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3대 종족 중 프로토스는 고귀하고 자긍심 넘치는 성격을 주요 컨셉으로 삼는다. ‘프로토스’ 라는 이름은 ‘첫 번째 자손’이라는 뜻으로, 세계관 내 창조주인 젤 나가가 만들어 낸 첫 문명족임을 자임하는 단어다.

  뛰어난 육체능력과 더불어 높은 수준의 정신체계까지 갖추며 우주의 제 1 종족이었을 프로토스는 그러나 지나치게 높은 자긍심 때문이었는지 잦은 내부분열을 일으켰고, 결국에는 저그라는 새로운 종족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고향 행성인 아이어를 떠나 방랑의 길에 이르게 된다.

  프로토스가 아이어를 떠나 도착한 곳은 샤쿠라스라는 이름의 행성이었다. 샤쿠라스는 한때 프로토스와 함께 했으나, 이른바 ‘칼라’ 라고 불리는 프로토스 특유의 집단지성 체계로의 합류를 거부한 이들, ‘다크 템플러’로 대표되는 프로토스 분파인 ‘네라짐 프로토스’ 들이 고향을 떠나 살아가던 행성이었다.

  네라짐 프로토스들은 칼라이 프로토스들로부터 배척받아 쫓겨나 온 이들이었다. 성스러운 칼라에 동참하지 않은 네라짐들은 역적, 반란분자 등으로 분류되었고, 고향 행성 아이어로부터 쫓기듯 도망쳐 샤쿠라스로 모여들었다. 한때 자신들을 내치고 침 뱉던 칼라이 프로토스가 고향 아이어를 잃고 도망쳐나왔을 때, 네라짐 프로토스는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 지를 놓고 벌인 갈등 끝에 결국 샤쿠라스에 칼라이 프로토스들을 받아들이고 함께 고향 행성을 되찾기로 결의하는 결론을 내린다.

  먼저 아이어로부터 쫓겨난 네라짐, 그리고 저그에 의해 고향을 잃고 내몰린 칼라이. 두 프로토스 종족은 모두 터전으로부터 추방당한 난민의 속성을 갖는다. 아이러니한 점은 서로 대립하는 사상의 두 프로토스가 각기 한 번씩 난민과 추방자의 입장에 서 보았다는 점이다. 최초 네라짐이 쫓겨날 때 추방의 주역은 칼라이였고, 칼라이가 고향으로부터 떠나왔을 때 이들을 받아들일지를 놓고 고민했던 주역은 네라짐이었다.

  게임 <스타크래프트> 는 알게 모르게 난민의 역사다.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프로토스가 가진 난민의 서사 뿐 아니라, 테란 종족의 시작 또한 난민의 역사로부터 비롯된다. 지구인의 우주 진출 과정에서 벌어진 탄압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일군의 무리가 변방의 행성계에 간신히 정착해 이룬 테란의 배경은 받아주는 이의 논쟁이 없다 뿐이지 디아스포라로서의 건국신화로 보기에 무리가 없다. 이는 게임 플레이에도 고스란히 남는데, 언제든 기지와 건물을 공중으로 들어올려 움직일 수 있게 된 테란의 건축구조는 정착이 어려운 우주의 보트피플이 만들어 낸 역사의 기록이다.

  지구촌 곳곳의 분쟁과 그로 인해 쏟아지는 난민의 이슈는 오늘날 전 지구를 당위와 현실이라는 해묵은, 그러나 여전히 결론내리기 힘든 질문에 밀어넣는다. 결론이야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지난 반 세기 간 그나마 상대적으로는 평화로웠던 한반도 정주민들에게 최근 쏟아지는 난민 관련 이슈들은 다소 생소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민의 이야기가 생소하게 다가오는 것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친 한반도인들에게 그리 오래 된 일은 아니며, 동시에 전인류적으로도 심지어 게임 내 설정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이슈라는 점에서 또한 우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던 개념도 아니라는 사실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경혁 게임평론가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