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이 발생한지 2년이 지났다. 이 사건으로 남녀공용화장실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이후, 정부는 지난해 11월 화장실 남녀분리설치 의무대상을 확대했다. 하지만 안암역 근처에 위치한 여러 술집의 화장실 상당수는 여전히 ‘남녀공용’이다. 다수의 본교생들이 불편과 불안함을 느끼고 있지만, 개선 전망은 불투명하다. 본지가 참살이길과 옆살이길의 술집 30곳을 무작위로 둘러본 결과 ‘춘자1’, ‘오징어바다’, ‘한잔의추억’, ‘휘모리’를 포함해 절반이 넘는 총 17곳의 화장실이 남녀공용이었다.

 

남녀 모두 당황스러운 ‘남녀공용화장실’

  남녀공용화장실은 대체로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남성용 소변기가 있고, 그 안에 개별 문이 달린 양변기 칸이 있다. 화장실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남성 소변기는 칸막이 없이 공개적으로 설치돼 있어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고 토로한다. 먼저 들어간 사람이 화장실 문을 잠그지 않거나, 잠금장치가 고장 난 경우 밖의 사람은 화장실 안에 누가 있는지 알지 못한 채 화장실에 들어서게 된다. 여성이 화장실에 들어서서 먼저 볼일을 보고 있었던 남성을 마주하게 되면 남녀 모두 당혹스러운 순간을 마주한다. 익명을 요구한 사범대 16학번 이 모 씨는 “옆살이길에 있는 술집에서 화장실 문 잠금장치가 고장 나 볼일을 보고 있을 때 여성분이 갑작스레 들어와 상당히 놀랐다”고 말했다.

  반대로 여성이 양변기 칸에 들어가 있는 사이 남성이 화장실에 들어오면, 여성은 볼일을 다 보고도 밖으로 나갈 수 없어 난처한 상황에 처한다. 백송이(미디어16) 씨는 “여성이 칸 안에 들어가 있으면 남성은 화장실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다”며 “칸에서 나갔을 때 용변을 보고 있는 남성을 마주칠까 봐 불안하다”고 말했다. 도어락으로 여닫는 화장실 문의 경우, 내부에 사람이 있는지와 상관없이 문을 자유롭게 여닫을 수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백인직(사범대 교육14) 씨는 “옆살이에 있는 ‘막걸리집’은 비밀번호를 치면 화장실에 들어갈 수 있기에, 볼일을 볼 때 누가 들어올까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남성과 여성이 화장실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화장실 이용을 위해 오래 기다려야 하는 단점도 있다. 팽희망(미디어17) 씨는 “양변기를 이용할 때 바깥문까지 잠가야 할지 난감하다”며 “밖의 문을 잠그면 또 다른 변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고, 안 잠그면 남성분이 들어올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몰래카메라 범죄에 대한 불안감도 배제하기 힘들다. 팽 씨는 “남녀가 함께 화장실을 사용하니 몰래카메라가 설치된 것은 아닌지 두려움도 있다”고 덧붙였다.

 

안암 술집 화장실은 ‘법의 사각지대’

  참살이길과 옆살이길에 위치한 술집들이 남녀공용화장실을 그대로 두는 이유는, 이들에게는 공중화장실을 설치하거나 남녀 화장실을 분리할 법적인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근린생활시설의 경우 연면적이 2000㎡ 이상인 경우에 공중화장실을 설치하도록 하고, 이때 남녀 화장실을 분리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안암 상권에 위치한 술집들은 대부분 연면적이 2000㎡ 미만인 소규모 시설이다. 안암 소재 술집들의 연면적을 살펴보면, ‘춘자1’은 436㎡, ‘한잔의추억’은 408㎡, ‘휘모리’는 1458㎡이다. 행정안전부 생활공간정책과 주으뜸 사무관은 “현재로서는 소규모 민간 시설의 화장실까지 법으로 관리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최근 정부는 현행 법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 구상을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행정안전부는 ‘남녀 화장실을 분리하는 민간 업주에 정부예산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예산 확보에 나섰다. 생활공간정책과 김영아 사무관은 “화장실을 남녀분리 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어서 많은 업주가 꺼려한다”며 “국민의 안전을 위해 국가에서 비용을 일부 지원하는 방안을 내부 검토 중이지만, 시행 가능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화장실문화시민연대’와 함께 공중화장실 남녀분리를 홍보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업주들의 자발적 참여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공간 제약’과 ‘비용 문제’로 업주들은 난색

  안암 주변에 위치한 술집 사장들은 공통적으로 ‘공간 제약’과 ‘비용 문제’를 화장실 남녀 분리가 어려운 이유로 꼽았다. 면적이 좁은 소규모 가게여서 공간이 협소해 남녀 화장실을 분리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안암로에 위치한 술집 ‘맛갱스터’의 박범진(남‧44) 사장은 “가게 자체가 작아서 남녀 화장실을 각각 만들 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공사에 필요한 설비비와 공사 기간 동안 드는 기회비용도 업주들을 망설이게 하는 주요인이다. 익명을 요구한 옆살이길 술집 사장 A 씨는 “화장실 공사를 하게 되면 그 기간 동안 화장실 이용이 불가능하다”며 “기회비용이 커서 남녀 화장실을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고 밝혔다. 참살이길에 위치한 술집 ‘춘자’ 장현웅(남‧49) 사장은 “우리 가게를 운영하는 데 최대 애로사항이 남녀공용화장실이라, 분리형 화장실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며 “정부에서 공사비용을 지원해주면 정말 좋겠다”고 전했다.

  반면, 정부의 비용 지원이 있어도 남녀 화장실을 분리할 의향이 없다는 업주도 있다. 옆살이길에 위치한 술집 사장 B 씨는 “정부에서 공사비의 전액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예산을 지원해 줄 가능성은 없다”며 “10년 가까이 남녀공용화장실로 문제없이 영업을 해왔기에 예산 지원이 있어도 바꿀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북구청은 “안암 주변 상권은 민간 건물이기에 남녀 화장실 분리를 강제할 수는 없으나, 여성안심보안관 제도 등을 통해 안전하게 관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성북구청 여성가족과 최라윤 주무관은 “성북구 관내 어디든 민원이 들어오면 보안관이 화장실을 점검한다”며 “고려대 주변 상권의 화장실도 민원이 생기는 즉시 안전 점검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글|송채현 기자 cherish@

일러스트|주재민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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