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어지는 페미니즘, 온라인 바깥의 광장이 필요하다”

온라인 페미니즘의 지형과 방향성, 페미니스트 3인 좌담회 박문정 기자l승인2018.06.08l수정2018.06.08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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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9일, 혜화역 2번 출구에서 성차별 없는 수사를 요구하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열렸다. 시위엔 ‘꾸밈 노동’을 거부하며 ‘탈 코르셋’을 실천하는 페미니스트, 양성애자 페미니스트. 정부 당국의 수사 절차에 부당함을 느껴 페미니즘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여성 등 각자의 여성주의를 지향하는 1만여 명의 여성들이 참석했다. 집회준비를 위해 인터넷 카페를 개설한 후 집회가 열리는 날까지 커뮤니티 안에선 집회의 성격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수많은 페미니즘 주장은 온라인을 매개체로 해 하나의 의제에 대한 공통된 의견을 모아나갔다.

이처럼 온라인 페미니즘은 여성주의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결집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온라인상에서의 페미니즘은 어떤 양상을 띠고 있으며,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5월 23일, 남성 페미니스트로서 페이스북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 서울대 경영대학 여성주의학회 ‘여파’에서 활동하는 허정은 씨, 서울소재 대학에서 총여학생회 활동을 했던 강윤희(가명) 씨와 함께 온라인 페미니즘의 현 지형과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봤다.

 

- 페미니즘과 온라인 플랫폼이 결합하면서 나타난 효과는 무엇인가

정훈│“접근장벽이 낮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페미니즘을 접하는 연령대도 많이 낮아졌다. 어린 나이부터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조명하는 콘텐츠를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젠더감수성을 지니게 된다.

처음에는 자극적인 언어에 반응해 관심을 갖게 됐다가 페미니즘 책을 읽어보며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공부하는 사람도 많다. 우려스러운 점도 있지만 페미니즘이 온라인을 통해서 이슈화되고 확산된다는 점에선 긍정적 효과가 훨씬 크다고 본다.”

정은│“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고 간편하게 드러낼 수 있고 즉각적인 반응이 뒤따른다는 점이다. 이는 긍정적인 동시에 부정적이기도 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페미니즘을 접하지만 안티페미니즘의 주장도 그만큼 대중에게 많이 노출되는 것이다. 아군이 100명 생긴다면 적군도 100명 생긴다. 그에 따라 경쟁하듯 자극적인 콘텐츠가 생산하고 유통되며, 그것이 마치 페미니즘의 얼굴인 양 소비되는 점이 안타깝고 또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 온라인상에서 나타나는 페미니즘 의제들은 상당히 다양하다.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정은│“페미니즘에 대해선 찬반 의견뿐만 아니라 운동 방식과 노선, 그 정도에 따라서도 의견 차이가 크다. 하나의 의견이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다. 시각들이 분화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현상이다.”

윤희│“당연한 모습이다. 페미니즘은 항상 분파돼 왔기에, 다양한 시각이 드러난다.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서 주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에 기반한 페미니즘을 주창하면, 지금보다 더 다양한 영역에 페미니즘이 스며들 수 있다. 여성주의적인 시각이 사회의 더 많은 곳에 적용돼야 한단 점에서 바람직하다. 여성주의의 필요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정훈│“페미니즘에는 무척이나 다양한 견해가 있는 만큼 이를 단순화해 바라보는 시각을 주의해야 한다. 언론 등에서도 여러 페미니즘 집단 중 하나의 의견을 다루면서 그것을 단일화된 페미니즘의 공통된 의견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페미니즘의 각 분파에도 엄청난 격차가 있다. 세세한 분화에까지 주목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적어도 같은 의견을 공유하고 있는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서 생각해선 안 된다.”

 

- 자극적인 표현방식이 확산된다는 의견에 대해선

정훈│“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표현하는 언어가 자극적이긴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이 극단적인 경우는 많지 않다. 의견을 드러내는 데 있어 재미를 느끼고 더 많은 반응을 얻기 위해 그런 표현들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여성들을 객체로 한 표현들을 그대로 성별만 바꿔 이야기하는 것이다. 더 빨리 등장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표현들이다.”

윤희│“남성들의 잘못이 선행됐는데 여성들에게만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 있나’하고 바라보는 시각이 잘못됐다.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극단적인 표현들이 페미니즘을 하지 않는 사람들로 하여금 거부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 전보다 사회가 페미니즘 이슈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정은│“자극적인 표현으로 인해 사회가 여성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게 됐다는 점에 동의한다. 여성주의 단체들이 수십 년간 운동해왔지만 최근 2, 3년간 있었던 만큼의 폭발적인 영향력은 가져오지 못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선을 지키지 못하는 일부 사례는 우려스럽다.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들이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백래시(반격)’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몇몇 자극적인 표현이 페미니즘의 대표격처럼 여겨지는 것도 문제다.”

 

- 현재 온라인상 페미니즘 운동 방식의 한계를 진단해본다면

정훈│“간혹 페미니즘이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다른 견해를 가진 여성들을 공격하는 데 힘이 쏠리기도 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나오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현상이지만 다른 견해를 가진 페미니스트를 공격하는 수준까지 가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비이성적인 공격이나 개인을 향한 사이버불링 등은 지양해야 한다.”

정은│“페미니즘은 권력에 저항하는 학문이자 운동이다. 그런데 점차 저항하기 쉬운 대상에게만 저항하는 방법으로 운동이 진행되는 것 같다. 의견을 결집할 헤드가 없고, 많은 성찰을 거치지 않게 되는 인터넷의 특성 때문인 듯하다. 가부장제라는 사회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은 어렵지만, 개인과 같은 약자를 공격하기는 쉽다. 싸워내기 어려운 거대 권력에 저항하기보다는 비판하기 쉬운 대상을 공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 확장성과 선명성 중 온라인 페미니즘이 선택해야하는 노선은

정은│“페미니즘에 대해 많은 사람이 알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서 확장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가진 페미니즘은 선명해질 수 있다. 나 스스로도 개인적인 페미니즘은 선명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 전체로 봤을 땐 일상에 수없이 흩어져 있는 페미니즘 의제에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해야 한다는 점에서 확장성을 더욱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훈│“확장성이다. 페미니즘을 배우며 조금씩 변화해나가고 수정해나가는 과정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나 자신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다. 특히 남자들에게 있어선 가해자성을 성찰해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명성을 고집하는 것은 힘들다.”

윤희│“확장을 통한 변화가 우선적이라고 생각한다. 변화하지 않으면 페미니즘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도 항상 고민하고 변화하고 수정해나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오히려 선명성은 잘못된 자기 확신으로 빠질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며 갈등과 충돌이 생길 테지만 지지하는 방향성을 가지되 수정하고 확장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온라인상 페미니즘 담론을 확장시키기 위해선

윤희│“오프라인의 광장 역할을 할 장소가 온라인에도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 같지만, 오히려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의 커뮤니티에 가입한다든가 트위터상에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블록(Block) 하는 식으로 활동해서다. 오프라인의 촛불집회가 인상적이었다. 더욱 다양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정은│“개인 차원으로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데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나는 ‘설득하는 페미니즘’의 투쟁 형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설득하는 페미니즘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보이시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내 글과 설명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사례를 실제로 많이 경험했다. 그런 영향력을 기대해서 얼마 전 페이스북 페이지도 만들었다. 쉽고 설득력 있는 말로 페미니즘을 직접 와 닿게 하는 방법도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훈│“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는 많은 층위에서 이뤄지고 있다. 장애여성, 성 소수자, 이주여성 등 약자들을 섬세하게 아우르는 문제들이 제기된다면 더 많은 반응을 얻을 거라 생각한다. 하나하나 깨우쳐가는 가운데 아직 놓치는 부분이 많다. 약자들의 외침을 들을 수 있는 공론장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박문정 기자  moonlight@kunew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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