 무렵 김양옥 목사의 가벼운 농담에 웃음꽃이 피기도 했다. 전날 만난 박우수 씨의 표정도 환하게 폈다. “이 동네를 비추는 등대 같은 교회라는 의미에서 등대교회입니다.”

  교회에는 노숙인을 위한 쉼터도 마련돼 있다. 김성재 전도사가 그들이 사용하는 침실과 샤워실을 소개했다. “현재는 남성분들만 지원해드리고 있는데, 곧 1층도 여성 쉼터로 활용할 계획이에요.”

  “파이팅!” 다시금 나선 쪽방촌 골목에서 학생 무리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중엔 본교 로고가 그러진 점퍼를 입은 학생도 보였다. 약대 연합 동아리 ‘늘픔’은 의약품 제공 봉사 활동을 위해 한 달에 두 번 이곳에 모인다. 봉사 팀을 총괄하고 있는 김소현(이화여대 약학14) 씨는 창신동을 찾은지 1년 반 째다.. “쪽방촌에 사시는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약품을 나눠드리고 있어요. 저희를 기다리시는 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찾아왔어요.” ‘늘픔’은 늘픔약사회에서 약품을 지원받아 이곳 주민들의 건강관리를 지속적으로 돕고 있다. “저희가 의약품을 드리긴 하지만 당시의 증상을 완화하는 것 밖에는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논의도 하고 고민도 많이 하지만, 이분들의 근본적인 문제나 질병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죠.”

  본교에 다니는 이대성(약학대 약학14) 씨도 ‘늘픔’ 봉사자다. 방문 앞에서 어르신과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며 차분한 목소리로 약 복용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이분들에게 가장 힘든 시기는 바로 겨울이에요. 동파로 화장실 사용을 못 하시거나 씻지 못하시는 게 제일 마음에 걸려요. 방금 만나 뵌 아버님 같은 경우는 빙판길에 미끄러져서 근육이 놀란 상태예요.” 두터운 점퍼의 소매를 걷어 올린 이들의 이마엔 구슬땀이 반짝였다.

 

글 | 유제니 기자 jenerous@

사진 | 류동현 기자 he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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