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선 전통 한복에 현대적 요소를 가미한 한복으로 전 세계인의 호응을 받았다.
▲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단군신화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평화의 땅’을 공연했다.
▲ 무대의상을 만들 때 사신도와 무용총 등에 나타난 고구려 의복을 참조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한국의 전통 문화와 우수한 기술력이 잘 어우러졌다는 평가와 함께 막을 내렸다. 특히 개·폐회식에 등장한 달항아리 모양의 성화대와 다채로운 한복은 전 세계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렸다. 올림픽에서 사용된 한복은 외국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의 관심을 끄는 데도 성공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전통 한복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한복인 듯 한복이 아닌 것 같은 평창올림픽 의상은 모두에게 놀라움과 신선함을 선사했다. 이처럼 한복은 역사 속에서 그래왔듯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인 오늘날 과연 우리의 전통 의복 한복은 국내에서, 나아가 해외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21세기에 발맞춰 변화하는 중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과 시상식에 등장한 한복은 전통 한복이 아니라 현대적 요소를 가미한 새로운 형태의 한복이다. 기존 한복의 미를 살리면서도 창의적으로 디자인한 평창올림픽 의상엔 각각의 특징과 의미가 담겨 있다. 올림픽 개회식에서 가장 이목이 쏠린 선수 입장 시간에 등장하는 피켓 요원은 치마 위 흰색 철사에 반짝거리는 구슬과 비닐을 달아 만든 드레스를 입었다. 이 드레스는 겨울의 눈꽃과 풍성한 한복 치마를 연상시키며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얀 눈꽃을 닮은 디자인은 네 명의 평창올림픽 의상 감독 중 한 명인 금기숙(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가 20여 년 전부터 사용하던 것이다. 금기숙 교수는 “눈꽃 의상은 한국인의 생명력과 에너지를 상징한다”며 “한복 고유의 아름다움인 율동미가 나타날 수 있도록 ‘흔들림’과 ‘떨림’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드레스의 목선 부분은 서양의 네크라인이 아닌 한복의 깃처럼 보이도록 삼각 형태로 겹쳐 만들었다. 머리에 쓴 화관 역시 흔들리는 장식을 추가해 족두리의 떨잠 느낌을 줬다. 놀라운 것은 총 91벌의 드레스가 치마의 형태와 길이, 구슬색 등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각기 다른 땀방울을 엮어 하나 된 열정을 형상화한 것으로, 평창 동계올림픽의 슬로건인 ‘패션, 커넥티드(Passion, Connected)’를 의미한다. ‘패션, 커넥티드’란 모두의 하나 된 열정으로 동계 스포츠에 대한 전 세계인의 공감을 연결한다는 뜻이다.

  개회식의 ‘평화의 땅’ 공연은 단군신화 속 단군과 웅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퍼포먼스다. 공연 의상은 고구려 고분벽화인 사신도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웅녀의 한복은 특별히 고대 의상과 조선시대 활옷을 접목해 새롭게 제작했다. 소매 끝과 목선, 밑단 등에 고대 의상의 특징인 선 장식을 새기고 허리선을 가슴 높이까지 올렸다. 치마를 부풀려 풍성한 아름다움 또한 살렸다. 웅녀와 함께 등장한 무용수들의 의상은 사신도 속 여인의 옷을 그대로 재현했다. 이는 또 다른 평창올림픽 의상 감독인 송자인 디자이너가 제작한 것이다. 송자인 디자이너는 벽화 속 인물이 그대로 튀어 나온듯한 느낌을 더욱 극적으로 주기 위해 치맛단을 비대칭으로 제작했다. 송 디자이너는 “고구려 벽화를 가장 생동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평면적 느낌으로 의상을 구현하고자 했다”며 “고구려 벽화에 사용된 색채의 느낌에서 모티브를 얻어 수묵화처럼 은은하게 퍼지는 원형 패턴을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개회식이 끝난 후에도 시상 요원은 한복을 입고 선수들에게 메달을 수여하는 소중한 순간을 함께했다. 시상 요원의 의상은 설상과 빙상, 남녀로 나뉜 총 4종류의 복장으로, 한국 전통 겨울 의복인 두루마기와 동방, 장신구인 풍차, 토시, 깃 목도리 등을 활용했다. 풍차는 과거 우리 선조들이 쓰던 방한모다. 그 앞과 뒤엔 오화진 작가가 디자인한 서로 다른 모양의 장식공예 작품을 붙이는 등 디테일도 세심하게 신경 썼다. 의복 색상은 태극기의 청색과 홍색을 사용해 한국의 정체성을 표현했으며, 동계올림픽을 상징하는 눈꽃 문양도 넣었다. 디자인적인 측면 외에도 평창의 강추위 속에서 일할 요원들을 위해 인조 모피와 인조 스웨이드의 재질을 사용하는 한편, 겨울 한복에 사용되었던 누비나 패딩 기법을 적극 활용하며 보온성도 챙겼다.

  폐회식에도 ‘한복처럼 보이지만 경쾌한 디자인을 담은 옷’들이 대거 등장했다. 태극기를 운반한 어린이들은 따뜻하면서도 전통미가 있는 두루마기 코트를 입었으며, 대관령 초등학생들은 태극기를 모티브로 한 태극무늬와 건곤감리가 각기 다르게 장식된 옷을 입었다. 금기숙 디자이너는 “폐회식의 주제가 ‘미래의 물결’인 만큼 의상에서도 좀 더 현대적인 한국의 멋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역사 고스란히 담아낸 한복

  옷은 중요한 문화 요소로, 그 문화 집단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변화한다. 한복은 우리나라 고유의 의복이란 뜻을 가지고 있지만 대개 사람들은 ‘한복’이라 했을 때 조선시대의 한복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전혜숙 한복문화학회장은 “조선시대 의복에 관련된 자료가 다른 시기보다 훨씬 많고, 당시 의복은 오늘날까지 실물로 남아있다”고 설명하며 “조선시대가 한복을 일상복으로 입던 가장 최근의 시대”라고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삼국시대부터 고유한 의복을 입어왔으며, 지속적인 변화를 거쳐 현재 평창 동계올림픽 의상과 같은 디자인으로까지 발전했다. 즉, 한복이란 삼국시대와 그 이전부터 한반도에 살던 민족이 입은 옷을 통칭하는 단어지만 오늘날 한복이 조선시대 한복으로 인식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다면 한복의 시초와 역사는 어떻게 될까. 전문가들은 한복의 시초를 고대 동북아시아의 스키타이-시베리아 문화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목 생활을 했던 스키타이 민족이 말을 타기 편한 호복을 입어온 것처럼, 한복 또한 생활 속에서 움직임에 불편하지 않도록 한 것이 유사하다. 하지만 삼국시대 이전 시기에는 의복에 관한 역사적 자료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한복의 구체적인 형태는 삼국시대를 시작으로 추측할 수 있다.

  삼국시대 한복 복식은 벽화 등의 자료에 나와 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3세기경의 고구려 고분벽화다. 김용문(강릉원주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는 “고구려, 백제, 신라는 스키타이계 호복의 영향을 받아 활동성이 편한 옷을 만들어 입었다”며 “남자와 여자 모두 긴 저고리를 기본으로 해 바지와 치마를 입었다”고 말했다. 통일신라시대 때는 문화적 발전이 많이 이뤄져 의복 또한 한층 화려해졌다. 태종무열왕 김춘추는 당나라와 연합군을 결성하기 위해 당에 방문했을 때 중국의 관복제도를 받아들였는데 이때부터 한복은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기 시작했다. 고려시대 역시 당·송·몽고족 등 외부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전체적으로 화려함은 통일신라시대에 비해 훨씬 덜했다. 조선시대는 복식 문화가 꽃피운 시기로 궁중 복식이 정립됐고, 다양한 종류와 그 화려함을 자랑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저고리가 짧아지고 하의는 길어진 것이 특징이다. 개화기에 들어와서부터는 실용성이 강조되며 의복이 더욱 간편해지고 대중화됐는데, 대한제국 이후 본격적으로 서양식 의복이 활용되면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 전쟁 이후부터는 한복이 더 이상 평상복으로 쓰이지 않게 됐다. 김용문 교수는 “개화기 당시에는 개성을 중심으로 서양의 문물이 들어왔고, 이후 교복 등을 양복으로 갖춰 입으며 서양복이 본격적으로 혼용된 것”이라며 “오늘날 생활양식이 변하면서 한복이 예복의 개념으로 변화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21세기 한복, 지금의 모습은?

  더 이상 일상복으로는 잘 입지 않는 한복이지만 전통 의복으로서 한복의 존재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결혼식이나 돌잔치 등의 행사에 한복을 입고 명절 때면 텔레비전에 사람들이 한복을 입고 나와 인사를 하는 것이 그 증거다. 글로벌 시대인 오늘날 한복은 ‘글로벌화’라는 새로운 갈림길에 서 있다. 전혜숙 회장은 “한복의 고유한 특징이 분명한 것은 우리의 전통 문화로서 세계에 알리는 데 유리하다”며 “앞으로 한복이 외국에 한국의 전통 옷으로 홍보될 가능성은 충분히 긍정적이다”라고 바라봤다. 전 회장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국민이 먼저 그 자긍심과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혜숙 회장은 과거에 비해 명절이나 결혼식 때에 한복을 입는 비율이 많이 줄어들고 한복을 소비하지 않게 된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일본에선 결혼식이나 축제, 명절 등에 전통의상 기모노를 입는 문화가 잘 형성돼 있다. 중국의 치파오 역시 끊임없는 개량과 연구를 통해 실용성을 보완해 인기 전통 의복으로 바로 섰다. 베트남 아오자이는 그 역사가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도 지속적인 정책으로 민족의상으로 자리매김했다. 김용문 교수 역시 요즘 사람들이 한복을 잘 입지 않는 것에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나라에서 민족의 색감과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소재와 원단 등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복이 현대에 맞게 상용화되기 위해서 연구와 개발, 그리고 이를 위한 기본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복을 알리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진행 중일까. 정부는 1996년 10월 21일 한복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한복의 우수성과 산업적, 문화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10월 21일을 한복의 날로 지정했다. 2014년엔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부설기관으로 한복진흥센터를 설립했다. 한복진흥센터는 국내 한복문화 진흥과 한복의 글로벌화를 실현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한복진흥센터는 한복의 날 행사를 주도적으로 주최하고 한복문화교육을 진행하는 한편, 전 세계 한국홍보문화원이 보유하고 있는 한복을 점검하고, 한복 관련 수요를 조사해 한복을 개발하고 보급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전혜숙 회장은 “한복이 국내에서 더 널리 사용되고 더 많이 사랑받는다면 외국에 알려지는 것은 한류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글 | 김도윤 기자 glossy@

사진제공 | 유시은(연성대 항공서비스17),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공식 페이스북, 해외문화홍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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