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다음으로 ‘며느리’ 찾아볼게요.” “느타리 할 때 ‘느’, 혀를 뒤로 꼬불리는 ‘리’. 찾으셨어요?” “아유, 못 찾겄어.”

  오전 열한 시, 안산 용신학교에선 한글 수업이 한창이다. 학생 수가 가장 많은 문해2반은 오늘 받침 없는 글자를 복습하는 중이다. 빈자리 없이 빽빽한 교실은 스물다섯 명 학생들의 목소리로 가득 차있다. 학생들의 눈과 손은 한글 음절표에서 글자를 찾아 적느라 바쁘고, 단어를 따라 읽는 입은 함께 분주하다. ‘2018년 3월 19일 월요일 날씨: 흐리고 비 와요’ 흰 칠판에는 담임선생님의 글씨가 정자로 꼭꼭 눌러 적혀있다. 학생들이 글자를 더 쉽게 알아보길 바라는 선생님의 배려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어요

  스물다섯 개의 책상마다엔 손수 만든 한글 음절표와 열 칸짜리 깍두기공책이 빳빳하게 펼쳐져 있다. 선생님이 불러주는 단어들을 다섯 번, 여섯 번씩 되풀이해 읽어내면서 네모 한 칸 한 칸을 채워나간다. 돋보기안경을 쓰고, 그 위에 근시용 안경을 또 하나 얹어 놓고, 부지런히 칠판과 공책을 오가는 시선은 자칫 수업을 놓칠세라 바짝 긴장해 있다. “언니, 적었어?” 앞뒤로 앉은 언니 동생은 서로의 공책을 비교해본다. 책상 옆 일렬로 가지런히 걸린 책가방들에는 친구들과 나눠 마실 차를 담아 온 보온병이 빠끔히 보인다.

  김금자(여·64) 씨는 어린 시절 할머니의 반대로 초등학교를 마치지 못했다. “기집애 가르쳐 뭐하냐고 학교에 못 가게 했어요. 동생이 셋 있는데 동생들 보라고. 좀 머리 크니 밥하라 그러고. 오빠들은 대학교까지 다 나왔지.” 동갑내기 조복순(여·64) 씨도 어린 시절만 생각하면 퍽 아쉽다. “그 때는 여자를 안 가르치던 시대였지만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어떻게든 배웠겄지. 세상 이렇게 후딱후딱 바뀔 줄 누가 알었어?” 학교에 나와 공부한 지 만 5년이 돼간다는 박칠순(여·72) 씨는 배운 것들을 자꾸 잊어버리지만 그래도 공부하는 게 제일 재미있다고 한다. “공부해서 가장 좋은 것은 전철 갈아탈 때! 남한테 물어물어 가던 걸 내가 읽고 갈 수 있어서 제일 편해요.”

  이렇게 문해2반 학생 대부분은 곱슬곱슬한 파마머리의 어머니들이다. 대부분 못 배운 설움을 함께 나누던 지인들에게 알음알음 소개받아 오게 됐다. 김금자 씨는 택시를 타고 가다 현수막에서 ‘한글’이라는 단어를 설피 읽고 사진을 찍어 뒀다. 딸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도움을 받아 용기 내 학교에 전화했다. “옛날에는 못 배운 게 챙피하더니 요새는 안 챙피하데. 나 같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드라고.” 용신학교 김경옥 교장은 모르는 것을 숨기고 못 배운 대로 평생 살아야 하는 줄 알았던 인식들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교육청이나 시청을 통해 프로그램을 찾아 적극적으로 방문하시곤 해요. 자제분들이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고 권유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보통은 지인들을 통해 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옆 교실 중학 반에서는 한문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취중불언은 진군자라.” 용신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친 지 올해로 4년 차가 된다는 이필헌(남·72) 선생님은 초등학교 교장직을 은퇴한 후 지역신문을 통해 용신학교를 알게 됐다. 탈북청소년들을 무료로 가르치던 일이 끝나자 학교와 인연을 맺었다. 교직에 있을 당시 한문이 담당과목은 아니었지만 한 시간 수업에 두 시간씩 연구하며 수업을 준비한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은 일반 학교 수업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이분들이랑은 말이 잘 통하니까 일상 이야기를 나눠도 재미있죠.”

  한문뿐만 아니라 가곡을 알려주기도 한다. 학생들의 요구가 있어서다. 매일 수업을 시작할 때 간단한 시사 이야기도 나눈다. 영어 노래를 알려달라는 학생들의 주문도 있다. “노래방 가서 친구들처럼 영어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팝송을 알려 달래요. ‘You raise me up’ 같은 노래를 준비해가서 같이 불렀더니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이 선생님은 70대가 넘은 학생들이 ‘배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린다’고 하소연할 때마다 콩나물 이야기를 들려준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물은 밑으로 다 빠지지만, 콩나물은 쑥쑥 자라 있잖아요? 다 잊어버리는 것 같아도 머릿속에 남는 게 있으니까 열심히들 하라고 해요.” 이 선생님은 학교를 찾는 학생들이 배움에 대한 열정을 크게 가지고 있어 가르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늦게 배우는 사람들이 오히려 열심히 공부해요. 대학까지 들어가는 걸 보면 굉장히 보람차요.”

 

그렇게 학교가 됐다

  ‘새로 태어난 나 - 윤춘자 55세’ 학교 벽에는 학생들이 쓴 시와 직접 그린 그림들이 곳곳에 걸려 있다. 작년엔 안산시에서 열리는 한 축제에 ‘용신학교’ 부스를 마련하고 학생들이 쓴 시와 그림을 전시하는 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용신학교에서는 동아리 활동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사물놀이, 하모니카, 요가 등 종류도 다양하다. “원래 매주 등산도 가는디 요새 날 추워서 안 갔어. 인자 날 풀렸응게 가야지.” 복도 벽에는 지난 학기 있었던 학교 행사 사진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스승의 날 행사며 김장의 날 행사, 다문화의 날 행사 등 사진 속 학생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다. 학생들은 ‘학교생활’에 대한 소망이 커 학교 행사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가한다. “우리도 어린 학생들 맹키로 할 거 다 해유. 수학여행도 가구 소풍두 가구. 작년엔 제주도로 다녀왔어.”

  용신학교가 1987년 ‘안산중앙실업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지도 30년이 됐다. 야학에서 청소년 교육봉사를 하던 스물다섯 살의 수학선생님 김경옥 교장이 뜻을 굳히면서다. “학교를 세우려면 건물이 있어야 하잖아요. 돈이 없어서 아버지한테 세를 하나 얻어달라고 했어요. 아버지는 당연히 반대하셨지만, 교사직도 때려치우고 집 나간 딸에게 사흘 만에 두 손 두 발 다 드셨어요. 결국, 그렇게 교육청에 학교를 등록하게 됐습니다.”

  1980년대 근로청소년들의 검정고시를 돕는 야학이었던 용신학교는 시대적 변화를 함께 겪으며 지역사회에 필요한 모습으로 변모해왔다. “초창기에는 선생님들 전부 한양대 안산캠퍼스 학생들이었어요. 대학생들이 야학에 대한 사회적 의무감을 가진 시기였죠.” 그러나 점차 청년들의 취업 관문이 좁아지며 대학생 교사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나중에는 선생님을 모시려고 사회봉사 학점을 주기도 했는데 요즘엔 그런 제도마저 없어져 대학생 선생님들은 많이 안 계십니다.” 김 교장은 대학생들이 교육봉사에 대해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대학생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귀한 능력을 갖고 있단 사실을 알면 좋겠어요. 문해교육의 장에서도 대학생들이 큰 힘이 될 수 있어요”

  50분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자리에서 일어날 줄 모르는 학생들은 교사가 나가도 책을 놓지 않는다. 잠시 후 있을 받아쓰기 시험을 준비하는 늦깎이 학생들의 노력은 순수하고 우직하기에 더 뜻깊다. “읽긴 읽어두 한 자씩만 읽지 아직 의미가 바짝 와 닿진 않아요.”, “내가 여기서 읽으니까 또박또박 읽지 선생님 앞에 서면 여그가 딱 맥혀가지고 안 나와.” 홍화자(여·75) 씨의 푸념에 반 친구들의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나도 그렇다’며 박수치고 공감하는 같은 반 친구들이 있어서 몇 년씩 지치지 않고 배움을 지속해 나갈 수 있다.

  “선생님 오기 전에 칠판에나 써 놔야지.” ‘2018년 3월 19일 월요일 날씨: 흐리고 와비요’ “언니, 바뀌었잖어!” “아이구, 그러네.” 천진하게 웃으며 글자를 지우고 한 자 한 자 고쳐 쓰는 펜을 잡은 손에는 배움에 대한 진심이 담뿍 묻어났다.

 

글·사진 | 박문정 기자 moonlight@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