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갤러리 브레송을 운영하는 김남진 관장은 사진가들을 위해 전시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사진가들에게 놀이터를 제공하는 것뿐이에요. 하하” 김남진(전기공학과 76학번) 관장은 사진가로 활동한 80년대부터 도전을 거듭하며 달려왔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 몸으로 체험할 수밖에 없었지요.” 김 관장은 20대부터 이태원이라는 낯선 곳에 뛰어들어 수년간 사진을 찍었다. 수많은 단체 전시전과 기획전에 몸담으며 5번의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과 서울사진축제도 기획했다. ‘갤러리 브레송’을 운영 중인 김남진 관장은 현재 아마추어 사진가들을 위해 전시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다.

사진 빛내는 공간 만들다

  사진가로 출발해 전시 기획자로 자리 잡은 김남진 관장은 현재 명동에 위치한 ‘갤러리 브레송’을 운영 중이다. 김 관장이 사진가로 활동하던 당시는 사진 평론이나 기획을 맡을 사람이 없어 대중들은 사진 전시전의 존재조차 몰랐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말들 하잖아요? 전시를 열고 싶었는데 기획을 전담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제가 기획에 뛰어들게 됐죠.”

  갤러리 브레송에서는 한 달에 최대 3번의 전시가 열린다. 그 중 한번은 김남진 관장의 기획전이 전시되고 나머지는 외부 사진가들이 갤러리를 대관해 전시를 진행한다. 특이하게도 김 관장의 갤러리에서 개최되는 전시전은 대부분 1년 단위 프로젝트로 연재된다. “기획적은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돼야 사진계에 큰 파급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기획전의 의미가 없죠.”

  김남진 관장은 두 번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다수의 단체전시전과 기획전에 참여했다. 그 중 김 관장이 최고라 뽑은 기획전은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이다. 그는 2006년, 2008년과 2009년에 걸쳐 3번의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을 기획‧주최했다. 기존에는 없었던 서울에서의 국제사진페스티벌을 열기 위해 김 관장은 직접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이 경험으로 2011년에 김 관장이 총감독을 맡은 ‘서울사진축제’의 관람객이 한 달에 10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놀이터가 필요한 사진가들에게는 전시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이를 알기에 많은 노력을 했어요.”

 

호영회부터 개인 전시전까지

  비단 사진 촬영뿐만 아니라 만들고 궁리하는 걸 좋아했던 김남진 관장은 본교 공과대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오랜 기간 방황했다. 방황하던 그는 새내기 때 길을 거닐다 중앙사진동아리 호영회를 발견했다. “배재학당을 다닐 때 2년 동안 사진반 활동을 했어요. 그때 처음 카메라를 사용해봤는데 재밌었던 기억에 자연스럽게 호영회에 가입하게 됐어요.” 김남진 관장에게 호영회는 대학 생활의 전부였다. “공대생인데도 호영회 때문에 애기능보다 학생회관에서 더 많이 살았어요. 매일 술 먹고... 꽤 재미가 있었지요.”

  김 관장은 호영회에서 배운 것들이 사진가가 되는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호영회 활동을 하면서 서클룸 암실에서 필름 현상도 하고 선배들이 구비해둔 사진 잡지도 많이 읽었어요. 이 서적들이 제가 사진가를 되기까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당시에는 사진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었다. 시중에 사진 관련 서적은 두어 권밖에 되지 않고 이 또한 빛 노출, 렌즈 종류 등 기술적인 소개에만 집중됐다. 김남진 관장은 호영회에서 선후배들과 외국 사진집을 연구하고 학술지와 소논문을 작성하며 사진을 공부했다. “같이 놀며 연구했던 대학생들이 사진계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때의 경험이 없었으면 전 사진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요?”

  김남진 관장은 1984년 대학을 졸업했지만 바로 취직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진을 직업으로 삼겠다고 했더니 어머니가 ‘괜히 입학 선물로 카메라를 사줬다’며 후회하셨어요. 그 당시에는 사진가라는 개념이 없어 사진관을 차리는 줄로만 아셨죠.”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김 관장은 ‘김남진의 사진 공방’이라는 작은 작업실을 차렸다. “연구소라는 이름은 무섭기도 해서 쓰고 싶지 않았어요. 대신 선생님과 학생이 사진을 공부하는 곳이란 뜻으로 ‘공방’이란 이름을 선택했지요.” 김남진 관장은 사진 공방에서 사진 작업뿐 아니라 사진에 대한 교육과 스터디도 진행했다.

▲ 김남진 관장이 찍은 80년대 이태원의 밤의 기록
이태원의 밤을 사랑한 사진가 김남진 관장의 개인전 중 널리 알려진 것은 <이태원의 밤>과 <호모나이트쿠스-이태원의 밤> 시리즈다. 성격이 내성적이었던 김 관장이 사회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좀 더 찍어보고자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그가 ‘부딪혀보자’는 마음으로 달려 나간 곳은 바로 이태원이었다. “당시 이태원은 최고의 환락가였어요. 두려움을 이겨내 보려고 다짜고짜 플래시를 달고 이태원으로 갔지요.” 이태원으로 간 김 관장은 미군들이 많이 다니는 소방서 거리에서 가까이 가지 못한 채 멀리서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니 미군들이 마구 쫓아왔어요. 쫓아오는 미군들을 피해 줄행랑을 쳤는데 돌아보니 내가 왜 도망을 치는지도 모르겠고 창피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돌아갔죠.” 그때 김 관장의 눈에 얼굴에 페이스 페인팅을 잔뜩 한 사람들이 들어왔다. 바로 그 당시 야간업소를 옮겨 다니며 각설이 품바쇼를 하던 사람들이었다. “용기를 내서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말을 걸었더니 포즈를 취해주시더라고요. 제가 이태원에 가서 찍은 첫 사진이었어요. 이 사진을 통해 용기가 생긴 기억이 남아 포스터로도 썼던 사진이죠.” 용기를 얻은 김남진 관장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 밤마다 사진을 찍었다. 김 관장은 사진을 통해 당시 사회에서 배제됐던 사람들도 드러냈다. 대표적으로 김 관장은 그늘에 가려져 있던 성전환자 업소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사진으로 많이 담아냈다. “대체로 종사자들의 퇴근 시간은 오전 5시인데 그때까지 업소 앞에서 기다리다 따라가서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어요. 포즈를 취해주기에 몇 장 찍고 나니 잠시 쉬고 가라기에 따라가기도 했어요.” 김 관장은 젊은 시절에 낯선 곳에 방문한 기억을 떠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얼떨결에 들어간 업소에서는 정작 낯선 분위기에 사진을 한 장도 못 찍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제일 아쉽죠.” 그렇게 1984년부터 1986년까지 2년간 이태원을 바라본 짧은 기록물이 1987년 개인전으로 전시됐다. 그로부터 30년 후, 김남진 관장은 전시전의 후속편을 계획했다. “오랜만에 이태원을 찾았더니 30년 전의 이태원과 많이 달라졌더군요. 그때의 기억을 살려 다른 모습의 젊어진 이태원의 밤을 찍을 수 있었어요.” 김 관장은 작년 강남에 위치한 스페이스22 갤러리에서 두 번째 버전인 <호모나이트쿠스-이태원의 밤> 전시를 개최했다. “작년에 환갑이 되면서 우연히 ‘환갑전’으로 다시 열게 됐어요. 사회로의 도전이었던 30년 전의 사진들을 기억하며 다시 찍은 사진들을 보니 뭉클하더라고요.”
▲ 첫 개인전 이후 30년, 다시 찾은 이태원의 밤

예술에 의미 부여하는 인문학의 힘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었을 적 이건 ‘내가 원하는 사진이 아니구나!’를 느꼈어요.” 김남진 관장은 사실을 기반으로 현장을 관찰하고 포착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은 그가 표현할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는 예술의 본질은 ‘감정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사진에 담아내는 것’이었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되돌아보고 고민해보는 것이 예술가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고민을 참 많이 하다 보니 이런 결과에 다다를 수 있었지요.”

  김남진 관장은 사진과 인문학은 떼어내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했다. “세계를 알고 표현하려면 꼭 알아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했어요. 대학 다닐 때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지요.” 공대생이었던 김 관장은 자신의 전공보다 인문학에 더 관심이 많았다. 세상과 사회를 바라보는 철학가, 인류학자, 사회학자 등 전문가가 정립한 이론도 중요하다고 했다. “예술가들에게 ‘세계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뚜렷한 지론’을 세우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전문가들의 이론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거죠.” 김남진 관장이 말하는 사진가를 포함한 예술가가 할 일은 그들이 정립한 이론을 차용해 시각화시키는 것이다. “도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과 연구 방법 등 학자들의 이론을 공부해 재창조해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진은 무의미할 뿐이에요.”

 

교육자·전시 기획자로서의 소망

  현재 갤러리 브레송은 아마추어 작가들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진가들을 위한 공간 마련에 힘쓰고 있다. 김남진 관장은 갤러리 브레송을 ‘저가 공간’이라고 표현한다. “내가 사진 활동을 힘들게 해서 그런지, 사진가들이 전시하는데 얼마나 돈이 많이 들어가고 힘든지 잘 알아요. 이런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노력 중이지요.” 갤러리 브레송은 사진가들을 위한 장비들이 구비해 놓고 다른 전시관보다 비용을 대폭 낮춰 전시공간을 제공한다. 김남진 관장은 갤러리 브레송이라는 ‘놀이터’에서 뛰어 놀 사진가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을 잘 찍으려면 인생을 즐길 줄 알아야 해요. 내가 삶을 즐길 줄 모르면서 남을 어떻게 즐겁게 해주겠습니까? 앞으로 그저 바다를 찍은 것이 아닌 ‘어떤 바다’를 찍은 사진들이 갤러리를 가득 채웠으면 합니다.”

 

글·사진 | 김예진 기자 starlit@

사진제공 | 김남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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