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Pride and prejudice>, 제인 오스틴(Jane Austen) 지음 

       <오만과 편견>, 윤지관, 전승희 옮김

최근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흥행에 성공했지만, 오역 논란에 휩싸였다. 국내 관객들로부터 번역된 자막이 영화의 구성을 망쳤다고 원성을 산 것이다. 하지만 번역이 글을 더 빛내주는 순간도 있다.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영어 번역본을 통해 2016년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수상해 관심을 끌었다. 이처럼 번역에 따라 울고 웃는 상황이 발생하는 가운데, 번역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것이며 과연 좋은 번역이란 무엇일까. 

번역이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번역은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기는 것’으로 정의돼있다. 그러나 번역은 단순히 높은 수준의 언어 능력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언어를 잘하기 위해선 해당 언어 국가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동반돼야 하는 것처럼, 번역을 위해선 원작을 충분히 이해하고 옮길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최성희(영미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특히 문학 번역의 경우 원작에 내포된 의미, 원작의 사회와 문화적 배경, 원저자의 문체적 특성과 사상, 문학적 관점 등을 모두 통달해야 제대로 된 번역이 나올 수 있다”며 “번역을 위해선 복잡한 사전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선희(BK21Plus 번역불문사업팀) 연구교수는 “번역가가 여러 번의 수정을 통해 번역본을 완성한 후에도 출판사의 편집부에서 다시 교정 작업을 거친다”며 “띄어쓰기와 표준 외래어 표기법 등의 단순한 교정부터 원본 없이는 어색한 구문이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까지 검토한다”고 번역 과정을 설명했다.  

  번역의 개념을 정립하고 확장한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은 번역을 크게 언어내번역, 언어간번역, 기호간번역의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언어내번역은 언어적 기호를 같은 언어 안에서의 다른 기호로, 언어간번역은 다른 언어의 기호로, 기호간번역은 언어가 아닌 다른 기호를 사용해 해석하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번역’을 떠올렸을 때 해당하는 것은 다른 언어 간의 번역을 진행하는 언어간번역이라고 볼 수 있다. 

  번역의 방법은 대표적으로 의역과 직역으로 나뉜다. 직역은 원천어, 즉 번역하고자 하는 원문의 언어를 중심으로 번역하는 것이고, 의역은 번역어, 즉 번역된 목표 텍스트의 언어를 중심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직역은 다시 크게 차용, 모사, 직역으로 나뉘며 의역은 치환, 변조, 등가, 번안으로 나뉜다. 

  번역물에 따른 번역의 종류로는 출판번역과 영화나 드라마 등의 영상번역, 각종 증명서, 계약서, 법률문서 등의 실용 번역 등이 있다. 현재 국내 번역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출판번역으로, 그중에서도 문학번역의 비율이 가장 높지만 실용서, 만화, 이론서, 교양서 등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번역이 이뤄진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15년도 출판 통계에 따르면 전체 발행 도서 종수(4만5213종) 가운데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21.5%(9714종)로, 그중 문학이 2457종으로 가장 많았다. 이는 2.6%의 미국이나 4%의 중국 등 다른 국가에 비해 번역서의 비율이 매우 높은 편으로, 우리나라에서 번역 사업이 비교적 많이 이뤄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좋은 번역의 조건

  좋은 번역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언어를 받아들이는 과정 자체가 주관적인 활동인 만큼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번역학이란 학문을 통해 번역에 대한 성찰과 분석을 진행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영훈(문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좋은 번역의 기준과 방법은 나라마다, 시대마다, 심지어 번역가마다 조금씩 다르다”며 “번역을 연구할 때 번역가의 주관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본 텍스트의 의미를 훼손시키지 않는 것과 자연스럽게 번역어로 바꾸는 것은 번역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이를 잘 충족시켰을 때 비로소 좋은 번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원천어의 어감을 그대로 살리는 것과 번역어로서의 자연스러움을 살리는 것 중 어디에 더 비중을 두느냐는 다를 수 있다. 최성희 교수는 “좋은 번역이란 원문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특히 우리말로 유려한 글이라고 생각한다”며 “원문의 미묘한 의미를 놓치지 않고, 우리말로 잘 읽히는 문장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고일(문과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도 마찬가지로 “가독성이 뛰어나고 원문의 특성을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무리 정확한 번역일지라도 해당 국가 독자에게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번역의 의미가 퇴색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준현(문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개인적으로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선호하는 편”이라며 “원문의 낯섦, 혹은 익숙하지 않은 생각들을 전하는 것도 가독성을 갖춘 지식의 전달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오역은 잘못된 번역을 뜻하는 말로, 앞서 언급한 조건에 어긋나는 상황에 해당한다. 고일 교수는 “오역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역자의 역량 부족이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라며 “이를 위해선 충분히 시간을 두고 자료를 찾아가며 번역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현 교수는 “잘못된 의미 해석도 있을 수 있지만 단순하게 번역자가 특정 단어나 문장을 잘못 인지해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며 “시간상 여유롭게 번역본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I기계 번역의 미래

  통번역계 역시 인공지능 기술 발전의 영향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내외 정보통신기술 기업은 플랫폼 사용자들의 편의 증진을 위해 통번역 시스템 강화에 힘쓰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번역자동화 사용자협회의 자료를 토대로 “자동 통·번역 세계시장은 2015년 25억 달러 규모에서 연평균 약 30%씩 성장해 2019년에는 7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며 “이는 의료·관광, 국제 비즈니스 등 특수목적에서 일상생활까지 확산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표적인 정보통신기술기업의 통·번역 서비스론 해외의 구글 번역과 국내의 네이버 파파고가 있다. 초기에 쓰인 번역방법은 규칙 기반 기계번역(RBMT)으로 AI가 단어 단위로 언어를 인식한 후 문법 규칙을 적용해 번역하는 방법이었다. RBMT의 경우 문맥은 물론 다의어마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어 말뭉치 기반 기계 번역(CMT) 기술이 등장했는데, 그중 통계 기반 기계 번역(SMT)이 주로 사용됐다. SMT는 방대한 언어 데이터를 활용해 통계적으로 빈도수가 높은 의미를 찾아내는 방법이다. 그러나 여전히 특정 언어권에서만 쓰는 단어나 관용적 표현은 대체로 올바르게 번역하지 못했다. 

  현재 구글 번역 및 네이버 파파고에서 사용하는 기술은 인공신경망 기반 기계번역(NMT) 기술로, 문장을 통째로 인식해 번역한다. 또 가장 적절한 번역을 위해 문맥을 살피기도 한다. 단어 자체보다 문장의 전체적인 의미 파악에 더 집중하는 것이다. NMT는 마치 사람의 뇌처럼 인공지능이 스스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하는 딥러닝 기술을 활용하기 때문에 이용자가 많을수록 데이터가 더 많이 축적되고, 번역 품질도 향상되는 특징이 있다. 최성희 교수는 “AI기계 번역기는 기술적인 내용의 간단명료한 텍스트를 번역할 때는 적합하지만 문학 텍스트와 같은 복잡하고 의미가 열려있는 장르를 번역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이를 감안하여 인간이 번역기를 보조 도구로서 잘 활용하면 보다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I기계 번역의 발달은 인간 번역가에게 도전이기도 하지만 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최성희 교수는 “이럴 때일수록 인간 번역가가 더욱 기계와 차별화된 실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영훈 교수 역시 “장래에 AI 기술의 발전으로 전문 영역에서의 번역가의 역할이 없어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번역계의 미래를 전망했다.

글|김도윤 기자 glossy@
일러스트|주재민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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