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세평] 대학의 위기와 새로운 시도

고대신문l승인2018.06.06l수정2018.06.06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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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타 대학에서 근무하시는 교수님을 우연히 뵙고 잠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교수님은 곧 퇴임을 앞둔 입장에서 인생의 허망함을 많이 느낀다고 말씀하셨다. 이유인즉슨, 본인이 한창때 열심히 쓴 논문과 저서들 대부분이 현시대에는 별 소용이 없는 구시대의 지식이 되었기 때문에 본인이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속칭 ‘거장’ 또는 ‘장인’이 많지 않다. 환갑 넘어 메가폰을 잡는 영화감독은 거의 없다. 경험 많은 치과의사보다 최신 의료기술을 배우고 졸업한 젊은 치과의사가 인기가 많은 이유도 새로운 지식에 의해 옛 지식이 끊임없이 대체되기 때문이다.

  지식의 유효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지식의 반감기>를 쓴 새무엘 아브스만은 특정 시점에 익힌 지식의 가치가 감소하는 현상을 지식의 반감기라고 정의한다. 아브스만에 따르면 물리학의 지식 반감기는 13.07년, 경제학은 9.38년, 수학은 9.17년, 심리학은 7.15년, 역사학은 7.13년이다. 아브스만은 미디어학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내가 강의하는 미디어 전공과목의 내용 역시 몇 년 후에는 효용이 떨어진 오래된 지식으로 전락할지 모르겠다. 신문방송학과에서 언론학과로, 언론학과에서 미디어학과로 학과명이 바뀐 이유도 새로운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부응할 필요를 반영한 것인데, 학과명이 또 바뀌는 것은 아닌지, 이 전공이 영원히 유용하게 남아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한편 그동안 대학이 거의 독점적으로 수행했던 고등교육 기능은 다른 기관에 의해 대체될 위기에 빠졌다. 실용적인 전공들이 지식의 반감기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면, 인문사회학의 경우는 일반 대중서와 각종 교육 플랫폼과의 경쟁을 우려하게 되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에 대해 알고 싶다고? 그렇다면 당장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된다. 검증되지 않은 지식이라고 폄하하기에는 동영상 강의 수준이 매우 높다. 내 전공인 미디어학에 대한 훌륭한 강좌도 넘쳐난다. 유튜브가 지상파와 같은 레거시 미디어에 도전하고 있는 것처럼 방대한 지식을 담고 있는 유튜브는 대학의 절대적인 위상에 도전하고 있다. 학위를 수여한다는 점을 제외하고 지식전달에 있어서 대학이 수행하는 지식전달 기능은 결코 독점적이지 않다. 철학, 정치철학, 심리학, 리더십, 외국어, 비즈니스 스킬 등 다양한 강좌를 각종 교육 포털사이트를 통해도 쉽고 저렴하게 수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를 부지런히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비판적인 사고력과 인문학적 통찰력을 습득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논객의 글이 학자의 글보다 사안을 더 잘 꿰뚫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전공지식은 더 이상 지식의 상아탑에만 갇혀있지 않다.

  지식의 반감기가 점점 더 짧아지고 대학의 고등교육 기능이 독점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대학은 무엇을 해야 할까? 정답은 없다. 다만 변화에 적응하는데 급급한 것도 문제지만 익숙한 것만 유지하는 것도 문제라는 점은 분명하다.

  안타까운 점 한 가지는 지식의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학문 간 경계도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대학들은 여전히 특정 전공 중심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수 대부분은 특정 학문, 특정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와 교육을 수행해 왔으므로 학제를 뛰어넘는 사고를 하는데 익숙하지 않고 자기 전공에 몰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학회활동을 포함한 학문 후속세대 양성 역시 특정 전공 단위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동문회도 전공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융합전공에 대한 거부감도 크고, 타 학과에서 내 전공과 관련된 강의를 개설할 경우 결사반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별 학과와 교수만 탓할 일이 아니다. 예산 편성, 교수 임용, 학생 선발뿐 아니라 발전기금 모금 등 모든 학교행정이 학과 또는 단과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뭔가 혁신적인 강의를 새로 개설하려고 해도 시간이 걸리고 번거롭다. 다른 학과 교수와 코티칭도 어렵다. 위기에 처한 대학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시도임이 분명하다. 학교 구성원의 인식 전환도 중요하겠지만 새로운 시도를 독려하는 행정적인 지원과 유연한 교육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박지훈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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