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리는 소비, 미닝아웃·
‘나’를 알리는 소비, 미닝아웃·
  • 박문정 기자
  • 승인 2018.05.15 1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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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언(미디어16) 씨의 가방에는 ‘Here I am,’이라고 적힌 키 링이 달려 있다. ‘네가 절망하는 그곳에 우리가 있다’는 뜻으로, 수익금이 청소년 성 매수 피해자를 후원하는 데 쓰인다고 해 구매했다. 김 씨의 노트북에는 ‘feminism’, ‘퀴어’라고 적힌 알록달록한 메시지 스티커가 붙어 있다. 필통에는 동물보호를 상징하는 배지가 달려 있으며, 옷장에는 ‘girls can do anything’이라고 적힌 티셔츠가 몇 장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는 2018년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미닝아웃(Meaning Out)’을 꼽았다. 미닝아웃은 ‘mean’과 ‘coming out’의 합성어로, 자신의 정치 사회적 신념이나 가치관을 소비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로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미닝아웃이 ‘구매’하고 ‘표현’하는 일종의 소비문화로 자리잡으면서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소비방식이 눈에 띈다.

 

슬로건 티셔츠부터 상징 굿즈까지

  미닝아웃 상품은 슬로건을 통해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유형, 상징적인 디자인을 사용하는 유형, 생산 공정에서 특정한 가치를 실현하는 유형 등 다양하다. 나아가 소비자들이 직접 미닝아웃 굿즈를 제작하거나 디자인해 판매하기도 한다.

  ‘슬로건티셔츠’는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대표적인 ‘미닝아웃’ 아이템이다. 여성 인권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이 모(여·19) 씨는 일상생활 속에서 페미니즘을 드러내고 싶어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슬로건 티셔츠를 친구들과 공동 구매했다. 이 씨가 구매한 티셔츠에는 “Girls can do anything"이라는 문구가 크게 적혀있다. 이 씨는 “다른 굿즈들보다 페미니즘의 의미를 잘 드러낼 수 있어 슬로건 티셔츠를 구매했다”고 구매 이유를 밝혔다.

  반면 꽃이나 무지개와 같은 상징적인 이미지를 사용한 디자인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미닝아웃 굿즈’다. 한예슬(여·21) 씨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후원하는 파우치와 배지, 휴대폰 케이스 등을 사용한다. 피해자 할머니를 응원한다는 문구가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피해자 할머니들의 압화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판매 수익의 일부로 피해자 할머니들을 후원한다는 점도 구입의 이유다. 한 씨는 “제품의 의미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있지만 좋은 의미로 쓰이기에 소신껏 제품을 구매했다”고 말했다.

  미닝아웃은 개인의 소규모 굿즈 제작이 용이해지고 온라인 판매 경로가 다양해짐에 따라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이 활성화된 덕에 개인이 만든 굿즈들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백 모(여·22) 씨는 “요즘 텀블벅과 같은 펀딩 플랫폼이 잘 마련돼 있어 스티커나 배지 등 가치관을 나타내는 물건을 쉽게 판매하고 구매할 수 있다”며 “펀딩 문화가 유행하면서 주변 사람들도 펀딩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굿즈를 구매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구매를 통해 주변의 관심 환기

  ‘미닝아웃’에 사용되는 물건들은 다양한 기능을 한다. 자신의 가치관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역할을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한다. 같은 물건을 착용한 사람들끼리의 유대감이 형성되기도 한다. 자신만의 개성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하는 하나의 방식인 것이다.

  황인성(문과대 사회17) 씨는 세월호 노란 리본을 구매해 가방에 부착했다. 황 씨는 “유가족들에 대한 지원이나 후원을 나타내려는 의미에서 리본을 달게 되었다”며 “리본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끼리 연대감도 고취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미닝아웃은 사회운동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담스럽지 않게 유대감을 형성하는 방법으로 ‘노란 리본’이라는 굿즈를 활용한 것이다.

  과거에는 사회적 역할이나 지위에 의해 개인의 정체성이 드러났다면,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독특한 특성이 정체성을 규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여기에 권위주의 시대의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게 된 것도 ‘미닝아웃’의 확산에 힘을 실었다. 윤인진(문과대 사회학과) 교수는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생활수준의 개선으로 인한 개개인의 탈물질주의 가치가 결합해 자신의 표현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그 원인을 분석했다.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싶은 욕구를 ‘미닝아웃’의 원인 중 하나로 보기도 한다. 이은희(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자신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출해 알리고자 하는 젊은 세대의 성향이 있다”며 “가치를 드러내는 물건을 사용해 다른 사람의 생각도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것’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성 인정하는 계기 될 수 있어

  미닝아웃은 신념을 자유로이 표현함으로써 각자의 개성을 발현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기대를 모은다. 소비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쉬우면서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윤인진 교수는 “집단 동조와 동질성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미닝아웃처럼 자기표현이 수월해지는 현상은 획일적인 문화를 희석시켜 다원적인 사회로 만들 수 있다”며 “사회에 위해를 끼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금지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자기표현과 함께 건전한 비판 문화를 성장시켜 자정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성원의 다양한 시각이 무분별하게 표출되는 것에 대해 우려 섞인 시각도 존재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명백한 범죄행위나 반사회적 행동도 인정받길 요구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박 모 씨(여·23)는 “아동성범죄를 성적 취향의 하나라고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며 “표현의 자유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다양한 가치관의 표출이 가져오는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한다. 이은희 교수는 “다양한 가치관이 많은 사람에게 노출돼 사람들로 하여금 중요한 이슈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긍정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글│박문정 기자 moonlight@

사진│고대신문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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