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땀이 뻘뻘'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 홍보관 앞 공사장에서 인부가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기상관측 111년만에 최고 더위를 기록한 여름이다. 가만히 서있어도 흐르는 땀으로 등 뒤가 축축해지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폭염에도 학생들의 발걸음이 뜸해진 캠퍼스에 남아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학내 주차관리요원, 미화노동자, 식당 조리사들의 여름방학 근무 현장을 찾아가봤다.

▲ 라이시움 미화노동자 홍순분 씨가 화장실 쓰레기를 처리하는 모습이다.

  더위에 냄새까지, 미화노동자에겐 최악의 계절

  오전 5시 30분, 새벽 어스름이 걷히고 있다.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이 일터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학생회관 앞에선 미화노동자들이 어제 모인 쓰레기를 처리 중이다. 라이시움에서도 청소 준비가 끝났다. 앞치마를 둘러맨 미화노동자들이 각자 맡은 층으로 흩어졌다. 라이시움 1층 청소부 홍순분(여·65) 씨는 가장 먼저 잠겨있던 강의실 문을 열고 형광등을 켰다. 어두컴컴한 복도로 불빛이 새어나왔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았지만 연이은 더위에 달궈진 강의실은 벌써부터 후텁지근하다. 본격적인 청소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그의 얼굴은 잔뜩 상기됐다.

  홍 씨가 복도 한 구석에 있는 창고 문을 열어 흰색 비닐봉투를 꺼냈다. 강의실 쓰레기통을 비우기 위해서다. 복도를 다 돌기도 전에 비닐봉투 두 장이 금세 찼다. “하루만 지나도 쓰레기가 넘쳐나요. 방학 때도 한국어 공부를 하러 온 외국 학생들이 많거든요.” 그는 그렇게 모인 쓰레기봉투를 건물 밖으로 내놓았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나르다보니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새벽이지만 푹푹 찌는 날씨 탓에 옷도 젖어 짙은 색이 됐다.

  홍 씨는 건물로 들어오자마자 화장실 청소를 시작했다. 휴지통에서 역한 냄새가 올라왔지만 불편한 내색은 없었다. “여름에 특히 화장실 냄새가 많이 나긴 하죠. 그래도 이게 내 일이니까 해야죠.” 휴지통을 말끔히 비워내면 이제 물청소를 할 차례다. 화장실 곳곳에 물을 뿌린 뒤 수세미로 문지른다. 그 후 다시 한 번 물로 헹구고 물기를 제거한다. 오전 업무의 끝은 바닥 청소다. 수십 개의 강의실 바닥을 쓸다보면 어느새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진다. “땀이 눈에 들어가니까 따끔거려요. 일이 끝날 때까지 땀은 계속 흐르니까 그저 닦는 수밖에 없어요.”

  허겁지겁 점심식사를 마친 뒤에도 할 일은 산더미다. 홍 씨는 오후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강의실 쓰레기통을 다시 비웠다. 학생들이 버린 일회용 컵엔 먹다 남은 음료수가 그대로다. 그는 벌레가 꼬이기 전에 처리해야겠다며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힘들지만 괜찮아요. 내가 청소를 해야 학생들이 깨끗한 강의실을 쓸 수 있잖아요. 난 그거면 됐어요.”

 

▲ 주차관리요원 황오영 씨가 주차안내 중이다.

  온몸으로 뙤약볕 견디는 주차요원

  “오른쪽으로 들어가세요, 오른쪽!” 새벽에 어렴풋이 비치던 햇빛은 오전이 되자 더 강하게 내리쬈다. 토요일에도 본교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백주년기념관 앞 주차관리요원 황오영(남·66) 씨는 줄지어 들어오는 차량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폭염 특보가 발령됐지만 황 씨는 긴소매 셔츠를 입고 장갑까지 낀 상태였다. 30분이 채 되지 않아 그의 목덜미가 땀에 젖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더위를 피할 곳은 작은 초소가 전부다.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크기지만 그마저도 선풍기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근무시간 내내 뙤약볕 아래 서있어야 한다.

  잠시 후 화물차 한 대가 들어섰다. 차량이 학교 내로 진입하는 것이 금지돼 있지만 방학기간 캠퍼스 곳곳에서 진행되는 공사로 화물차는 예외다. 황 씨는 초소에서 종이와 볼펜을 가져와 운전자에게 내밀었다. 돌려받은 종이엔 차량번호와 출입시각이 적혀있다. 그가 서류를 내려놓기도 전에 한 방문객이 다가와 길을 물었다. 황 씨는 힘든 내색 없이 복잡한 학교 구조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설명해줬다. “인재발굴처는 저쪽 계단으로 내려가면 돼요.” 직책은 주차관리요원이지만 정문 가까이 위치해 안내데스크 역할도 겸하고 있다. 몰려오는 차량을 관리하랴, 방문객들의 질문에 답하랴 여념 없는 하루다.

  황 씨는 본교에 오기 전 28년 간 집배원으로 일하다 명예 퇴직했다. 지인의 소개로 시작한 주차관리 업무는 때때로 그를 지치게 한다. 무례한 방문객을 상대할 때 더욱 그렇다. “다짜고짜 반말하는 분들이 있어요. 내가 알려준 방향대로 가지 않고 고집 부리는 택시기사들도 있죠. 나도 사람인지라 그럴 땐 불쾌해요.” 하지만 지나가는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다보면 마음 속 응어리는 풀린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친해진 학생도 생겼다. “나는 그저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그 한 마디에 힘내서 일해요.”

  바삐 일하다 보면 목이 탄다. 황 씨는 금세 뜨끈해진 이온음료를 꺼내 한 숨에 들이켰다. 본교에서 8년째 근무하고 있지만 7월의 날씨는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겨울엔 그나마 옷을 껴입으면 되니까 나은 편이죠. 여름엔 더워도 옷을 벗을 수 없잖아요.” 그럼에도 황 씨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여름이 오는 걸 막을 수 없으니 내가 참고 즐겁게 일해야죠.” 차량이 초소 앞으로 다가오자 그는 다시 힘 있는 목소리로 주차안내를 이어나갔다.

 

▲ 교우회관 조리사 이영숙 씨가 조리용 삽으로 고기를 익히고 있다.

  선풍기 5대가 무색한 주방의 열기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교우회관 식당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요리가 한창인 조리실은 희뿌연 연기로 가득했다. 이곳의 온도는 사우나를 방불케 한다. 팔팔 끓는 냄비와 한껏 달궈진 솥이 조리실 안을 열기로 가득 채웠다. 선풍기가 5대나 있지만 더운 바람만이 얼굴을 쓸고 지나갈 뿐이다. “당근이랑 양파 좀 썰어줘. 김치는 냉장고에 있어.” 교우회관 식당 조리사 이영숙(여·60) 씨가 조리실 이곳저곳을 오가며 진두지휘 중이었다.

  이날 이 씨가 담당한 메뉴는 간장 돼지고기찜. 큰 솥에 양념과 채소, 고기를 넣고 조리용 삽으로 골고루 섞었다. 만만치 않은 삽 무게에 팔의 힘줄이 도드라져 선연했다. 솥에서 뜨거운 김이 올라오자 그녀의 볼도 빨갛게 익어갔다. 콧잔등에 맺힌 땀은 닦기 무섭게 다시 맺힌다. 이 씨는 돼지고기찜이 완성되자 자리를 옮겨 양배추를 데쳤다. 끓는 물에 양배추를 넣고 앞에서 잠시 기다렸다. 가까이 가기만 해도 열기가 느껴지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주방은 사계절 내내 더워.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여름의 적은 더위만이 아니다.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씨는 혹시 학생들이 배탈이라도 날까 노심초사하며 재료를 관리한다. 음식은 되도록 당일 아침에 만든다. 양배추 쌈처럼 차게 먹는 음식은 전날 준비해 곧바로 냉장고에 넣는다. “음식이 상할까봐 걱정이야. 철저히 관리하는 수밖에 없어. 음식을 만들면 빨리 냉장고에 넣고 필요할 때 최대한 늦게 꺼내야지.”

  요리가 마무리되고 조리사들은 뒷정리를 한다. 이 씨는 주방을 나섰다. 이제야 한숨 돌리나 했더니 배식을 도와야 한다. 모자라는 반찬은 없는지 확인하고 학생들에게 많이 먹으라며 애정 어린 말을 건넸다. 몇 시간동안 불 앞에서 고군분투했지만 그는 학생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고 전했다. “아무리 돈 받고 하는 일이라도 내가 만든 음식 맛있게 먹어주면 보람 있지.”

 

글│정한솔 기자 solar@

사진│고대신문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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