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반적인 대학생들의 커뮤니티라고 생각했어요. 이것저것 정보도 공유하고 잡담도 나누는. 하지만 혐오 발언이 만연한 일부 불량 게시물들을 보면서 떠오른 것은 익명성 뒤에 숨은 어두운 민낯이었어요.”

  보과대 18학번인 김 모씨는 입학 이후 접하게 된 고파스에 대해 이렇게 털어놨다. 특히 동물원 게시판의 일부 게시물에 대해서는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와 비슷하게 보인다고도 했다. 비상식적인 성적 대상화, 지나친 수위의 혐오 발언 등으로 도마에 오른 고파스 게시물, 그 실태는 어떨까.

 

5만 명의 공간, 고파스

  하루 평균 4만여 명이 접속한다. 하루 평균 2000여 건의 게시물이 등록된다. 하루 평균 1만여 건의 댓글이 작성된다. 여러 정보들이 오가고 중고 물품들이 거래되기도 하며 열띤 토론이 펼쳐지기도 한다. 수많은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흔적이 가득한 이곳, 본교 온라인 커뮤니티인 고파스다.

 

고파스,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나?

  고파스의 유래는 본교 공식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의 별칭에서부터다. 질문 글과 함께 많은 댓글이 달리던 이 자유게시판이 검색 포털 ‘엠파스’와 비슷하다고 해 고파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후 2007년, 고파스가 커뮤니티 사이트의 공식 명칭이 되면서 ‘고대생의 나침반’이라는 의미를 갖게 됐다. 고파스 대표운영자는 박종찬(식품자원경제 00학번) 교우이며 ‘고펑’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다. 사이트의 실질적인 운영은 ‘고파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재학생 및 졸업생 운영팀이 담당하고 있다. 엄세영(문과대 일문18) 씨는 “고파스는 고려대 재학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라며 “학교를 다니는 데 필요한 정보들을 얻기 위해 가입했다”고 밝혔다.

 

수많은 게시판, 수많은 게시물

  고파스에서는 52개의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 각 게시판들은 커뮤니티, 재학생, 익명, 생활, 취미, 진로, 졸업생, 고파스, 정보 등 총 9개의 카테고리로 분류돼있고 각 게시판마다 각자의 주제를 보여주는 제목이 달려있다. 익명 게시판을 제외하고는 전부 게시물 작성자의 닉네임이 공개되지만 익명 게시판의 경우 작성자가 누군지 알 수 없다. 익명 게시판 중 식물원의 경우 관형어+식물 이름의 형식으로, 동물원의 경우 관형어+동물 이름의 형식으로 작성자가 가려진다. 고파스 운영팀 측은 익명 게시판 개설 목적에 대해 “고파스는 온라인 커뮤니티이지만, 오프라인과 연계된 서비스여서 자신의 닉네임조차도 드러나지 않기를 원하는 유저가 있다”라며 “이런 유저들을 위해 익명 게시판을 개설해 10년째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동물원과 식물원

  익명 게시판 중 자유주제로 운영되는 게시판에는 크게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다. 고파스를 최초로 가입할 때 익명 게시판 중 동물원을 사용할 것인지, 식물원을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둘 다 사용하지 않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한번 선택하게 되면 매월 1일에만 설정을 변경할 수 있다. 고파스 운영팀에 따르면 가입자의 73.8%가 식물원을, 18.6%가 동물원을 선택했고 7.6%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다. 동물원은 보통 잡담 위주의 게시물들이 많이 올라오고 ‘상호반말’ 규칙으로 운영되지만 식물원은 대부분 고민상담 게시물이 주를 이루며 ‘상호존대’ 규칙을 가지고 있다. 고파스 운영팀 측은 “식물원의 경우 남녀 이용자가 골고루 섞여 있고, 동물원의 경우 남성 회원들이 주를 이룬다”며 “식물원은 하루 평균 200~300개의 게시물이 올라오고, 동물원의 경우 하루 평균 약 1000개에 육박하는 게시물 수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공공연한 성적 대상화, 비상식적인 게시물

  지난 2월 28일, 충격적인 게시물이 한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왔다. 이 게시물은 50여 회 이상 공유돼 알려지며 많은 학생들의 공분을 샀다. 주변 여대 학생들을 성적 대상화하는 고파스 동물원 게시판의 게시물이 그대로 캡쳐돼 공개된 것이다. 2016년 5월 말 ‘방정맞은 아놀리’라는 이름으로 작성된 이 게시물은 이후 운영팀에 의해 불량 게시물로 분류돼 제재를 받았다. 게시물은 해당 여대 학생들을 성적 욕구 충족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비상식적인 내용으로 많은 이들을 분노하고 탄식케 했다. 사범대 16학번인 이 모씨는 “같은 고대생이라고 믿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며 “이러한 더러운 생각의 대상이 혹여 내가 될까 두려웠고 인근 여대 학우들에게 미안한 감정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3월 13일에는 자신이 과외 수업을 하는 여학생의 옷차림을 이야기하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이 게시물엔 여학생이 작성자를 유혹하는 것이므로 덮치라는 내용, 그 여학생의 속옷을 언급하는 내용 등의 댓글이 달렸다. 7일에도 과외 수업을 받는 여학생의 몸매를 품평하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작년 11월에는 여성의 성관계 경험에 대한 게시물도 올라왔다. 성경험이 많은 여성과 왜 교제를 하냐는 내용의 게시물은 일부 여성을 ‘걸레’라고 비하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공과대 17학번인 윤 모씨는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대상화를 당하는 사례들을 보며 큰 공포감이 들었다”며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것 같아 분노했다”고 털어놨다.

  고파스 운영팀에서는 동물원 게시판 이용 시 주의사항으로 “성적인 농담 또는 성인용 주제에 대한 논의뿐만 아니라 이용자를 불쾌하게 할 수 있는 극단적 관점과 의견이 포함될 수 있다”며 “그러나 악의적으로 불특정 다수를 불쾌하게 하는 무례한 표현은 사용하면 안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관리자 차원에서 불량 이용자를 퇴출하기 위해 많은 장치를 고안하고 시행 중”이라며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이용자의 의식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 혐오 발언도 만연해

  고파스 동물원 게시판에 올라온 한 게시물에는 극단적인 여성 혐오 발언이 쏟아졌다. 작성자는 ‘여성들이 왜 사회에 진출해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옛날부터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여성들은 집에서 빨래나 하고 밥이나 하라’는 내용을 게시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투의 익명 게시물이었다. 3월 8일에는 한 작성자가 ‘여성이 남성보다 체력적, 지능적인 측면에서 열등하다’, ‘불리하게 태어났으면 집에서 전이나 부치고 미용 서비스직이나 하라’는 내용으로 게시물을 올렸다. 이 작성자는 이러한 여성 혐오 발언에 이어 ‘페미니즘 발언을 남들 앞에서 하지 말라’는 내용도 덧붙였다. 문과대 17학번인 우 모씨는 “공공연하게 여성 비하를 옹호하고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하는 현상이 충격적”이라며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파스 운영팀 측은 “불량 게시물들에는 삭제 및 작성자 영구 이용 정지 등의 제재를 가하고 있다”며 “결코 관리자 차원에서 방관하거나 그 내용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동물원 내 불량 게시물이 늘어나자 젠더 혐오 발언들을 캡쳐해 공개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도 등장했다. 한 페이스북 사용자가 만든 ‘고려대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 페이지는 2월 26일 게시물을 시작으로 동물원 게시판에 올라온 여성 혐오 게시물들을 제보 받아 업로드하고 있다. 사범대 16학번인 이 모씨는 “여성 혐오 발언을 포함한 각종 불량 게시물들이 어떤 내용인지 이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파악하고 있다”며 “여성 혐오가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주위에 만연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낀다”고 말했다.

 

조롱의 대상이 된 인문계열

  ‘협문’, ‘문전’ 등 평소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단어들이 고파스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이 단어들은 모두 인문계열 학생들을 조롱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문전’의 경우 ‘문과전문대학’의 줄임말로, 인문계열 학생들을 비하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문과는 ‘협문’과 ‘광문’으로 나뉘는데, ‘협문’의 경우 상경계열이 아닌 학문을 전공으로 삼는 학생들을, ‘광문’은 상경계열 학생을 이르거나 인문계열 학생 전체를 통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특히 이 ‘협문’이라고 불리는 비상경계열 학생들이 주로 동물원 게시판의 표적이 돼 비난받고 있다.

  3월 14일 등록된 ‘협문 개선 방안’이라는 동물원 게시판 글에는 ‘비상경계열 학생들은 취업과 동떨어져 징징거리는 경우가 많다’는 내용과 ‘앞으로 상경계열이 아닌 학과나 단과대는 집안 배경이 좋고 가정 형편이 넉넉한 학생들만 입학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는 취업이 잘 되지 않는 비상경계열 학과 특성상, 돈이 많은 집안의 학생만 받아들여 취업 걱정을 없애야 한다는 취지다. 이 게시물에는 ‘비상경계열 단과대는 기부입학용으로 바꿔야 한다’, ‘노예새끼들’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문과대 17학번인 권 모씨는 “취직은 우리가 알아서 하는 것이고, 이러한 글들에 굉장히 불쾌하다”며 “알량한 우월감에서 비롯되는 게시들이 학내에서 가장 큰 커뮤니티인 고파스에 올라온다는 것은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학과나 단과대에 대한 비하도 흔한 일이다. 3월 16일엔 ‘지리교육과는 도대체 왜 우리 학교에 존재하는지 모르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는 ‘난교파티 하려고 존재하는 것 아니냐’, ‘얼마나 배우는 것 없이 놀면 난교할 생각을 하겠나’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작년에 발생한 지리교육과 여성주의 소모임 ‘난파’ 논란과 엮어 학과 전체를 비꼬는 댓글이 공공연하게 달렸다. 또 3월 7일엔 ‘의대 아닌데 고대 다니는 애들은 공부를 안 한 건가 멍청한 건가’라는 내용으로 게시물이 올라왔다. 입시결과를 놓고 봤을 때 비교적 최상위에 속하는 의과대를 제외한 다른 학과 전체를 비난한 것이다. 공과대 17학번인 노 모씨는 “같은 학교에 속해 있고 각자 장래에 갈 길이 서로 다를 텐데 왜 이런 학과나 단과대별 비하 발언들이 나오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채식인에 대한 언어폭력도 이어져

  3월 13일에는 ‘연세치킨’ 응원가 사용이 보류된 것에 대해 반발하며 ‘비건들을 묶어놓고 업진살을 먹이고 싶다’는 게시물이 동물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동물권을 이유로 채식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 표현이 적나라하게 게시된 것이다. 댓글에도 ‘비건에게 XX을 해야 한다’, ‘학교가 XX같이 돌아간다’ 등 자극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지난 2일 ‘소수자들이 다수의 배려에 감사할 줄 모르고 나아가서 권리를 행사하려는 꼴을 보니 같잖다’는 내용으로 호랭이광장에 올라온 게시글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응원곡으로 태클을 걸고 간식행사 때 비건식을 주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XXXX라서 말로 안 통한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본교 채식주의자-페미니스트 네트워크 뿌리:침 이혜수 회장은 “사회로부터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박탈감이 든다”며 “이러한 혐오 발언들은 채식주의자들로 하여금 채식을 한다는 사실을 밝히기 어려운 상황을 만든다”고 토로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비난까지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MeToo(미투) 운동이 한창인 가운데, 고파스에서는 미투 운동을 비하하는 글도 게시됐다. 대부분 성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여성에게 비난의 화살이 향하는 모양새다. 3월 7일 동물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서는 ‘미투 운동을 하는 여성들이 강간당했다고 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여성이 허리만 조금 틀어도 성폭행을 하지 못했을 텐데 그 정도의 반항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추가 보상을 위한 미투라고 본다’는 주장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미투 운동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조롱하는 듯한 게시물도 올라왔다. 3월 15일 게시된 이 글에는 ‘미투 운동으로 큰 돈 버는 가상 시나리오’라는 제목으로 ‘허위사실로 미투 운동을 벌여 금전적 이익을 보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이는 권력형 성범죄에서 신음하던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미투 운동의 본질에 완전히 반하는 게시물들이다. 또 3월 13일에는 ‘미투 운동은 절차를 다 무시한 여론몰이에 불과하다’, ‘고소를 하지 않고 SNS에 올리는 건 누가 책임지나’라는 게시물도 올라왔다.

  본교 성평등센터 노정민 주임은 “법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면 아무 노력도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며 “권력구조상 약자에 해당하는 피해자들의 처지를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성폭력은 남녀관계의 문제라기보다 위계에서 나오는 권력의 억압이 그 핵심이다”라며 “여성이 저항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글 | 박형규 기자 twinkle@

그래픽 | 이선실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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