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저서 <지독한 하루>를 들고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의과대 02학번) 교우

  “의사의 눈으로 보는 죽음은 평등해요. 대부분 의학적으로 정해진 때 죽죠. 하지만 작가로서 마주하는 죽음은 결코 평등하지 않아요. 이 간극을 쓰는 게 제 일이죠.” 남궁인(의학과 02학번) 교우는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바라본 삶과 죽음의 경계를 기록한다. 2016년 7월 첫 책 <만약은 없다>를 출간한 남궁인 씨는 <지독한 하루>, <차라리 재미라도 없든가>를 이어 출간하며 의사이자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해가 쨍쨍한 15일 점심,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응급의학과 당직을 서고 온 남궁인 씨를 만났다.

 

강박으로 글 쓰던 문학청년, 작가가 되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소위 말하는 문학청년이었어요. 남들이 안 읽는 고전을 읽고, 저만의 시를 쓰곤 했죠.” 남궁인 씨는 글을 읽고 쓰는 게 행복해서 ‘평생 글 쓰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글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하니, 내가 겪은 일을 글로 기록하지 않으면 아까웠어요.” 남궁 씨는 글로 일상을 남기지 않으면, 겪은 일들이 지나가버리는 느낌이 들어 강박적으로 자신의 생활을 적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글쓰기는 그에게 ‘삶의 목표’가 됐다. “적어둔 글을 통해 제 감정을 볼 수 있었어요. 강박적으로 꼭 해야 하는 일이었던 글쓰기가 때론 위안을 줬죠.”

  글 쓰는 삶을 꿈꾸던 남궁인 씨에게 작가의 길을 열어준 것은 SNS였다. 남궁 씨가 페이스북에 쓴 의료현실에 관한 산문이 SNS상에서 폭발적으로 퍼졌고, 이를 본 일간지에서 기고 요청을 했다. “제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좋아해주니 ‘이게 작가가 되는 길인가?’ 싶었죠.” 남궁인 씨에게 최초로 출판을 제안한 곳은 ‘문학동네’였다. 남궁 씨는 우리나라에서 글 쓰는 사람이라면 가장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출판사인 문학동네에서 출판 제안을 받으니 날아갈 듯 기뻤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제안을 받았을 때 친구들이 집에 놀러와 있었는데 너무 신이 나서 ‘나 작가된다! 내가 소고기 산다!’라고 외치며 집 앞 정육점에서 소고기를 잔뜩 사 먹었어요.” 첫 책 <만약은 없다>는 그가 가장 애착을 갖는 책이다. “출간을 제안 받고 제 모든 것을 쏟아 붓자고 생각했어요. 제가 지금까지 쓴 글들 중 가장 좋은 소재를 선별해 이 책에 실었죠.”

 

글을 사랑한 의대생, ‘시 오빠’를 만나다

  본교 의과대 재학시절 ‘글’은 남궁인 씨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방학이면 노트 하나를 들고 ‘비행기 타지 않고 이집트 국경 넘기’와 같은 주제를 잡고 여행을 떠났다. 시인으로 등단하겠다는 목표 하나로 호주에 가서 한 달 동안 시만 쓰다 오기도 했다. “의대생으로 살며 문학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름 노력했어요. 신간이나 새로 등단한 작가의 글은 꼭 찾아 읽었죠.”

  남궁인 씨는 의과대를 다니며 주위에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이 없다는 점이 늘 아쉬웠다. 그는 본과 1학년 당시 고대문학회에 가입했을 때 자신과 똑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가득해 기분 좋은 충격을 받았다며 고대문학회 활동 시절을 떠올렸다. “시를 지어가면 고대문학회 사람들은 진지하게 꾸짖으며 글을 평가해줬어요. 합평(여러 사람이 모여서 의견을 주고받으며 하는 비평)을 하면 부모 욕 빼고 다 할 정도로 비판의 정도가 심했지만, 그런 문화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것은 고대문학회 뿐이었죠.”

  당시 고대문학회에는 ‘시 오빠’가 있었다. 회실 소파에 앉아서 담배를 피며 회원들의 글을 평해주는 선배였다. 뛰어난 시 짓기 실력을 자랑해 남궁 씨가 선망했던 시 오빠는 작년에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를 발간한 신철규 시인이다. “시 오빠보다 제가 먼저 책을 냈어요. 첫 책을 낸 후 바로 전화해서 ‘형 저 책 나왔습니다. 한 권 보내드릴게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죠. 하하.”

 

“이제는 글 쓸 때 ‘사회적 책임’ 느껴요”

  남궁인 씨는 글쓰기가 여전히 즐겁지만, 이제는 스스로를 증명해야하는 일이 돼 글 쓰는 게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예전에는 제 글을 소수의 친구들만 봤지만 이제는 SNS에 올린 글이 기사에 나오는 등 공신력을 갖게 됐어요. 언더독의 입장에선 사회를 꾸짖고 결론 없는 글을 쓸 수 있었지만, 이제는 본질에 접근한 글을 써야겠다는 책임감이 느껴지죠.” 글의 완성도를 갖추기 위해 내용을 거듭 수정하고, 문장을 다듬다 보면 시간이 곱절로 든다. “어색한 문장이 하나도 없을 때까지는 SNS에 글을 못 올리겠어요. 보고 또 보며 만족할 때까지 글을 수정하죠.”

  남궁인 씨는 <만약은 없다>로 대중에게 사랑을 받은 후, 의사로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낸 <지독한 하루>에서는 소방관 이야기, 아동 학대와 같은 굵직한 주제를 잡고, 공익성이라는 결에서 벗어나지 않는 글을 썼어요.” 그의 책에는 근무 중 벌어졌던 의료사고에 관한 내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100% 완벽한 의료란 없기 때문에 의료사고는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의료사고가 나면 죄책감이 들게 돼 있죠. 이를 누군가는 기록해야 해요.” 그는 의료사고가 났을 때 회피하기보다는 글로 남겨 의료 현장을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외국에서는 의료 과정에서의 맹점을 시스템까지 분석해서 자세하게 다뤄요. 우리나라에서도 의료현장의 한계를 적극적으로 다뤄 정답에 가까워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내일을 위해

  남궁인 씨는 <만약은 없다>와 <지독한 하루>에 나오는 의사의 역할이 새로워 대중의 관심을 끈 것 같다며 성공 원인을 분석했다. “제가 쓴 글의 주인공은 ‘특권 의식이 전혀 없는’ 의사예요. 우울한 자아로 힘들어하고 죽고 싶다 하면서도 환자를 계속 봐야하는 의무를 가지죠. 독자들이 이러한 면을 신선하게 본 것 같아요.”

  이어 그는 좋은 책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밝혔다. “저는 ‘서울대 교수들이 추천한 책 100선’을 강박적으로 읽었어요. 좋은 문장들이었죠. 하지만 ‘이게 정말 좋은 책인가?’라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는 잘 읽히는 동시에 독자들이 느끼는 바가 있고, 다른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면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며 <만약은 없다>를 예로 들었다. “국내에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딱 1500명이에요. <만약은 없다>는 이 직업 세계에 대해 잘 알려주는 책이죠. 부끄럽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만의 생각을 가져봤으면 합니다.”

  남궁인 씨는 고대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저는 ‘하루만큼 발전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살아왔어요. 내일은 글을 조금 더 잘 쓰는 사람이 되고자 매일 조금이라도 글을 썼죠.” 그는 ‘절대 거창한 일’이 아니라며 설명을 덧붙였다. “지금껏 해보지 못한 일을 오늘 하면 내일의 나는 조금 더 발전하죠. 예를 들어, 해본 적 없는 요리를 오늘 해본다면 내일의 나는 그 요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요. 고대 후배들도 이러한 생각을 가지면 좋겠어요.”

 

글|송채현 기자 cherish@

사진|김도희 기자 doyomi@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