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inary becomes reality” 상상 속에서만 그려보던 모습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곳. 평소의 나완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보는 환상의 공간. 바로 본교 중앙 연극동아리 ‘극예술연구회’의 이야기다. 극예술연구회는 1948년 출범해 86년째 이어오고 있는 본교 극회로 매학기 초 정기공연을 올린다. 이번 113회 정기공연에선 6일부터 10일까지 총 일곱 번에 걸쳐 연극 <기억의 체온> 공연을 관객에게 선보였다. 단원들은 협소하지만 아늑한 학생회관 6층 공연장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다.

  <기억의 체온>은 마에카와 도모히로(前川知大)가 쓴 <플랑크톤의 층계참(プランクトンの踊り場)>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던지는 연극이다. ‘플랑크톤의 층계참’은 ‘부유(浮遊)하는 것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공간’이란 뜻으로, 인간의 육체가 그저 기억들이 존재하다 없어져 버리는 덧없는 것임을 암시한다. 인간이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서로의 기억 속에 남아 살아가는 불안정한 존재라는 의미다.

  이번 정기공연은 1월 7일 성공을 기원하는 시파티를 시작으로 겨울방학 내내 단원들이 직접 기획하고 연습한 끝에 일궈낸 결과물이다. 무대와 객석 설치부터 조명, 음향, 의상, 분장 제작까지 모두 그들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내 도플갱어가 나타나 내 기억의 일부를 빼앗은 채 살아간다면 진짜 ‘나’는 누가 되는 것일까? <기억의 체온>은 여주인공 가나메(かなめ)가 남편 시게루(しげる)와의 이혼을 결심하고 언니 아야메(あやめ)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오며 시작된다. 가나메는 길을 가다 우연히 도쿄에 있어야 할 남편을 본 듯한 착각에 빠져 한 가게에 들어서게 된다. ‘상상하는 모든 것이 실현’되는 가게의 신비한 힘으로 시게루와 똑같은 모습의 도플갱어가 창조된다. 도플갱어는 그동안 가나메와 함께한 시게루의 기억을 똑같이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도플갱어의 탄생 이후, 기존의 시게루에게선 그 기억이 없어지게 된다. 시게루의 도플갱어는 “내 자리를 누가 뺏었다”고 말하며 자신이 도플갱어임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극은 인물들이 가게의 비밀과 도플갱어 등장의 배경을 추리해나가며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이 맞닥뜨리는 문제는 바로 도플갱어와 본체가 만나면 정신적으로 합쳐진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도플갱어가 창조된 이후부터 두 존재가 따로 만들어낸 기억으로 인해 합쳐지는 과정에서 정신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아야메는 이에 대한 해결 방법으로 가나메의 기억은 있되 새로운 기억이 없는 제 3의 시게루 도플갱어 창조를 제안한다. 제 3의 도플갱어와 시게루를 합친 후 기존의 도플갱어는 없애는 것이다. 이 때 아야메는 기존의 도플갱어를 “그저 기억의 일부를 간직한 데이터와 같은 존재”라 표현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기억의 체온>은 연극을 향한 단원들의 진지함과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무대를 채워나갔다. 배우들의 훌륭한 대사 전달력과 감정 표현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줄거리를 부담스럽지 않게 풀어낸 것이다. 극 사이사이 어색하지 않게 들어간 코믹적인 요소와 몇몇 조연들의 자연스러운 1인 2역 연기도 재미를 더했다. 공연을 본 박소영(미디어17) 씨는 “연기 뿐만 아니라 각색과 무대미술 등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게 느껴졌다”며 “이렇게 퀄리티 높은 웰메이드 연극이 학생들의 손에서 완성됐다는 게 놀라웠다”고 평했다. 무대 중앙에 설치한 창문 모형의 세트를 통해 조명을 조절하는 동시에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고 자연스럽게 씬을 바꾸는 설정은 관객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조경준(미디어17) 씨는 “무대 위 창 세트를 통해 비치는 그림자를 이용해 상황을 설명하는 등 연출적인 부분에서 신선했다”고 말했다. 김민지(자전 미디어15) 씨 또한 “상황에 맞게 적절히 잘 사용된 조명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며 “전문 연극인들이 하는 연극 못지않게 재밌었다”고 표현했다.

  극예술연구회는 매 방학마다 작품을 선정, 캐스팅을 진행한 후 방학동안 공연 준비를 마치고 학기 초에 정기공연을 연다. 다음 정기공연은 2학기 초에 있을 예정이며, 19일과 20일 신입생 연극 학교인 ‘이바돔’이 진행된다. 이번 ‘이바돔’ 기획을 맡은 김나연(경영대 경영16) 씨는 “이바돔이란 ‘손님에게 대접할 음식’이란 뜻으로, 극예술연구회에서 매학기 초에 여는 신입생 연극 학교”라며 “극회에 관심 있는 신입생들을 위한 OT와 같은 개념이니 많은 관심과 지원 부탁드린다”고 말을 전했다.

 

글 | 김도윤 기자 glossy@

사진제공 | 극예술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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