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 이후, 사회 각계에선 ‘#MeToo’(미투) 외침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잇따르는 피해자들의 뜨거운 고백에 한국 사회가 함께 분노하며 지지를 보내고 있다. 우리는 과연 미투를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해야 할까. 미투 운동이라는 현상을 분석하고 변화하는 한국 사회를 진단하고자 전문가 3인을 만났다.

임인숙(문과대 사회학과) 교수 

“이젠 일상의 언어를 바꿀 때”

  임인숙(문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미투 운동의 사회적 의미를 분석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실천해나갈 과제를 제시했다.

  임 교수는 그간 가해자가 성폭력을 가장 효과적인 여성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풍토가 만연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은 우리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죠. 피해자가 법적으로 구제받지 못하고 오히려 공격의 대상이 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침묵을 강요받아 왔다고 할 수 있어요.”

  임인숙 교수는 미투 운동의 공익적 가치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폭로가 잇따르자 이성을 대하는 태도를 달리하는 등 문화적인 변화가 있어서다. “미투는 한 사람이 과거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줌으로써 피해의 고리를 끊어 피해자의 양산을 저지한다는 의미에서 공익을 위한 현상입니다.”

  임 교수는 이번 운동이 개별 가해자를 응징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부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잘못된 남성 문화가 흔히 여성의 품행이나 옷차림을 지적하며 성폭력을 관대하게 해석하고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반성폭력 운동의 고전적인 슬로건 ‘No means no’를 문장 그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No’라고 한 이상 더 이상의 성적 행위를 요구하는 건 범죄입니다.”

  임 교수는 성에 대한 잘못된 문화를 바꾸려면 언어 습관이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엔 이른 나이부터 웹툰이나 게임 등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는 놀이문화에 노출되기 쉬워요. 이런 타성에 젖어있는 만큼 수시로 자신의 발언이나 언어를 스스로 점검하고 되돌아보는 등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나아가 성폭력에 대한 입증의 책임을 피해자 일방에게만 전가하는 현행 법제도가 개편돼야한다고 말했다. “피해자에게만 증거를 요구한다면 피해자가 2·3차 가해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비록 요즘은 여론이 가해자를 응징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법적 장치가 개선되고 잘 작동해야 문화가 점진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조기숙(이화여대 국제학과) 교수 

“건강한 미투, 성숙한 언론보도부터”

  조기숙(이화여대 국제학과) 교수는 건강한 미투 운동을 위해 한국 언론을 지적하고,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었다.

  조기숙 교수는 현재 미투 운동의 흐름 속에서 언론의 보도가 미숙하다고 지적했다. 연일 선정적 뉴스를 쏟아내는 현 언론의 미성숙한 태도가 미투의 본질을 흩트린다고 봤다. “공적인 이슈를 다루는 정론지와 타블로이드는 분명히 구분돼야 합니다. 기사를 자극적으로 엮고 공인의 사생활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려는 언론은 황색언론일 뿐입니다.”

  조 교수는 성추행 혐의로 조사를 받던 배우 故 조민기 씨의 자살 사건을 일례로 들며 언론에도 책임의 소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목을 끌고자 조민기 씨의 부적절한 사생활을 여과 없이 고발식으로 보도한 것은 언론의 미성숙한 태도 때문이라고 봅니다. 사적인 채팅 내용을 적나라하게 전달하는 게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결국엔 가해지목인의 자살로 수사가 종결되며 미투의 의미가 희석됐습니다. 학생들의 일관된 증언만으로도 그가 비난과 법적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을 겁니다.”

  조 교수는 나아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론이 하루빨리 보도준칙을 강화하고 절제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생활 폭로와 같은 타블로이드성 기사와 공론을 구분하고 있는 미국의 언론을 좋은 예로 삼아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나라 여론은 언론에 의해 크게 좌지우지되는 경향을 보이는 만큼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조 교수는 건강한 미투 운동 유지를 위해 여성시민단체와 법제도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력 관계에서의 약자를 여성으로 전제한다면 젠더 간 대결로 번질 우려가 있습니다. 소수일지라도 남성 약자를 고려해야 하며 모든 분야에서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인권 운동을 해야 합니다. 민주국가에서 법의 절차를 벗어나 우회하는 여론재판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장기적으로는 피해자 중심의 법과 제도가 정비돼 미투 폭로 없이도 약자의 권리가 확실히 보장돼야 합니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대학 내 성교육, 다양한 각도에서의 접근 필요“

  대학 내에서도 성폭력 피해자로 미투를 외치는 사례가 늘고 있어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 22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원장=권인숙) 이미정 연구위원을 만나 효과적인 대학 내 성폭력 예방에 대해 물었다.

  이미정 연구위원은 대학 내 성폭력상담기관의 한계로 전문인력 부족과 예산 부족을 꼽았다.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르면 대학은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해야 하지만 지원이 빈약한 대학 중에는 성희롱 문제를 형식적으로 처리하는 곳이 많아요.” 전문성이 낮은 까닭에 신뢰도가 낮아져 학생들의 이용 빈도가 낮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타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직원이 성 상담 관련 업무를 맡는 곳도 있어요. 예산에 따라 대학마다 편차가 매우 큽니다. 특히 2년제 전문대나 비수도권의 대학은 조건이 훨씬 열악해요.”

  이 연구위원은 성폭력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성인권센터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미투 운동을 계기로 대학 내 기관들이 실태를 파악하고 시스템을 재정비하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이미정 연구위원은 성폭력이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로 남녀 간의 성인식 차이를 꼽았다. “남녀는 각자 다른 성적 표현 기준을 가지고 있기에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내가 좋으면 상대도 좋을 거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해요. 상대에 대한 이해 없이 본인의 선호만 추구하는 건 성범죄의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이미정 연구위원은 대학 내 성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선 학교가 보다 참신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교육을 시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새내기새로배움터나 오리엔테이션 등 행사에서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권 및 성교육을 시행하지만, 대규모 강의는 큰 효과가 없다고 생각해요. 학교 차원에서 교과목으로 지정하거나 학생들이 소규모 그룹들을 꾸려 서로 토의하며 섹슈얼리티에 대해 적극적으로 성찰하고 잘못된 인식을 개선해나가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글 | 유제니 기자 jenerous@

사진 | 유제니, 김도희 기자 press@

사진제공 | 임인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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